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돌아오니 감자 눈이 뻘겋다. 평소, 문을 딸깍 열고 들어서면 다다다다 달려나와 아빠다! 두 팔을 벌리던 때랑은 달라. 이불 위에 가만히 앉아 빨갛게 충혈이 된 눈으로 고개를 빼면서, 아빠 뒤에 또 누가 들어오는지를 살펴. 아, 그건 형이 뒤따라 들어오나, 를 보는 거였어.
감자가 서럽게 울었다 했다. 품자를 안아 젖을 먹이는 동안, 감자가 엄마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더니, 형이랑 함께 놀던 동영상을 보았더라나봐. 그러더니, 처음엔 알 수 없는 소리로, 형, 형, 형, 하면서 울었다지. 달래는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흥, 흥, 흥 하고 우는 소리만을 내는 줄 알고, 지슬아, 왜 그래애? 엄마 금방 우슬이 맘마 주고 그리로 갈게! 했다는데, 감자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러더니 허엉, 허엉, 혀어어엉, 하고 형을 부르면서 으아아아앙, 그치지 않는 울음을.
그제서야 달래가 감자가 보고 있던 동영상 화면을 보니, 거기엔 근이 형아랑 즐겁게 놀던 장면이 흐르고 있어. 얼마나 서럽게 감자가 울던지, 달래도 그만 감자를 따라 같이 울음이 터져.
그날은 내가 점심시간에 집에 들러, 근이를 태우고 나가 공항에 데려다주던 날. 근이 형아가 군대를 마치고 감자네 집에 와서 아흐레를 함께 하다 복학을 준비하러 육지로 다시 올라가던.
1.
둘쨋날 오전이었나 보다. 형아가 있으니, 엄마랑 셋이만 있을 때는 엄마가 품자를 안고 있느라 마당에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형아가 있으니 이렇게 마당에 나가는 것도 자유로워.
그래도 처음엔 다소 어색해하곤 했다. 근이가 제주에 내려온 첫날 저녁엔, 감자는 곁을 주지 않고 주변만 빙빙 돌아. 눈도 맞추려 하질 않고, 눈을 맞추려 하면 고개를 팩팩 돌려버리는. 오랜만에 만나는 여느 낯선 이에게 그러듯, 감자는 도도하고도 비싸게 굴며 곁을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빙빙 돌며 곁눈질로 관심을 보이면서.
하지만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 날, 할머니가 계시던 그 방에서 형아가 문을 열고 나오니 감자 눈이 반짝! 했다던가. 이튿날부터 감자는 형아가 놀아주는 거에 곁을 허락하기 시작했다.
반면, 아직 낯가림이라는 걸 잘 알지 못하는 품자는 놀아주는 형아가 마냥 좋기만 해. 엄마 혼자서는 언제나 손이 모자라, 품자에게는 충분히 놀아주지를 못하곤 했는데, 맘껏 놀아주고, 비빌 수 있게 해주는 형아가 와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품자는 근이 형아가 온 첫날부터 형아를 쫓아다녀.
어쩜 그래서 더 감자는, 질투 비슷한 마음이 있었을까 ㅎ 형아랑 딱 붙어서 노는 품자를 보면서, 형아를 내 껄로 만들어 놀고 싶기는 한데,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그 도도한 컨셉을 당장에 무너뜨리지는 못한 채, 조금씩 조금씩 형아 곁을 좁혀가면서 ㅋ
2.
이틀, 사흘이 되면서 이젠 감자품자는 자연스레 형아 곁으로만 모이게 되어. 형아가 오전 늦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때부턴 감자도 품자도 형아가 가는 데만 졸졸. 마치 어미닭 뒤를 따르는 병아리들처럼, 형아가 가는 쪽으로 쫓아 달려가고, 기어가고 하면서 놀아달라고, 놀아달라고.
그랬으니, 감자 품자는 물론이거니와 달래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근이가 와 있으니, 걸레질도 맘 편히 할 수 있다며, 씻는 거 한 번 편하게 못했는데, 형아가 놀아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아빠가 없는 낮 동안 감자나 품자를 안고 욕실에 들어가 씻겨야 할 때면, 아기 하나를 안고 욕조에 들어가야지, 욕실 바깥에 남겨진 아기는 또 어쩌고 있을지 뒤에도 눈이 달렸어야 하지. 순간순간 애를 먹어야 했지만, 이젠 바깥에서 봐주는 형아가 있으니, 맘 놓고 씻길 수도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3.
