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학교 일기 4] 날갈기
날을 갈았다. / 3월 9일
월요일에 시작한 한 주일을 벌써 마치는 금요일이다. 평소 직장 생활을 하거나 주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금요일 홀가분한 느낌이나 월요병 같은 걸 잘 알지 못했는데,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라는 게 과연 그렇다. 몸이 무겁기로 치면 어제보다 훨씬 더 할 텐데도 이상하게 가벼웠다. 오늘만 하면 벌써 첫 주 교육을 마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제 날이 어둡고 나서 새로운 교육생 한 분이 왔다. 어느 분인지 아마 어떤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나가게 되어 그 남은 자리로 들어온 것이다. 부산에서 아침에 연락을 받고 그 길로 짐을 싸 올라오셨다 한다. 마침 우리 방 식구가 가장 작아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이로써 신관 1호실에는 네 사람이 지내게 되었다. 나와 동갑 소띠이며 그 전에 요가 강사를 하다가 온 이, 전주에서 온 스물여섯 살 아주 앳되고 순박한 막내, 그리고 어제 올라온 서른여덟 살 부산 아저씨에 나까지. 가만 보면 제대로 되어 있는 본채와 별채 숙소에는 나이가 든 어른들이 주로 들었고, 도무지 방 같지 않아 보이는 신관에는 어린 축에 드는 이들이 머무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올라와 처음 같이 잔 부산 분이 어찌나 추운지 새벽부터 깨어 있었다 한다. 나머지 우리 셋은, 그러냐 하면서 그래도 많이 따뜻해진 편이어서 지난밤은 깨지 않고 잘 잤다고 했다. 어휴, 이 정도도 감사할 일이죠, 그 동안에는 정말 바닥은 얼음장이지, 문틈 벽틈마다 에어콘 바람이 나오고 했다니까요…….
오늘도 종일 날을 갈았다. 어제부터 날 갈기에 합격을 받아 광택내기에 들어간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오전을 지나면서 그 수가 꽤 늘었다. 교수님들도 오늘까지는 날 갈기와 대팻집 고정까지 다 마치고 다음 주부터는 직접 대패로 나무를 밀어볼 거라고 하시니 분위기가 더 술렁였다. 아직 내 것은 다 되었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한 번 숫돌에 밀 때마다 다른 각의 물결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그건 곧 대팻날과 숫돌이 닿는 면이 일정하다는 말, 손목과 팔, 다리의 자세가 안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랬다면 남은 건 시간문제다. 그 각도 그대로, 그 자세 그대로 숫돌에 갈아내기만 하면 칼로 베어낸 듯 매끈하게 날 아랫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 곧 될 거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알이 배겨 아픈 것을 꾹꾹 참아가며 날을 밀었다. 이제 한 삼 분의 이쯤 되는 사람들이 합격을 받아 다음 단계로 들어섰을까? 같은 조에 있는 형님 한 분이 내 것도 잘 된 것 같다며 교수님께 가져가 검사 한 번 받아 보라 했다. 한 번 기껏 갈았다가 교수님이 날 한 쪽을 죽여 다시 갈라고 한 거기에 더욱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쿵! 날 아랫면은 깨끗하게 제대로 갈았는데 아직도 날의 양 쪽 높이가 약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어휴, 직각이 되도록 맞춘다고 맞춰 새로 간 건데 아직도 그렇다니… 그 때 막 대팻집 고정까지 다 마치고 나무를 밀어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팻밥이 한쪽으로만 쏠려 나오는 게 보였다. 그게 다 그런 까닭이란다. 0.5mm라도 날의 수평이 맞지 않으면 대팻날과 나무가 닿는 자리가 고르지 않아알맞게 대패질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수평을 잡아 갈아야 한다는 얘기. 게다가 교수님은 날의 수직면을 보면서 날의 각이 너무 깊다면서 각을 더 얇게 죽여야 한다는 말까지. 아, 미치겠네! 이상하다. 배울 때는 분명 날의 각을 37~42° 로 맞추라 했는데 더 줄이라니? 이건 37°에 못미치면 못미쳤지 그보다 더 크지는 않은데… 그래 다시 들어보니 우리가 실습할 날은 25~30° 정도로 맞추라 했다는 거다. 