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
미진이
죽변살 적에 만났던 아이들. 첫만남은, 그러니까 그게 벌써 육칠 년도 더 전인가 보다. 울진읍, 고 조고만 읍내 군청 앞에서 거의 날마다 종이학을 접고 서명지를 들고 서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날마다 함께 나와 종이학을 같이 접고, 피켓을 나란히 들고 서던 아이들이 있었어. 그 때가 얘들 중3이었지 아마. 그렇게 알게 된 녀석들, 아마 고 녀석들이 고3으로 올라갈 무렵나는 목수학교에 들어가면서, 거의 그렇게 울진을 뜨게 되었을 텐데, 그러고 난 뒤로야 뭐 연락이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고 녀석들은 나도 잊고 지나던 생일을 기억해 죽변 집까지 쳐들어오기도 하고, 목수학교엘 입학할 거라고, 이젠 한동안 못 볼 거니 밥이나 먹자 하니 어느 새 철물점으로 달려가 망치에 끌, 줄자 따위를 사다 리본까지 묶어 선물로 건네주곤 하였는데.
고 가운데 한 녀석과 지난겨울부터 연락이 다시 되었다.내 기억엔 여전히 중3 꼬맹이들이었는데, 아니, 니가 벌써 4학년이라고? 그럼 너도 머리 파마도 해보고, 화장 같은 것도 하고, 어쩌다 술 먹어 전봇대 붙잡고 우엑웩 토도 하고 그런 것도 다 해봤겠네? 올 해는 휴학을 했다던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요, 라고 말을 했다. 진보정치연구회인가, 하는 동아리엘 들어갔다는말을 한 것도 같고,겨울엔 일을 하러다닌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그러면서보내온 메일 어느 표현에는 노동계급성을 배우고 싶어요, 라는 말이 있기도 하여조금은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고백같은 아이의 말들에 이러구저러구 나름 자상하게 무슨 말이건 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런 말들에 대응이 될만한 얘기같은 건 삼가하기만 했다. 힘들어요, 라고 말을 건넬 때에도 섣부른 위로나 격려 따위의 말 같은 건 그냥 저버려두었다. 내내 나는 사오정처럼 못알아들은 시늉만을 하면서 이야, 돈벌면 아저씨 맛있는 거 사줘야겠네, 이거 언제 뜯어먹으러 가야 하나, 하면서 눙이나 쳐댔다. 아이는 중3교복을 입고 알게 되던 때부터 늘 감동이었고, 아이가 쓰는 글, 편지들은 신기할 정도로마음을 울리는데가 있었다. 진보정치연구회에 들어가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싶다는, 제 몸으로 일을 하며 노동계급성이라는 걸 배우고 싶다는, 그런 말들이, 솔직히 나로서는, 기특하다거나 그렇다기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너는 그렇게 저를 둘러싼 알의 껍질을 깨고 나오려 하고 있구나, 몸살 같은 어떤 것, 성장통에 가까운 그것. 아파야만 지날 수 있는 것, 아프지 않고서는 건널 수 없는 것,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고, 그 길이 아니라 이 길이야 라고 말을 해줄 수도, 해준다 해도 들릴 수가 없는 그런 것.
- 이렇게 좋은 봄날, 아저씬 뭐해요?
- 공부도 안되면서 도서관에만 하루종일, 바깥에만 내다보네. ㅠㅠ아가씬 뭐하시나요?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다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춘천엘 갔다 원주로 돌아가고 있는 길이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거 운동원을 하기로 했다나. 얌마, 그럼 너 아저씨한테 잘보여야 되는데. 아저씨가 뭔데요? 뭐긴 뭐야, 임마. 나도 강원도 선거에 한 표가 있는데. 너 하는 거 봐서 엄머시긴지 하는 그쪽 찍어버린다. 아, 안 돼요, 이번에는절대로OOO이되는 걸 막아서…….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만을 하는 아이에게 나는 잇달아 딴청을 피우면서, 그럼 출근길에 줄 서서 하얀장갑 끼고 춤도 추고 그러는 거야? 로고송은 뭘로 했어? 아이유 노래로 하자 그러지……. 어쨌건 아이가 내내 밝게 말을 하니 반갑고 좋았다.그 선거판을 지나고 어쩌면 너는 또 더 많은 것에 좌절하게도 되겠지. 이기면 이기는대로, 지면 또 지는대로. 다시 또 절망하기도 할 테고, 허망한 것들은 부정한 것들만이 아님을 알게 되기도 하겠지.
얼마나 컸나 궁금하다 했더니"아저씨, 저 이만큼이나 자랐어요!"라고 문자를 찍어 보내온 사진.
윤정이
그 때 윤정인 더 어린 꼬맹이, 초등학교 4학년 아이였다. 그 때 그 반 담임을 맡던 달래네 반 교실에서 만나게 되었던. 살람 아저씨랑 같이 그 교실을 찾기도 했고, 그 교실 아이들과 별음자리표 음반 녹음을 함께 하러 들르기도 했을 거다. 그 교실에 있던 꼬맹이 중 하나가 이 아이인데, 맨날 야구모자 같은 거를 푹 눌러써서 얼굴도 잘 보여주질 않고, 다정히 얘기라도 나누고 싶어 말을 건네면 기어드는 목소리로 수줍어하기만 해서, 낯선 어른이 말 거는 거 싫어 그런가 보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요 녀석, 얼굴 보고 있을 때는 건네는 말에 대답도 그리 않기만 하더니, 편지를 자주 보내오곤 했더랬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편지의 횟수가 아니라 그렇게 글로 쓸 때는 얼굴을 싹 바꾸어 재잘거리기를 좋아해. 아저씨, 아저씨 해싸면서, 냉이 아저씨 어쩌구. 더러 아이들 글을 읽곤 하기에 고 또래 아이들이 쓰는 글이 어떠한지를 대충은 알 텐데, 요 녀석에게는 남다른 신비한 매력이 있었다. 엄마가 아마 울진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했더랬지, 엄마 가게에 일 도와주러 갔다 왔다는 얘기며,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며, 아까 낮에 일인시위하는 곳에 찾아갔다 길 건너편에서 보고왔다며 쓰는 얘기며, 그러한 이야기들을 꾸밈도 숨김도 없이, 전혀 어른을 흉내내지 않은 목소리로 건네곤 했던 것이었다. 아저씨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어요, 제가 용돈 모아서 산 거예요, 요즘 아이들은 선물이라는 것도 "엄마, 선물살 돈 좀 줘." 해서 하는 줄만 알았더니, 그렇게 모았다는 돈으로 목도리를 상자에 담아 보내오기도 해. 고 말 수 적은 꼬맹이 아가씨가.
그러던 고 꼬맹이 아가씨에게도 지난겨울부터다시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고등학교에 입학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며.그 가운데 몇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