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목수학교 일기 1] 시작

냉이로그 2007. 3. 6. 23:33

목수학교 일기



3월 5일


목수학교에 들어왔고 첫 날, 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다. 아침밥을 먹고도 한참 있다가 열 시부터 입학식, 입학식에 이은 학교에 대한 소개와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가르쳐주시는 분들과 함께 배우는 이들의 소개와 인사…. 하루 종일 실내 교육이었다. 사람들, 참 좋은 분들 같다. 지금은 모두 불을 끄고 자는 시간. 짧은 일기라도 써 보려 했는데, 그만 컴퓨터를 닫고 자야겠다. 정말 힘든 건 내일부터라던데... 내일부터 일주일.


(덧붙여) 입학식에서 교장 선생님이 그러셨다. 학교 여건이 좋지 못해 미안하다고, 숙소를 비롯해 밥 먹고, 씻는 곳 따위 여러 가지 환경이 좋지 못하다고. 백이면 아흔 아홉 가지가 모자라고 열악한 게 사실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여기에서 육 개월,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대로만 하면 목수를 만들어 주겠다고……. 그러면서 분명히 각오할 것은 몹시 힘들어도 참고 견뎌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이끌어주는 대로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한다며 말이다. 바깥에서 현장을 따라다니며 도제식으로 배우려면 십년 가까이 걸려야 알 수 있을 것을 육 개월에 배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이끄는 대로 따르기만 한다면 해 낼 수 있다며 말이다. 앞으로 첫 일주일, 대팻날만 가는 시간이 있을 텐데 여섯 달의 시간 가운데 그 일주일이 가장 힘들 거라 한다. 하지만 일하는 현장에서 삼년, 오년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을 일주일에 익힌다 생각하면 그 정도 힘든 것 견뎌 이겨야 하지 않겠냐면서……. 모든 것을 백지 상태로 비워야 한다는 이야기, 바깥에서 조금 안다고, 아니면 이런 저런 책이나 귀동냥으로 들어 아는 이야기 같은 것은 모두 버리라 했다. 그리고 절대로 머리로 알려고 하지 말라고, 이해하려 하지 말라고. 뼈와 근육, 몸이 먼저 알기 전에 머리로는 아무 것도 알아서는 안 된다고… 그래, 그 두 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희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걱정이다. 희망이 되는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여야 한다는 것, 나야 아무 것도 모르니 일부러 비워내지 않아도 처음부터 백지인 걸 뭐. 그런데 몸으로, 뼈와 근육으로 익혀야 한다는 것, 과연 그것을 내가 잘 따라 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니, 이제 잘 못할 거라는 생각 같은 거 자꾸 하지 말아야지. 다른 이들보다 좀 더디고, 기운이 더 달릴 수는 있어도 하라는 대로만 잘 따라 해야지. 지금 당장에 되건 안 되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목수를 만들어 내보내준다 했으니, 시키는 대로, 시키는 대로!



3월 6일 오전


아침에 일어나서 (08:09)


새벽 세 시쯤 깨었을까? 그 때부터 춥다, 춥다 이불을 끌어당기며 몸을 웅크리기를 아침 깨어날 때까지.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늘바람 황소바람에 몸을 한쪽으로 돌려 어떻게 자다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밥 먹는 시간이 참 좋다. 혼자 자취하며 먹는 것보다 백배는 잘 먹는다. 술은 못 마시지, 시간밥으로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먹지, 여기 있다가 가면 살도 찌고 아주 건강해지겠다.

기분은 아직 이상하다. 아직 몸 움직여 일을 시작하지 않아 더 그렇겠지. 이제 이십 분 뒷면 첫 일이 시작한다. 다른 분들은 이것저것 다들 잘 하시는 것 같은데, 나는 영 할 줄 아는 게 없는데다가 손발까지 굼뜨니 자꾸 뒷전에 서게 된다. 교육 시간과 작업 시간에 일 배우는 것 말고도 장작을 패 불을 때는 거며 보일러 손보는 거, 허술한 기숙사 손보아 가는 거처럼 함께 손을 모아 뭘 할 때마다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자꾸만 미안하고 그렇다.