그러다 돌아온 일요일, 근이 형아가 와 있는 참에 엄마에게도 자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감자랑 품자, 형아랑 아빠, 넷이서 집에 있고, 엄마 혼자 바람이라도 쏘이고 오라고. 그러고보니 달래 혼자 그런 시간을 갖는 게 얼마만인지. 적어도 품자를 낳고 난 뒤에는 처음이었으니. 그나마 감자 때는 모유수유가 되질 않아, 분유를 타먹였으니, 아빠 혼자라도 맘마를 줄 수 있었지만, 품자는 여태 엄마 젖만을 먹으니, 그 자유시간이란 것도 두어 시간밖에 되질 않았지만.
달래가 모처럼 혼자 차를 몰고, 혼자 바닷가에 나가, 혼자서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고 오는 그 시간, 감자는 형아하고 놀았다. 마침 품자가 잠이 들어 형아를 감자 혼자 차지하고 놀던 그 시간. 감자는 형아를 냉장고 옆으로 끌고 가,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장난감을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그게 모가 그리 좋은지 마냥 행복해.
전부터 느낀 거였지만, 아기랑 잘 놀아주는 건, 타고나는 것 같다고. 사잇골에 살 때에도 꼬맹이들은 근이만을 그렇게 따르더니, 근이는 감자품자도 금세 매달려 떨어지질 못하게 만들어 ㅎㅎ 특별히 무얼 해주는 것 같지도 않는데도, 형아랑 하면은 모가 그리 좋은지.
그러나 한 가지 느끼는 게 있었다. 근이에게는 소통 능력이랄까, 공감 능력이라는 게 남다르다는 걸. 감자는 이제 겨우 낱말 몇 가지를 따라하기 시작하고,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말을 하긴 하지만, 감자에게는 분명 감자만의 언어가 있어. 그런데 근이는 며칠 지나지 않아 그걸 파악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냉장고에 붙이는 글자 모양 자석에는 ㅏ 나 ㅗ, ㅓ, ㅜ 같은 게 있는데, 그것들은 방향만 뒤집으면 다 똑같은 모양인 거. 하지만 감자에겐 어느 건 ㅏ, 어느 건 ㅓ, 어느 건 ㅗ, ㅜ 로 정해져 있는데, 그게 색깔로 구분을 한다는 거.
처음엔 근이도 그걸 헷갈려하더니, 아아, 지슬이는 색깔로 기억하는구나. 그럼 나도 똑같이 외워야겠네! 하면서, 감자가 말하는 ㅏ와 ㅓ, ㅗ, ㅜ를 함께 구분하기 시작하는.
4.
처음부터 형아에게 낮가림이 없던 품자는, 형아랑 마냥 즐거워. 형아가 와 있는 동안 감자와 품자는 그 어느 순간에도 누구 하나가 소외되거나 뒷전이 되는 일 없이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5.
자유시간을 얻은 엄마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시간, 감자는 아빠가 들고다니던 가방을 보더니 '도리'를 틀어달라고. 감자는 벌써 <<도리를 찾아서>> 애니메이션을 수십 번도 더 보았지만, 봐도봐도 열광하고 있는 그것. 노트북을 형아 방에 꺼내놓고, 영화를 틀어주면서, 그럼 아빤 테레비로 뉴스 좀 봐야겠다 하는데, 형아와 감자는 시종 흐트러짐이 없이 빠져들어 버렸네 ㅎ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니 한시간 반 쯤 되는 거였을까. 지금껏 수십 번을 봤다지만, 아기 집중력이라는 게 그리 오래가질 못해 그런 거인지, 어느 정도 보다보면 감자는 시들해지곤 했더랬다. 틀어달라고 그렇게 조르다가도 틀어주고나면 처음에만 반짝, 활짝 좋아하다가, 이내 장난감을 만지러 돌아다니게 되는. 그런데 이날은 형아랑 꼭 붙어 함께 보아서 그랬을까, 거의 끝나갈 즈음에 엄마가 들어와서 망정이지, 조금만 엄마가 늦게 들어왔더라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다 볼 기세였어.