완전히 날을 다 뭉개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제야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까지 날 갈기를 다 마칠 거라는데, 다른 이들은 벌써 광택을 내고 덧날 고정에 대팻집 고정까지 마쳐 직접 나무를 밀어보기까지 하는데… 적어도 수평과 수직, 날의 기울기만 새로 잡으면 그것 그대로 매끈하게 밀 자신은 있지만 그것부터 새로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어 보였다. 어휴, 어쩔 수가 있나? 다시 대패를 가져가 날 뭉개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때부터는 정말 지난 며칠 중 가장 열심히 했나 보다. 다리 아파 쉬는 것도 말고 손끝이 물집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도 모른 체 속으로 오십까지 세면서 밀고, 백까지 세면서 밀었다. 먼저 날 한 쪽 끝부터 무디게 밀어내 수평을 다시 잡고, 있는 날을 더 눕혀 각을 줄이면서 쇠를 갈았다. 오늘 마칠 때쯤이면 다 할 수 있을까? 다음 주까지 더 갈아야 할까? 남들보다 조금 늦으면 어떠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 번 처지기 시작하면 다음 배울 것을 제때 따르지 못해 계속 떨어질 것 같은 생각에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전 교육 끝. 새로 갈기 시작한 내 것은 날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디기만 하다. 밥을 안 먹고 계속 간다고 해도 되는지, 날과 숫돌을 작업장에 남겨두고 식당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더구나 오후 교육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밥을 먹고 다시 오후 교육 시작. 아직도 숫돌에 물을 묻혀가며 날을 가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최소한 광택을 내거나 대팻집까지 다 고정해 작업대에서 나무를 민다. 우리 조 다섯 사람만 봐도 그렇다. 나 혼자 쪼그리고 앉아 숫돌에 날을 갈았다. 교장 선생님은 작업장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아직도 날 가는 게 안 된 사람은 어떻게 된 거냐며 다음 주부터는 그대로 진도를 나가고, 안 된 사람들끼리만 따로 날을 갈 거라 한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러더니 또 한참을 날을 가지고 씨름을 하는데 아직 안 된 사람들더러 실망하지 말라고 한다. (겁주고 약주고!) 빨리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몸에 익히는 게 중요하다면서 조각을 하는 교수가 들어왔다가도 일주일에 다 못하고 이주일 동안 갈았다며 말이다. 그래, 어찌되었건 가는 데까지 갈아봐야지. 다른 생각 않고 자세 흐트러지지 않는 것만 신경 써 날을 가는데 어느덧 새로 날이 서는 게 보였다. 큰 각으로 벌어진 날의 쇠가 갈리고 얇은 각의 날이 다시 서는 거였다. 아, 됐다! 이제는 정말 시간문제, 조금만 더 하면 될 일. … 그렇게 해서 끝까지 날이 살고, 날 아랫면을 깨끗이 갈아낸 뒤 다시 교수님께 가져가 보였다. “어, 됐네. 대팻집 가져와 봐.” 드디어 합격, 얼마나 기쁜지 크게 웃기라도 하고 싶은데 아직 못하고 있는 이들 생각에 억지로 참았다. 주머니 안에서 시계를 꺼내 보니 14:29. (드디어 했다!) 교수님이 그라인더로 귀접이를 해 주었고, 이제 다음 단계에서 해야 할 설명을 들었다. 둘러보니 그 때까지 날을 가는 사람은 추가입학생을 포함해 몇 되지 않는다. 그러니 거의 맨 뒤에야 날 갈기를 마친 셈이다. 대패를 만들어 나무를 깎을 수 있으려면 아직 남은 작업이 많다. 벌써 많은 교육생들은 그 작업까지 다 해 대패질을 해 보고 있기도 하지만, 그게 그리 부럽거나 마음 급하게 하지는 않는다. 조금 늦더라도 차근차근, 제대로. 게다가 워낙에 나는 일하는 거에 많이도 서툴지 않았나.
일주일 동안 대팻날 갈기에 대한 내 실패담은 이러했다. 처음에는 자세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날을 숫돌에 댈 때마다 각이 달라져 물결을 쳤고, 그 다음에는 겨우 자세를 잡아 한 각도로 면을 냈지만 윗면의 수평을 잡지 못해 다시 갈아내야 했다. 그리고 또 그 다음에는 날을 세우는 각을 너무 크게 잡아 다시 뭉개야 했고.
한 주일이 지났다. 한 주일을 날만 갈았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