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셈의 편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홈페이지에 하이셈과 알리에가 메신저로 나눈 이야기가 올랐다. 하이셈은 3년전 전범민중재판을 열 때 살람 아저씨와 함께 이라크인 증언자로 다녀가 맺어온 인연.그이는 의사로 적신월사 활동을 하면서 이 전쟁으로 아프고 다친 이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아왔다. 하이셈은 이라크인이지만 어려서부터 영국에서 살았고, 오랜 시간을 영국에서 생활하며 삶의 근거지를그곳에 두고 있으면서도침공과 점령이 시작된 뒤 이라크로 돌아가 아픈 이들을곁에서 지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든 그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가려고들 할 때하이셈은 오히려 고통받는 제 형제와 이웃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지난 해11월 하이셈이 한국에 다녀갈 때 하이셈은 바드다드의 가라다 거리에 있는 약국을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찾아 왕진을 다니듯 치료를 하며 지낸다 했다. 얼마 전 이라크 관련 기사들을 살피다가 경향신문 기사 (2007. 1. 12)에서 헤이뎀이라고 소개된 의사의 말이 인용된 것을 보고 혹시 우리의 친구 하이셈이 아닌가 싶어 그이를 떠올린 일이 있었다.“바그다드 카라다 시내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헤이뎀 잘잘라는 “(미군의 증파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라 쓴 기사를 보면서 ‘가라다 시내’, ‘약국’이라는 말에 우리가 아는 그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헤이뎀’이라는 이름도표기를 그리 했을 뿐 거의 비슷해 보였고 말이다. 다만 ‘잘랄라’라는 뒷 이름이 낯설어 하이셈의 긴 이름을 다시 찾아보니 ‘하이셈 카심 알리’라 되어 있기에 그럼 아닌가 했는데, 알리에와 나눈 편지 글을 보고서야 며칠 전 기사에서 본 ‘헤이뎀 잘랄라’도 우리의 친구 ‘하이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하이셈과 알리에가 메신저로 나눈 이야기, 이렇게 하이셈의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들으니 기사만을 놓고 볼 때보다 더 소름이 돋는 듯 하다.
하이셈에게 편지를 썼다. 여태 한 번도 편지를 보내지 못해 마음으로 늘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하이셈 미안. 나는 영어를 잘 못해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수도, 한 번 편지를 쓸 때마다 누군가의 번역 도움을 받아야 해서 쉽지 않았어. 자주 소식 보내지 못하는 거 용서하길, 어서 빨리 그곳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랄게요. 그 때까지 하이셈도 잘 이겨내고, 잘 견뎌내세요. 보고싶습니다. 앗쌀람 알라이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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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5일 전범민중재판을 마치고 살람, 하이셈과 바끼통 회원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가운데 앉은 이라크인 두 분 가운데 왼쪽이 하이셈, 오른쪽이 살람)
* 하이셈과 함께 한 더 많은 사진들 - [사진 이야기] 살람과 하이셈 이라크로...(2004. 12. 23)/별음자리표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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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라크 의사 하이셈 잘잘라(우리 사이트에도 '이라크,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그의 글이 있습니다.)가 한국 친구 '알리에'와 메신저로 한 이야기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신문 방송에서 이라크 뉴스가 점점 줄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라크 상황이 안정돼가는 건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점점 더 나빠집니다. 우리가 무관심해질 뿐입니다.
안녕.
어젯밤에 네가 말 걸었을 때, 맞아, 기분이 좋지 않았었어.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난 제정신이 아니어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정도였어. 미안해.
집에서 가라다 거리 (가라다, 타흐리르 광장, 알 사둔 거리: 바그다드 시내 중심가) 로 오는 길에, 타흐리르 광장을 거쳐서 알 사둔 거리를 지나곤 해. 어제, 내가 타흐리르 광장을 지나가고 3분 정도 후에, 내가 알 사둔 거리를 아직도 달리고 있을 때, 타흐리르 광장에서 엄청난 폭발이 있었다. 너무 가까웠고, 너무 무서웠어. 백미러로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게 보였지. 몇 초 후에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폭발이 있어났어. 난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운전도 계속 할 수가 없었고, 그저, 몇 분만 늦었더라면 내가, 저기에서, 죽었겠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어떻게든 온 힘을 짜내서 겨우 약국에 도착할 수 있었지.
약국에 멍하니 앉아서,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을 때, 어머니와 여동생, 형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약국에 나갈 때 그 길로 다니는 걸 아시니까 뉴스를 보고는 미친 듯이 걱정을 하신거야. 어쨌든,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폭발이 먼 데서 일어났고,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렸지.
그 후로 몇 시간 동안, 난 정상적인 인간처럼 행동할 수 없었어! 너무 머릿속이 복잡했고, 생각을 할 수도,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난 멀쩡했지, 다치지도 않았고..나한테 눈에 보이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니야. 하지만 난,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나서, 그 폭발로 120명 정도가 죽고 150명이 다쳤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것도 잠정적인 집계일 뿐이래.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삼십분 쯤 지났을 때 네가 말을 걸었던 거야. 그리고 그 때, 내 친구 중 한명이 그 폭발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난 무너져버렸어. 그래서 너랑 얘기를 할 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었어.
그리고 나자 시간이 늦어서 일어나야만 했어. 진실로 시간이 그렇게 간 줄도 몰랐다. 그렇게 늦게까지 있어본 적이 없는데. 난 더 당황해서, 짐을 싸들고는 떠날 준비를 했어. 여전히 머리가 혼란스러웠고, 멍했지.
천만다행으로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간밤에는 한 숨도 잘 수가 없었어.
오늘 아침에, 가라다 거리에서 또 한번 폭발이 있었어. 약국에서 멀지 않은 곳이야. 또,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누구 하나 이 젠장맞을 사태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를 않아..젠장..
너무 화가 나..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나..하지만 정말 말을 하고 싶었어.
안녕, 잘 지내?
나는.. 글 쎄. 여직 살아있다니 용하지.
지난 목요일에, 5시 쯤 내가 약국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근처에서 폭발이 있었어. 엄청 컸지..
많은 사람들이 항상 붐비는 큰 시장에서 일어난 폭발이야. 나는 가서 도와주려고 했지만 경찰들이 막았어. 도로는 전부 봉쇄되었고.
경찰들이 그러는데, 가라다 거리 주 도로에 폭발물을 가득 실은 미니버스가 한 대 더 있다는거야..약국 바로 다음 골목인데. 그래서 지금 그걸 손보고 있는 중이래.
그 지역에서 사람들을 소개시키기 시작해서, 나도 서둘러 약국을 닫고 차를 몰아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큰 폭발 소리를 들었어. 집에 도착했을 때, 가라다에서 한 친구가 전화를 해서, 아무도 그 미니버스를 손대지 못했다고 하더라. 폭발물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대. 그래서 로봇을 만들어서는 인위적으로 폭발시키게 했다는거야. 첫 번째 폭발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두 번째 폭발로도 많은 피해가 있었지. 폭발이 있었던 길 가에 있던 건물 세 채가 완전히 내려앉았어..
내 약국에 있는 창문들도 다 깨졌지.
하지만 난 운이 좋아. 거기 없었으니까. 거기 있었다면 지금쯤 죽었겠지.
그래서..난 아직도 살아 있다구,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