각서/ 5월 29일
소목
오늘도 문 짜는 일을 했다. 어제 오후 교육 시간에 먹선 놓는 일까지 해 놓았으니 오늘은 바로 톱과 끌을 가지고 각재를 깎는 일에 들어갔다. 목수 일을 나눌 때 집을 짓는 일을 대목, 가구를 짜는 건 소목이라 하는데 이 일은 소목에 드는 거라 할 것이다. 전에 아무 것도 모를 때는 그 말이 더 뛰어난 목수를 대목, 그 아래에서 조금 서툰 목수를 소목이라 부르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런 것과는 하나 상관이 없는 거였다. 어느 쪽 일이 더 어렵다거나 값지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특성에 따라 나름의 구분이 있는 것일 뿐. 문을 짜는 일은 말로만 소목에 드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가 집을 지을 때와는 아주 달랐다. 정교함을 더욱 필요로 하는 일이고, 그러다 보니 쓰는 공구부터가 대목 일을 할 때 쓰던 것과 많이 달랐다. 톱만 해도 날의 면이 아주 얇고, 그 이도 훨씬 잘고 촘촘한 것으로 써야 한달까, 끌도 아주 작은 홈을 파야 할 일이 많으니 6미리 끌이 없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곳이 많았다. 게다가 작고 얇은 각재 위에 먹선을 놓아야 하니 그것 하나하나에 먹줄을 튕기는 것이 아니라 그므개를 가지고 정밀하게 선을 그어야 했고, 자도 곡자가 아닌 작은 삼각자처럼 생긴 (그 이름이 있었는데 까먹었네.) 것이 있으면 45° 선을 그을 때 아주 쓰임새 있게 쓸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 조에는 소목 일을 하다 온 형님이 있어 형님의 공구 가방에는 그 모든 것이 있어 어렵지 않게 돌려 쓸 수 있었다. (그 형님이 아니었으면 어찌할 뻔 했나 모르겠다, 그러한 공구가 없어 애를 먹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톱질, 끌질
나는 하루 늦어 문 짜는 일을 시작하느라 첫날 설명을 듣지 못해 끼워 맞추는 부분 짜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먼저 완성해 놓은 분들의 것을 보니 어느 정도는 따라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된 것을 참고해가며 톱질을 했고 끌질을 했다. 막상 톱을 들고 잘라보려 하니 처음부터 정확히 톱집을 잡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톱질할 자리에 지저분한 상처가 곧잘 나곤 했다. 그러고 나니 전부터 교수님이 톱질을 할 때 먹선 있는 곳에 나무토막 같은 것을 대 거기에 딱 붙여 톱질을 하라던 말씀이 떠올랐다. 마치 자를 대고 연필 선을 긋듯 말하자면 톱질을 하는 것에 나무토막으로 자 구실을 하게 하는 거였다. 그렇게 톱질, 그리고 홈이 되는 곳 구석구석을 파내는 끌질……. 오전과 오후 하루 종일 톱질과 끌질.
각서
오전 교육 시간 일을 할 때 학생회 임원으로 일을 하는 분이 와 전할 얘기가 있다 했다. 나 말고도 몇 사람 더 얘기를 해야 한다는데 아마 지난 금요일 결석을 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 듯 했다. 쉬는 시간에 모여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른바 각서라는 것을 써야 한다는 얘기. 지난 금요일 학교 안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데 그 일이 있고 교육생들이 모두 각서를 써 학교장님께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내용까지야 이 자리에 자세하게 밝혀 쓸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교육생 가운데 한 분이 학교의 교육 과정에 대해 교장 선생님에게 항의를 한 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지나친 표현과 뜻이 문제가 되었다 했다. 그 일로 그 분의 사과와 교육생 전원의 각서로 문제를 무마해 넘기기로 했다는 것인데, 나는 그 각서를 쓴다는 일에 동의를 하기가 어려웠다. 앞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학교의 교육 과정에 대해 토를 달지 않고 따를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으로 쓰라는 것인데, 도무지 그것을 쓸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러한 폭력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내 모든 것을 버려 다 맡기겠다는 약속을 바쳐야 한다니. 아무리 지금껏 학교 교육을 고맙고 기쁘게 받았다 해도, 그 모든 것을 그저 믿고 따를 수 있었다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물며 지금 느껴지는 모습에서………. 항복 문서와 같은 것을, 그것도 강제로, 억압이고, 예속인 그것을 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일단 내용을 전해준 학생회 임원에게는 나는 그것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솔직히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어떤 불편함, 혹은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르겠다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쓰지 않겠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교육 시간 톱질과 끌질을 하고 있을 때 임원이 다시 불렀다. 오십여 명 가운데 각서를 쓰지 않은 이는 나를 포함해 모두 네 명, 교장 선생님이 사무실로 우리를 불렀고, 우리 넷은 그 앞으로 갔다. 각서를 쓰지 않은 까닭과 그리고……. 다른 말들은 최대한 아꼈다. 아니, 못했다는 것이 맞다. 하고픈 말을 다 해서는 학교를 그만 두게 될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고, 그리했다가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꾹꾹 참아 각서를 쓰며 어떻게든 교육을 이어가려 하는 다른 교육생 분들한테까지 원치 않는 상황을 부르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마 이 마음은 지금 교육을 함께 받는 이들 대부분의 마음일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그 각서라는 것을 쓴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저 각서를 쓰지 못하겠다는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일방적인, 무릎을 꿇는 방식의 약속은 할 수 없다는……. 풀어야 할 것이 있으면 그건 다른 방식이어야 하지 교육생 전원의 각서를 받는 방식은 옳지 못하다고……. 끝내 각서가 아닌 다른 방식의 글, 학교 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적어 내는 것으로 하기로 하고 이야기를 마치기는 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썼다. 아마 나는 불만이라거나 요구의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돌려 말했을 것이고, 내 마음 속에서 타협을 해가며 글을 썼겠지. 생각하니, 다시 괴롭다.
속이 상해 괴로워하다가 문득 학교라는 곳을 다니는 아이들 생각이 났다. 나이가 서른, 마흔, 쉰이 넘은 사람들조차 교육생이 되어서는 할 말이 있어도 하지를 못 하는데 아이들은 정말 얼마나 그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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