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죽음

냉이로그 2007. 2. 12. 19:36



씨티 촬영인가를 하느라 방사선과 앞에서 무슨 반응 주사를 맞고 기다리는데 그 건너편 응급실에서 목놓아 우는 소리들이 들렸다.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한 이십 분을 그 곁에 있었다. 어느 침대 둘레로 여러 사람들 매달려 철철 울었다. 갑자기 맞이한 죽음이었을까, 진작 병원으로 모시고 오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하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 모습들에 처음에는 그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간호사가 식구들더러 장례식장 쪽으로 가 기다리라 했고, 누군가 죽은 몸에 덮을 옷 같은 것을 가져왔다. 식구들은 좀체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간호사는 남자 식구 한 사람만 남아 도우라 하며 나머지 식구들을 응급실 밖으로 이끌었다. 그 때 병원을 가득 울리는 한 아주머니 울부짖는 소리, 아마 따님이었겠지. 나는 먼 자리에 앉아 있느라 잘 볼 수도, 아니, 눈을 그리 두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아마 막 수의를 입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굴과 머리까지 무언가로 씌워 여미는. “그러면 이제 얼굴을 못 보는 거잖아. 얼굴도 볼 수 없잖아!” 그 애절한 흐느낌에 나도 그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무섭고 슬퍼, 어쩔 줄을 몰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반야심경 뒷구절을 중얼거렸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죽는 건 무섭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슬픈 게 죽는 거라 생각했다. 무슨 도사님 깨우침 같은 말씀도 많지만 죽는다는 건 너무 겁나고 슬픈 일이다. 물론 겸허하고 담담하게 순응하며 맞아야 할 과정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그래도 그건 너무 슬프다. 없어지는 거 아니라지만, 왜 아니, 없어지는 걸. 얼굴도 볼 수 없이.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앉으니 여수 어느 보호시설에서 불이 나 죽은 슬픈 이웃들의 소식이 있다. 삶의 마지막 과정으로 겸허히 받아들일 수도, 돌아가는 길을 축복할 수도 없는 죽음. 한반도 땅 위에서는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집단이 이 땅에 목숨을 붙여 살고자 했던 외롭고 서러운 이들을 죽였다. 미안해할 줄도 슬퍼할 줄도 모른다. 오히려 그짓을 저지르고 난 뒤 죽어간 그이들 가운데 하나가 불을 질렀다는, 그 증거를 찾는 일에나핏발 선 눈이 되어 있다. 정말 못됐다.

* 관련 기사와 논평, 성명서들

[참세상] <논평> 이주노동자 집단 죽음, 예고된 구조적 살인 2007. 2. 12

[참세상] 이주노조 "방화사건으로 물타기하는 법무부" 2007. 2. 12

[민중의 소리] 유족들 "인간에 대한 최소한 예의도 없는 것인가" 2007. 2. 12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성명서 2007.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