6.
형아가 제주에 와 지내는 동안, 날씨가 내내 좋질 않더니, 일요일 오후엔 그나마 포근했다. 어디 가까운 바닷가라도 나가자, 하고 갔던 구엄리 바다.
아빠엄마랑은 자주 나와서 놀던 곳이지만, 형아가 있어서 더 신이나게 뛰어다녔다. 엄마는 품자가 맘마 먹을 시간이 되어, 차 안에서 품자를 먹이고 기다리는데, 한 시간을 넘어 두 시간 가까이를 놀고도, 가질 않겠대. 감자야, 이제 엄마한테 갈까? 하고 꼬시듯 물으면, "아니야, 여기!" 하면서 차 세운 곳이랑 반대 쪽으로 내달려 버려. 그럼 그때부턴 형아랑 아빠도 함께 달려갈 수밖에 ㅎㅎ 감자는 행복했고, 근이 형아도 좋아했다.
7.
품자는 이제 겨우 소파를 짚고 서기를 시작했어. 돌이 이제 얼마 남질 않았는데, 감자 형아도 다른 아가들보다 한참을 늦는다 했는데, 품자는 더 늦질 모야. 몸무게만으로는 다른 아가들 두 배에 가까운데, 앉는 거 기는 거 서는 거 걷는 거 같은 거 다른 아가들 반도 못 따라가 ㅎㅎ 감자 형아만 해도 돌 전에 벌써 짚고 서서, 거의 걷기 직전까진 했었다만, 품자는 이제야 겨우. 형아가 있는 동안엔, 형아가 있는 데를 쫓아가 몸을 일으켜 세웠네.
우슬아, 형아는 내일 갈 거야. 품자가 알아들을까. 형아가 가고 나면 감자품자는 얼마나 허전할까. 집 안이 텅 빈 것 같을 텐데. 없을 땐 몰랐어도 있다가 없는 자린 어마어마할 텐데.
여름방학 땐 볼 수 있을까, 글쎄, 형아도 자신하진 못하네. 군 생활 2년이 금세 지나갔듯이, 나머지 대학생활 3, 4학년 두 해도 눈깜빡할 새면 지나갈 텐데. 그러고 나면 정말 맨 손으로 살아가야 할 처지. 근이 형아는 막막해했고, 막막한 심정만큼이나 또한 그 무언가에 절실했다. 헬조선이라는 현실, 갈 곳 없는 청년들, 더우기 뒷배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형아로서는 그야말로 아득막막하기만 한 앞날. 순하디순한, 착하디착한, 때로는 맹탕같기만 해 걱정스럽기도 하던 형아는, 아빠와 둘이 밤마다 술잔을 건네며 진로에 대한, 앞날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 전에 없던 낯빛을 보이곤 했다. 그리고 단단한 다짐의 눈빛.
그 무엇이 되건, 남은 대학생활 두 해의 시간은 허투루 보낼 수가 없는. 세상에 나가기 앞서 최소한의 그 무엇을 준비해야만 하는.
그래서 근이 형아는 더 아쉬워했다. 어느만큼 헐렁하게 지내면서 주말에 한 번씩 아가들 보러 놀러오거나 하진 못할 거라는 걸 스스로 잘 알기에. 일단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쉬엄쉬엄 놀아가며 해서는 안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지슬이랑 우슬이 보고싶겠다...."
8.
형아가 올라가기 전날, 그날은 평일이었지만, 마침 아빠가 오후 늦게 세계유산센터 공사감독관에게 제출할 서류가 있던 날. 감자와 품자, 형아랑 엄마까지 다함께 차를 타고 동쪽으로 넘어갔다. 어차피 서류 제출하고 나오면 퇴근시간 무렵이 될 테니, 거기까지 가는 길에 다 같이 오름에 올라가보자! 하고선.
근이가 있어 가능했던 감자품자와 오름 오르기. 적어도 아기 하나씩은 누군가 안거나 업어 올라야 할 텐데, 달래가 안고 오르기에는 힘겹기만 할. 품자는 아빠가 안고, 감자는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다가 근이 형아가 안기로 하고선 오름을 찾았다. 동쪽에 있는 많은 오름들 가운데, 그나마 가파르지 않고 높지 않은 백약이 오름.
