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공이 쉬는 날은 월요일. 일주일에 한 번 문을 열지 않는데, 그렇다 해도 그날이 쉬는 날인 건 아니다. 장을 보러 다니고, 한 주 장사를 준비하고, 그동안 챙기지 못한 일들을 해야 하는.
암튼 난장이공의 공식 문닫는 날은 매주 월요일인데, 정기휴일말고 하루를 더 쉬어야 하는 일이 있어. 그래서 카페 안에도 조그맣게 알림판을 붙여 놓았다. 부산으로 북콘서트를 다녀오는 날.
이건 그날 행사를 마련한 '책과아이들'이라는 책방에서 올려놓은 포스터.
카페를 하면서 좋은 것 가운데 손꼽을 수 있는 것 하나는, 그 공간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거. 시와의 앨범은 언제나 손 닿는 가까이에 놓고 즐겨듣지만, 요 며칠 더더욱 마음이 꽂히는 곡이 있어. 이 노랫말과 그에 꼭 맞는 선율.
어제보다 느려진 나는 내일보다 조금은 길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슬프거나 아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언제나 처음인 저녁 쪽으로
마지막의 들판 쪽으로
김선재가 쓴 <마지막의 들판> 이라는 시. 시와는 이 시를 보자마자 바로 곡이 떠올라 노래를 만들었다던가. 이번 부산 북콘서트에선 이 노래를 부탁하고 싶다. 듣고 싶다고 해야지. 불러달라고.
마지막 들판
김선재
내 다정한 안부를 전해요
둘이 듣는 혼잣말처럼, 한 번도 들린 적 없는 속삭임처럼
여기는 지구의 첫 별이 뜨는 곳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모서리를 접는 곳
이상하게 부풀었다가 기쁘게 사라지는 곳
그러니 잊어도 좋아요 구름을 구획하는 바람이 우리를 거둘 때까지
둥글게 둥글게 여행을 떠나요
기억할 필요 없어요
뚫린 천장 위로 날아간 새가 자신의 곡선을 기억하지 않듯이
처음 태어난 지도를 따라
단종(斷種)될 말들의 사막을 건너가요
모래의 책을 건널 때마다 넓어서 캄캄할 때마다
검은 구름이 달려왔다
나는 절망을 절정으로 바꿔 적기 시작했다
내가 건넌 것은 구름의 푸른 웅덩이
내가 지나가야 할 곳은 푸른 웅덩이 속 검은 구름
나는 어제보다 느려졌고 나는 내일보다 조금 길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슬프거나 아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때까지
언제나 처음인 저녁 쪽으로
마지막의 들판 쪽으로
그러니 이제
당신의 안부를 묻지 않아요
묻은 것과 묻지 못한 기억 밖으로
여행을 떠나요
돌고 돌아 돌아오지 않을 쪽을 향해
당신의 짧은 눈썹에서 햇빛이 사라지기 전에
곧 흩어질 내 인사를 전해요
_ 김선재 <<얼룩의 탄생>> 문학과지성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