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어쩐지 엊그제부터 설사가 죽죽이라, 집에 들어가면 엄마한테 아침에 죽 쒀달라 하고, 저녁엔 술먹고, 다시 아침 죽을 쒀먹고, 저녁엔 술. 약국엘 갔더니 요즘 유행한다는 무슨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것 같다나 모라나. 하필이면 이럴 때 꼭 그런다니까. 줄줄이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술을 겁내야 해 ㅜㅜ
홍대 앞, 한 나절 가까이 시간이 떴다. 찜질방에 들어가 엎어져 배를 지질까 어쩔까 그러다가 상상마당 지하 사층의 영화관엘.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고양이 영화라기보다는 마음에 구멍이 난 사람들 이야기. 아니, 그 구멍을 메우는 고양이 이야기. 추운데서 떨다 들어가 그랬을까. 좋다, 재미있다, 하면서도 까무룩 눈꺼풀이 감겨, 억지로 들어올렸다가도 또 까무룩, 까무룩. 중간중간 그렇게 까무룩 졸음을 이기진 못했지만, 영화는 그렇게 감겨오는 졸음의 달콤함처럼이나 좋았다. 다행히 영화는 몇 개의 에피들이 이어지는 것이어서 놓친 장면이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 영화관에서 나와 이제라도 막간에 찜질방을 가 엎어질까 하다가 들어온 막간 피씨방.
미루고 미루어오기만 하다가, 오전엔 요 앞에서 편집자를 만났다. 지난여름부터 전화통화만을 몇 차례, 계약서는 쓰지 않겠다고, 내 맘대로 하겠다고, 담당 편집에게 이 찌질이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럴 자신 있겠냐며, 질질 끌기만을 해오고 있었다. 물론 내내 현장에서 일을 하느라 잠시 짬을 내어볼 무엇도 되지가 못했지만, 정작 나 자신이 한참을 주저하고 있던 거였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었고, 이렇게 미루기만 해서는 이도저도 되지 않겠다 싶어, 마침 전화를 걸어온 담당편집자를 만났다. 해 보자고 했다. 몇 해만인가, 글을 쓴다는 것이.
종남이 형 블로그에서 오려온 사진. 엊그제 숭례문 식구들을 만나 저녁을 함께 하던 자리. 나야 고작 두 계절을 그 안에서 보냈지만, 대부분 삼 년 가까이 그곳에서 일해온 주역들. 마흔이 다 되도록 어디를 가나 구석자리만을 찾아 쭈뼛거리기만 하던 내가, 숭례문 현장에서는 징그러울 정도로 이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찡붙고 엉겨붙었더랬다.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놀라울 정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그곳 식구들은 구박을 주면서도 잘 받아주었고, 챙겨주었고,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것처럼 정을 나눠주었다. 그곳 숭례문에서 인연을 맺은 형들과 아우, 그리고 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