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달별

냉이로그 2013. 3. 16. 09:13





 창호 제작과 설치를 맡은 소목이 팔을 다쳤다. 다음 주면 준공 심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사고가 제법 컸는지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일단 미리 만들어놓은 창호를 화물로 올려받기는 했는데, 사장은 다른 소목이라도 부르려 하지를 않는다. 그냥 너희들이 알아서 달면 안 되겠느냐고. (여기에서 더 쓰면 엄청난 얘기들이 이어지겠으니, 어쨌든 내 얼굴에 침뱉기요, 내가 녹을 받아먹는 곳 욕밖에 되지를 않겠으니, 그 얼척없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야 이 정도로만 생략 ) 그것도 일주일에 단 한 번 집에 올라가는 주말에, 이런 젠장. 

 받아놓은 창호들을 문선과 인방이 가로세로로 내고 있는 문틀에 대고 보니 규격도 제각각이다. 문살들도 도면과 맞지를 않아. 제대로 짜놓은 창호를 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건, 이 일 먼 발치에서 구경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인데, 창호의 폭과 높이가 일 전 이상 차이가 나고 있어. 게다가 겨울을 나기 전에 짜놓은 목가구는 이미 틀어질대로 틀어지고, 돌아갈대로 돌아가 수직수평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다. 소목 연장도 하나 갖춘 것이 없어, 돌쩌귀에 문고리, 국화쇠 같은 건 한 번도 달아보지를 않아. 자칫하면 양 문짝이 제대로 맞질 않고, 자칫하면 삐걱거리며 어긋나게 될 일. 그나마 다행이라면 여기는 사람이 들어가 사는 살림집이 아니라는 정도. 만약에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조그만 틈 하나로도 황소 바람이 들이치게 될 거고, 조금만 문짝이 맞질 않아도 여닫고 드나들 때마다 짜증이 솟아, 하자가 눈꼽만치라도 나면 두고두고 원망을 사게 될 그럴 일이다. 상황이야 어쨌든, 몰리고 몰려, *상 형님과 함께 직접 창호를 달아야 했다. 세살문이 여섯짝에 살창 둘, 그리고 판문 하나.


 



 주말이고 뭐고, 어느덧 밤이 깊어.    





 젠장, 어차피 집에 일찍 올라가기는 틀린 일, 문틀에 맞춰 창호를 대어보고 그랭이를 떠 문얼굴부터 깎아내야 할 판. 야간 작업등을 켜놓고, 내가 대패로 밀고 나면 *상 형님이 돌쩌귀 자리를 잡아 창호를 걸어. 그래도 맨 처음 건 한 짝을 거는 데만 세 시간이 넘게 걸리더니, 그 다음 것은 한 시간이 줄고, 그 다음 것은 삼십 분이 줄어.  





 처음엔 문얼굴에 돌쩌귀를 몇 번 치다가도 갈라짐이 생기고 하여, 자칫하면 창호 자체를 날려먹게 될지도 몰라. 그조차도 조심스러워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달아가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 터득되니, 그 재미로나마 ㅜㅜ. 그러고보니 지난겨울 달래랑 같이 디아이와이 하는 곳엘 가서 집안에 놓을 수납장이며 선반 같은 것들을 짜고 만들 때, 문을 만들어달곤 했는데, 그 때 배워서 하던 요령과 그리 다르지가 않더라. 최대한 문을 위로 올려붙인 뒤, 창호 아래에는 쐐기를 넣은 뒤, 양쪽 창호가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문인방에 걸리지 않도록 돌쩌귀를 조정해, 그 높이와 간격을 잡아…. 이 날 *상 형님은 의정부에 사는 형수와 두 딸아이가 주말을 함께 보내려 내려오기까지 했다. 어차피 상주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겠으니, 현장으로 직접 내려와. 이미 깜깜한 시각에 도착, 그러고도 현장에서 그 세 식구가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며, 일곱 살 막내는 아빠, 언제 끝나? 재촉하는데도, 사장은 그만 들어가자 소릴 하지 않아. 그래도 * 형은 좋겠다, 나는 강원도까지 언제 올라가냐구 ㅜㅜ  





 저녁 여덟 시만 되어도 그 산골짝은 이미 어둑깜깜, 무심결에 올려다본 하늘에는 벌써 별들이 쏟아졌다. 그렇게 아홉 시가 되고 열 시가 되어. 마을도 멀리 있는 산중이니 산짐승이라도 내려올 것 같은 깊고 어둔 곳. 하늘엔 초승달 하나, 쏟아지는 별빛, 그리고 작업등 하나에 의지하고 대패질에 샌딩까지 앵앵앵앵. 달빛, 별빛 쏟아지는 아래에서 대패질이라니, 말로만 놓고보면 낭만적이기 그지 없을지 모르겠으나, 나중에는 눈이 자꾸 감길라 하고 주저앉고 싶어만 지더라. 욕을 하기로 하자면야, 포크레인으로 두 바가지는 나오겠으나, 그래, 훗날엔 이것도 추억이지. 어차피 하는 거, 즐겁게 하자고, 하루에도 속으로 수십 번도 이 말을. 앞으론 또 얼마나 빡세게 가게 될지, 이제 시작인 걸 모.

 밤 열 시가 넘어, 도무지 않되겠다 싶어 연장을 내려놓았다. 집까지 네비를 찍어보니 01시 43분 도착으로 나온다. 그러고보니 저녁엔 빵 한 쪼가리, 컵라면 하나밖에 먹지를 못했네.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눈은 감겨오고, 이 길을 어떻게 올라가나. 문경, 충주를 지나 제천, 영월로. 집 앞에 내려 빨래들을 챙겨 내리는데, 여기 하늘에도 아까 그 달별이 쏟아지고 있어. 집까지 조심히 가라고 보살펴주려 따라 붙었나 보다. 저 달별마저 없었더라면 얼마나 외로웠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