오전 교육을 마치고 (13:06)


첫 일, 대팻날 가는 걸 시작했다. 망치와 대패 한 자루씩을 나누어 받았고, 숫돌 하나씩을 받았다. 먼저 대팻날 빼는 법부터. 그 때 대패는 손에 어떻게 쥐고, 두 귀퉁이를 망치로 톡톡 두드려 빼낸다. 그러면 날이 둘 나오는데 하나는 원 대팻날, 그보다 작은 것은 덧날. 그렇게 해 빼낸 대팻날을 우선 원 대팻날부터 간다. 갈 때는 한 다리는 조금 앞으로, 나머지 다리는 뒤로 쪼그려 자세를 잡고 숫돌 위에 날을 간다. 숫돌은 물이 잘 먹게끔 미리 대야에 담가두면 좋다. 그런 다음 날을 한 쪽 손 엄지와 검지로 잘 잡고, 나머지 손으로 힘을 지지할 수 있게 눌러주면서 일정한 힘으로 숫돌에 대고 민다. 대팻날을 세우는 각은 35~40° 정도. 밀 때와 당길 때의 힘이 꼭 같을 수 있게, 손목이 흔들리거나 해서 날이 숫돌에 닿는 면이 삐뚤어서도 안 된다. 칼로 벤 듯이 날이 서야 하는데 손목이 흔들려 접촉면이 왔다 갔다 하거나 힘이 일정치 않게 되면 날에 배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하, 그런데 이거 정말 어렵다. 날을 숫돌에 댈 때마다 자꾸만 닿는 면이 일정치 않아져 갈아내는 결이 달라진다. 그래서 앞으로 일주일을 날 가는 작업만 한다고 한다. 앞에 말한 설명 따위를 머리로 알고 이해하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몸으로, 뼈와 근육으로 배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오전까지 간 내 대팻날은 아직도 세 겹, 네 겹 삼겹살 오겹살이다. 으!)


무릎도, 엉덩이도 땅에 대지 않고 무릎을 굽혀 쪼그린 채로 날을 갈아야 하니 이건 무슨 기합이라도 받는 것 같다. 몸의 힘이 다리나 엉덩이 쪽으로 실리지 않고, 온전히 숫돌에 닿은 대팻날로만 가게 해야 하니, 엉덩이도 무릎도 땅에 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이고, 무릎이야, 허리야, 장딴지야. 오늘 자고 나면 여기저기 알이 배기겠지. 점심밥을 아주 맛있게 잔뜩 먹었다.



오후 교육을 마치고 (16:35)


오후에도 대팻날을 갈았다. 점심을 먹고 조금 쉬었다 쪼그려 일을 시작하려니 아까보다 더 오금이 저리고 아프다. 다시 슥슥, 슥슥, 슥슥, 슥슥. 덩치는 커다랗고 시커먼 아저씨들 오십 명이 꼭 손전화 배터리 같이 생긴 대팻날 하나씩을 잡고 쪼그려 앉아, 그 작은 것 하나에 자기 몸무게를 다 싣고 오글오글 앉아 있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다. 중간 중간 한 번씩 허리를 펴기도 하고, 한 번씩 다리를 두드리면서 서로들 그쪽 날은 잘 갈리는지, 이게 잘 갈린 건지 묻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 여섯 달이 지나 과정을 다 마치고 나갈 때쯤이면 지금 우리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많이도 웃겠지, 그 땐 그랬어 하면서….


오전 교육 때 이 교수님이 칠판에 적어 놓은 것이 있었는데 뒤늦게 필기를 하려고 공책을 들고 나가보니, 처음 보는 그림이 있다. 아이고, 저건 뭐야? 아까 전 잠깐 담배 피우러 나간 사이 못 들은 설명인가? 옆에 있는 분에게 물으니 대팻집 고정 시키는 방법에 대한 것인데 대팻집의 아랫면에 수평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그림이라 한다. 아랫면의 두 귀퉁이를 비스듬히 깎아 내는데, 먼저 수평이 된 상태에서 그 귀를 내야 한다는 것. 귀를 비스듬히 낸다 해서 아랫면 전체가 기울어서는 안 된다며 말이다.


