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들면서 제주도엔 사흘밤낮을 쉬지 않고 눈이 내려. 그렇다고 육지에서 맞던 그런 탐스럽고 따뜻해보이는 동전만한 솜털 눈송이들은 아니, 진눈깨비 같기도 하고 우박같기도 한 까스르르한 알갱이들이, 소금뿌려대듯 싸라락싸라락. 눈이 다 내리고 난 한라산이나 중산간의 풍경이라면 모를까, 막상 눈을 맞고 있을 때는 낭만스럽거나 그런 게 하나 없다. 바람은 또 얼마나 불어대는지, 그 까스르르한 알갱이들이 미친 바람을 타고 이리 때리고, 저리 때리고 ㅠㅠ

 근이 형아가 감자품자네 집에 와 지낸지 엿새 째 되던 토요일, 정월대보름이라지만 하늘에는 검정색 눈구름만 가득. 벌써 이 년이 지났구나. 군에 들어가기 직전 소길리 감자네집에서 한 달 가까이 보내다 올라갔는데, 이제는 제대군인이 되어 하가리 감자품자네 집에서 함께 하고 있는. 그렇담 이번 주말 촛불집회에는 근이 형아하고도 같이 나가자고, 벌써부터 약속을 하고 있었건만, 날씨가 그 모양이라.

 아무래도 그 눈발과 추위 속에 품자가 함께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 근이 형아랑 감자, 아빠 셋이서만 다녀오기로 했다. "감자야, 형아랑 촛불집회 가자!" 하니 감자는 벌써부터 맨발로 뛰어나가며 감자촛불을 집어 들곤 하야송에 맞춰 추는 춤을 추며 좋아해. "옷입고 가야지, 옷입고!" 아아아앙. "밖에 얼마나 추운데, 신발도 신어야지." 아아아아앙. 옷을 챙겨입히려니까 그것도 귀찮다며 촛불을 들고 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앙, 얼른 가자고 아아아아앙.  

 

 

 집회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시청 앞엔 여느 주말보다 사람들이 적어. 눈이 그렇게 왔으니 아무래도 한라산을 넘어 와야할 서귀포 쪽 사람들도 이번 주엔 어려우려나, 이 추운 날씨에 아무래도 많이들 나오지 못하려나, 싶은.

 

 

 와아아, 근이 형아가 있으니까 좋으네. 아빠랑 둘이서만 왔더라면, 아빠 혼자서 감자를 챙기느라 손이 모자랐을 텐데, 이번 주엔 근이 형아가 밀어주는 유모차에 앉아 ^ ^

 

 

 처음엔 멀찍이 자리했어도 무대가 훤히 보였건만, 날이 점차 어두워지고 저녁이 깊어지면서는 다시 사람들이 가득 메웠다. 광화문에는 다시 팔십만이 촛불을 밝혔다던가. 탄핵 안이 상정되고 나서거나, 연말을 지나고, 새해를 보내고 나서거나, 한 호흡 쉬어가던 명절 연휴를 지나거나, 이제쯤은 촛불에도 동력이 조금씩 빠지지 않으려나, 하다가도 그게 아니곤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얼마나 놀라운지. 천만을 넘어 어느덧 연인원 천오백만이 되어. 아, 맞다. 이날은 전국에서 글과그림 이모삼촌할매할매들도 다같이 광화문에서 함께 하기로 했다지. 도토리 이모야가 보내어준 광화문 사진에, 근이 형아랑 감자 사진으로 메아리를 전하면서, 우린 여기 제주에서 촛불을 하고 있어요! 얘기해 ^ ^

 

 

 유모차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감자는 엄마를 찾으며 앙,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아기띠로 아빠가 안고 있다가도 까닭없이 앙, 앙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무어가 불편했을까, 무대가 잘 보이질 않아 그러는 걸까, 어쩌면 좋을까 하다가 유모차에 아기띠에 묶여만 있어 답답해 그런가 보다 하고, 맘대로 걸어 움직일 수 있을만한 한적한 자리로 옮겨.

 

 

 평소처럼 촛불을 들고, 무대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곤 하다가도 한 번씩은 꼭 키다리 형아를 올려다보면서 곁에 있는지를 확인해. 첫날 낯을 가리며 적응하던 시간을 빼고는, 감자는 어느덧 근이 형아바라기가 되어 버렸어 ㅎ

 

 

 그렇게 근이 형아와 함께 한 15차 촛불이었다. 지금껏 촛불을 들고 선 광장 가운데 날이 가장 춥던.

 

 아무래도 감자가 유모차에 있다가, 아기띠에 안겨 있다가 한 번씩 앙, 앙 울음을 터뜨리던 건, 추워서였던 것만 같아. 춥다는 말은 아직 할 줄을 모르는, 그러니 어떻게 해달라는 말은 더더욱 할 줄을 모르니, 몸이 추워 어쩌지 못할 때마다 할 수 있는 건 앙, 앙 울음을 터뜨리는 것 밖에 ㅠㅠ

 감자야, 미안. 어쩜 이 추운 날까지 감자를 안고 촛불을 들려한 건 아빠 고집이거나 욕심이었을까. 아빠가 꼭 안고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등이랑 배에 핫팩을 붙이고 목도리랑 모자 장갑을 꽁꽁 싸매면 괜찮지 않을까 하면서. 게다가 근이 형아랑 함께 할 수 있으니, 그렇게 셋이 간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날보다 더 좋아라 하면서. 하지만 집회를 하는 동안 때, 움직임도 없이 유모차에 앉아 가만히, 아기띠에 매달려 가만히, 그렇게 가만히만 있기에는, 찬바람이 파고드는 걸 견디기가 어려웠으리라는 걸. 차라리 유모차 아기띠 말고 광장 한 쪽에서 처음부터 맘껏 뛰어놀면서 있기라도 할 걸. 아마도 그때 그 울음은 춥다고 얘기하는 감자의 말이었을지 모르는데.

 

 진작 감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던 거 미안했지만, 그래도 나중엔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근이 형아랑 촛불을 들고 움직여다니며 함께 했던, 감자랑 근이 형아랑 셋이서 함께여서 좋았던, 그날 촛불.

 

  

 

 그날 아침엔 감자품자네 집 마당에도 눈이 하얗게. 그래서 아침밥을 먹자마자 근이 형아랑 나가서 뽀득뽀득 눈을 밟으면서 꾹꾹 눈도장 찍기 놀이를.

 

 

 

 

 근이 형아가 꾹꾹 뭉쳐 만들어준 꼬마눈사람 앞에서, 감자는 손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것도 모르고, 신발 도장을 들고서 눈 위에다 발자국을 꾹꾹. 그러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 근이 형아랑 함께 나갔던 그날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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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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