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목수학교 일기 13] 올 것이 왔다.

냉이로그 2007. 3. 21. 23:43

올 것이 왔다. / 3월 21일



어제 오늘도 계속 서까래 깎기가 이어졌다. 물론 아직도 많이 서툴지만 첫날 하던 것에 대면 모두들 척척 잘 해낸다. 작업장 건너편 나무를 쌓아놓은 곳에 가서 다섯 치 기둥을 뽑을 수 있을 만한 원목을 고르는 일부터 (많이 굽은 나무로는 곧은 기둥을 낼 수 없으니 원구와 말구에 다섯 치 도랭이가 담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굽은 곳을 피해 기둥이 나올 수 있는지 하는 것까지 봐야 한다.) 두 끝에 줄을 묶고 목도채에 걸어 네 사람이 발맞추어 지고 나르는 일, 그리고 작업장에 가지고 가 모탕 위에 얹고 낫을 들고 달려들어 껍질을 벗기는 일(먹선을 그을 수 있도록), 본격적인 깎기 작업에 들어가기 전 사꾸리를 들고 굵은 옹이가 있는 곳을 쳐내는 일. 원구와 말구에 씽(중심)을 잡아 수직·수평선을 그려 넣은 뒤 도랭이를 대고 치수에 맞는 원과 원을 가르는 16모 선을 그려 넣는 것. 그 다음부터는 1번과 2번 선부터 하나하나 깎아낼 면에 먹줄을 놓고, 사꾸리와 전기 대패로 기둥면을 만들어나가는 일까지. 이제는 누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이 일이 끝나면 그 다음 할 일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바로 해 나간다.


솔직히 어제까지만 해도 일을 할 때마다 적지 않게 부담이 되거나 주눅이 들곤 했다. 아무래도 사람마다 일을 손에 붙이는 속도가 다르고, 감각이 다르니 일 하는 거에 차이가 나는 거야 당연할 거다. 대패를 밀 때 나처럼 자꾸만 먹선을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벌써 날을 얹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대패질을 하는 것 같은데도 깨끗하게 미는 분들이 있다. 그러다보니까 나처럼 잘 못하는 이들은 자신 없어 하며 선뜻 나서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서 있게 되곤 한다. (나만 그런가?) 아무튼 옆에서 누가 다음 번 대패 좀 잡아 보라고 말을 해 주기 전에는 먼저 내가 해 보겠다고 나서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하기가 싫어서라거나 대충 구경이나 하겠다는 건 아닌데 왠지 그렇다. 자꾸만 내가 작업한 자리에 흠이 보이기도 하고 작업 자체가 많이 더디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그걸 가지고 누가 뭐라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소심한 마음이 들어 나 때문에 우리 조 일이 잘 안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움츠리게 되곤 했다. 게다가 우리 조가 다른 조보다 한참 늦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그게 다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마저 들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제 바깥에 나가 같은 조원 분들하고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마음이 많이 풀렸다. 그런 부담이나 주눅, 미안함 같은 게 있었다 말을 하니 오히려 일을 잘 하는 형님들께서 왜 그런 생각을 갖느냐며 자신감을 북돋워주셨다. 우리 가운데 잘하고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그래봐야 다 오십 보 백 보 걸음으로 다 똑같은 수준이라고, 그럴수록 더 몸소 해 보면서 배워가는 게 중요하다고, 어차피 지금 하는 작업은 그런 훈련인 거니 잘 못 깎았다 해도 아무 문제없다고……. 그리 마음을 써 주시는 형님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실제로도 우리 조에서는 서까래 깎기에 들어간 첫 날부터 조원 다섯 사람이 모두 돌아가며 작업을 하는 짜임으로 돌아갔다. 그 때문에 우리 조가 다른 조보다 작업이 더딘지 몰라도, 배우고 있는 작업의 모든 과정을 조원 모두가 돌아가며 다 해보고 있었다. 오랜 취미로 소목 생활을 해왔다는 큰 형님은 절대로 나서서 혼자 앞서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처럼 잘 못하는 조원들이 무얼 어려워하는지를 살펴 최대한 바로 잡을 수 있게 일러준다. 그 아래 나이인 형님은 조장을 맡은 뒤부터 아주 달라지더니 무척 통솔력 있게 일 해 나가는 원칙과 방향,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조장을 맡기 전에는 그저 우스운 말을 잘하는 형님으로만 알았는데 조장을 맡더니 눈빛부터 달라졌다. 혹시라도 일을 하다가 조원들 사이 의견이 갈리거나 하면 결코 조장님 의견을 앞세우거나 좀 잘 아는 다른 교육생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교수님을 모셔 제대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 아래로 나와 동갑내기 셋이 있는데, 형님 두 분이 그렇게 우리를 잘 챙겨주면서 일에 대해서도 서두르지 않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어제 같은 조원들과 함께 바깥에 내가 저녁을 먹기를 참 잘했다. 서로 아쉬움이나 바람, 일할 때 드는 고민 같은 것을 터놓고 얘기하고 나니 서로에 대한 이해나 믿음이 더 깊어져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정말 어제 회식이 있고 나 오늘 작업에서는 그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일이 조금 익어 그런 거기도 하겠지만 같이 일을 하는 이들이 낯설지 않은 형님, 동료로 느껴져 마음이 편했다. 한 번씩 실수를 해 나무를 더 먹고 들어가는 일이 있어도 그 전처럼 마음이 경직되거나 조원들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어디에서 잘못이 있었는지를 살펴 바르지 못한 자세나 동작을 고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멋쩍게 한 번 씨익 웃어 머리 한 번 긁적이고서.