대팻날을 갈던 중 원 교수님이 교육생들을 열 개 조로 나누어 주었다. 내가 속한 조는 나까지 소띠 동갑 셋에 그 위로 더 나이든 두 분까지 다섯 명. 조로 묶은 대로 다시 자리를 찾아 옮겨 똑같은 작업을 계속 했다. 슥슥, 슥슥, 슥슥, 슥슥…. 나름으로는 뭔가 되나보다 하면서 꾹 참고서 열심히 날을 가는데, 둘러보고 다니던 다른 교육생 한 분이 잘못된 자세를 고쳐 주었다. 엉덩이는 들썩이지 말고, 팔만 움직이라면서. “아, 그래요? 선생님이 대팻날 잡은 손에 체중이 다 가게 하라 해서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어차피 대팻날로는 체중이 다 실려 있으니 팔에도 힘을 빼고 몸에도 반동을 주려 하지 말고 그대로 밀고 당기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대팻날을 밀고 당길 때 일정한 힘이 준다는 것도, 팔로 힘 조절을 하라는 게 아니라 체중만 실었지 힘을 다 빼라는 소리거든요. 다리도 한 다리만 숫돌 앞에 무릎을 세워 받치고, 다른 다리는 힘 하나 들어가지 않는 허당이에요. 이렇게 말이에요, 한 번 해 보세요.” 아, 정말! 그 분이 바로잡아준 자세대로 해 보니까 그게 무슨 말인 줄을 알겠다. 대팻날 잡은 손으로 체중만 싣고 나면 일정한 힘이니 뭐니 힘 조절 같은 건 따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팔에는 힘을 주지 말고, 몸으로 반동을 주려고도 하지 말고! 오히려 힘조절을 한답시고 숫돌에 닿는 대팻날 각도만 자꾸 틀어지지.


세 시 반, 오후 교육을 마쳤다. 이번 기수부터 하루 교육시간이 여섯 시간으로 줄어 생각보다 무척 일찍 마치게 되었다. 선생님들 얘기로는 노동부에서 하루 여섯 시간, 여섯 달에 칠백 시간으로 교육 시간을 못 박아 놓았기 때문이라는데, 이에 선생님들도 못내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나머지 시간들에 앞으로 배워가는 과정에 따라 정리를 하거나 도면을 그리거나 사진 정리 같은 작업들을 하면서 몸으로 익혀야 할 것과 동시에 할 일을 찾으면 결코 시간이 남지는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아참, 어쩌다보니 이번 기수에서 수업 정리, 필기 하는 일을 다른 네 분과 더불어 맡게 되었다. 정리를 하려 해도 뭔가를 제대로 알아들어야 그게 될 텐데, 나는 순 사오정식 딴소리만 정리해 가지 않을까 모르겠다.)



잠들기 전 (22:34)


함께 교육받는 사람들 오십 명 가운데 열다섯은 새로 들인 숙소를 배정받았는데, 보일러가 안 되어 말썽이다. 어젯밤도 냉골에서 자느라 다들 웅크려 덜덜 떨었는데, 어찌 해 보려 해도 달아 놓은 나무 보일러는 제대로 구실을 못한다. 곧 봄이 오고 여름에 일을 하게 되겠기에 대부분 여름 이불만 대충 챙겨왔으니 얼마나 추웠는지는 말로 못한다. 잠시 쉬는 시간이 있어도 방에 들어가 봐야 발만 더 시려우니 아예 바깥에서 바람을 맞고 있을 정도. 그 얘기에 원 교수님이 궁여지책으로 어디선가 연탄보일러를 가져왔고, 이제껏 교수님과 함께 교육생들이 바깥에서 덜덜 떨며 보일러를 연결했다. 사회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 온 이들이 많아 여럿이 힘을 더하니 없는 자재에 어떻게든 보일러를 놓기는 했다. (나는? 옆에서 구경만 하면서 덜덜 떨고 있었고.) 하지만 연탄보일러를 놓아도 숙소를 덥히기에는 역부족, 조금 전에야 이 소식을 듣고 원래 기숙사(본채)에 배정받아 지내는 분들이 깜짝 놀라 뛰어 나왔고, 조금 불편하더라도 본채에 있는 방으로 한두 사람씩 들어가 끼어 자는 게 어떻겠느냐 했다. 신관 사람들 회의를 해서 일단 오늘 밤은 그러기로 하고 이불만 싸 가지고 찢어져 한 방씩 찾아 들었다.


이렇게 교육 첫날이 지났다. 대팻날 갈기, 내일도 하루 종일 대팻날을 갈겠지. 오늘 벌써 몇 사람이 숫돌에 손을 갈아 피가 나기도 했고, 더러는 날만 가는 일이 지루하고 지겹다 하기도 하지만 추워 고생인 거, 그것만 빼면 재미있었다. 밥도 맛있고. 참 즐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