실은 아빠가 세계유산센터에 서류 제출하러 가곤 할 때, 시간이 조금 괜찮다 싶으면 그 둘레 오름 한 곳씩을 골라 오르곤 했었는데, 지난 번 준공서류를 내려갔다가 올라보니, 여기라면 달래도, 아가들도 함께 오를 만하다 싶었던 곳.
처음엔 감자도 씩씩하게 걸어올라 ^ ^
그러다가 길이 나빠지기 시작하면서는 근이 형아 품에 안겨.
품자는 아빠 품에 ^ ^
오름 분화구에 다 올라서니 저 멀리 바다가 보여. 저 멀리 성산 일출봉까지.
어머나, 노루들이야! 엄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우리랑 멀지 않은 곳에 노루 두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어. 한참도록 달아나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가만가만. 안녕, 노루야! 노루를 보면은 아주 큰 행운이 따른다던데, 노루들이 가고 나서는 다 같이 바다를 내다보며 소리를 질렀네. 감자야, 화이팅! 하자. 근이 형아, 화이팅! 형아, 힘내!
분화구에서도 좀 더 높은 봉우리가 있어. 거기에 오를 땐 감자도 다시 씩씩하게 혼자 걸어 ㅎ
근이가 육지로 올라가기 전, 그렇게나마 온 가족 다 함께 오름에 올라가기를 잘했다. 분화구 끝에 올랐을 땐, 달래랑 아가들은 두고, 근이랑 둘이서만 분화구 한 바퀴를 돌며 이야기를 나눌까 했지만, 오름 정상에 바람이 얼마나 불던지, 달래에게 둘을 맡겨두기란 무리였다. 하지만 근이에게 하고픈 말이야, 이미 다 전해지고도 남았겠지. 며칠을 함께 하는 동안 나누었던 얘기들에, 어쩌면 보태지 않아도 좋을 첨언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올라가기 직전, 근이는 지슬이 우슬이 덕에 참 많이 웃었다고 했다. 오기를 잘했어, 형. 정말 많이 웃었어. 그리고 울기도 많이 울었고, 그냥 혼자였으면 맨날 멍때리고 그랬을 텐데, 심각하게 생각도 많이 하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는 얘기는 알겠는데, 울기도 많이 울었다니. 울었구나. 자러 들어간 방에서, 울기도 했구나. 그 말에 짐짓 속으로 놀라기는 했지만, 울었다는 거에 그리 걱정이지는 않았다. 그럼, 스물넷, 그 나이면 얼마나 많이 울 때인가. 나는 그 나이에 얼마나 또 울었던가. 걱정이라면 울 줄을 모르는 게 걱정이겠지. 더 많이 울어야 하고, 더 많이 슬프기도 해야할. 그렇게 하면서 조금 더 내 안으로, 세상으로 한 발짝씩 더.
근이를 공항에 바라다 주고, 일을 하다 돌아온 퇴근 길. 형아를 찾으며 목놓아 울었다는 감자를 보면서, 놀라웁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게 걱정이거나 이상스럽진 않았다. 안쓰러운 마음 한 편에는,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아, 감자도 이제 슬픔이라는 걸 아는구나. 그런 감정을 느낄 줄을 아는구나. 슬픈 거, 그리운 거, 보고 싶은 거, 헤어지는 거, 기다리는 거, 그래서 더 반가운 거.
처음이었다. 할머니가 몇 달을 지내다 가셨을 때만 해도 감자는 아직 그런 감정을 느낄 줄을 몰랐다. 그 뒤로 누군가와 헤어진다고 하여 그렇게 울며 찾는 일은 여지껏 없었다. 그런데, 혀엉, 혀엉 하며 구슬픈 목소리를 내며 슬픈 얼굴을 해. 그 다음 날 아침도 눈을 떠 일어나면서 구슬픈 목소리로 혀엉, 혀엉.
나보다 스물한 살이 어린 근이는, 어릴 땐 삼촌이라 부르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나더러 형이라 부르고 있어. 감자는 근이보다 스무 살이 어리니, 근이는 감자에게도 자기에게 형이라 부르라고. 근이는 스물한 살 많은 나에게 형이라 하고, 감자는 스무 살 많은 근이에게 형이라 한다. 이렇게 형과 아우, 다시 또 형과 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