일을 할 때 무엇보다 안전에 주의하라는 말, 역시 그 말은 백 번 천 번을 강조해도 넘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놀란 것은 엊그제 우리 조에서 먹줄 고정 못이 눈으로 날아가 안경을 두 동강 낸 거였지만 그 밖에도 어제오늘 먹칼을 만들다 끌에 손을 베어 일곱 바늘이나 꿰맨 분이 있었고, 다행히 다친 곳은 없지만 사꾸리질을 하다가 전기선이 대팻날에 감겨 끊어진 곳도 있었다. 어쩌면 공구 다루는 게 손에 덜 익어 그러한 일들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걱정해 말씀하시는 분들은 한 결 같이 안전사고는 일을 오래하게 될수록 더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조심해야 해, 별 거 아닌 것 같은 자잘한 안전 수칙일수록 더 기본을 지키면서!


선자 서까래라 하던가? 내일부터는 그걸 깎을 거라고 했다. 그에 대해 교수님이 이러저러한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선자 서까래라는 게 뭔지조차 몰라 무슨 머리에 그려지는 게 없었다. 아무튼 둥근 기둥 모양의 서까래 깎는 일은 오늘로 마무리를 짓는다고……. 벌써 이 교수님과 원 교수님은 우리 기수가 지을 집에 대한 구상을 마치고, 작업장 한 쪽 칠판에 우리가 지을 집에 맞춰 깎아 준비할 물목(물품 목록)을 표로 그려 적어 주셨다. 우리가 배우면서 깎고 있는 것들이, 앞으로 지어질 집 어딘가를 이루게 된다 생각하니 참으로 신기하다. 정말로 집을 짓다니! 어리둥절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기분이 좋아 신이 난다. 아직은 집을 짓는 전 과정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교수님이 칠판에 적어 놓은 걸 봐도 거기에 있는 말 대부분이 처음 보는 거라 뭐를 어떻게 해 가는지 감이 오지 않지만, 하루하루 우리가 하는 일들이 아닌 게 아니라 집을 지어가는 일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아, 오겠지 오겠지 하던 것이 드디어 왔다. 몸살. 어제 바깥에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고, 어떤 일인지 새벽녘 신관에 보일러가꺼져 찬 바닥에서 자고 났더니만 드디어 으실으실 몸살이 왔다. 아마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조금씩 쌓인 피곤까지 더해 그러하겠지. 이제 그만 자야겠다. 자꾸만 눈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