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목수학교 일기 42] 다시 학교

냉이로그 2007. 5. 29. 02:11

5월 28일 / 다시 학교



17일 오후, 소식을 듣고 그 길로 미친 듯이 안동으로 달려갔으니 꼭 열하루 만에 학교로 돌아왔다. 걱정이었다, 그리 오래 빼먹고 났으니 적응을 못하지는 않을는지. 그 사이에 어떤 것들을 배우고, 어떤 일들을 했을지, 사람들하고 서먹한 느낌은 있지 않을지, 아님 그 사이에 몸이 풀어져 일을 하며 허덕이지나 않을지……. 게다가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는데. 봉화, 현동, 태백을 지나 학교에 닿으니 오전 교육이 한참이었다. 거의 다 짓고 있던 일주문은 기와까지 다 올렸어, 둘러싸고 있던 철골 발판까지 다 걷어내고 나니 그야말로 멋진 모습으로 우뚝 서 있네. 사람들은 떡메와 빠루(지렛대처럼 쓰는 쇠막대), 끌과 톱 따위를 들고 양쪽 중인방과 하인방을 끼우고 있었다. 이제 그것만 하면 아주 끝나는 일.


걱정은 괜한 게 아니라 한참이나 서먹하고 어색한 기분이야. 부랴부랴 일옷으로 갈아입고 일하는 쪽으로 나갔지만 중간에 어디로 끼어야 할지를 몰라 한 쪽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워낙 일이 다 끝나가기도 했고, 다 달려들 일이 아니어서 반 수 정도는 어차피 바깥에서 지켜보아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지켜보는 자리에서조차 어색한 기분이 느껴졌다. 다들 오랜만이라고, 왜 그렇게 오래 빠졌냐고, 오긴 왔냐며 인사해 맞아주었지만 그런데도 어색, 서먹한 기분인 것은 아마 나 스스로 마음이 소심해져 그런 거였을 거야. 안동에 가 있는 동안 정신없는 통에 그 당시에는 어떻게 전화를 받았는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꽤 많은 동기, 형님, 아저씨들이 전화를 줘 기운차리라 해 주곤 했는데 생각하면 그 작은 마음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오전에는 그렇게 일주문을 완성시켰다. 내가 빠지기 시작한 게 사래와 부연, 이매기를 올리던 때부터였으니 그 뒤 부연 사이 착고판을 얹는 거랑 팔작지붕 모양을 내기 위해 도리 바깥을 더 뺀 것, 박공 올리는 것들을 못 본 셈이네. 기와 올리는 일은 교육생들이 아니라 전문 기와장이들이 와서 했다던가. 점심을 먹고 오후 교육은 일간에 모여, 일주문을 짓고 난 뒤 한다던 문 짜는 일을 시작했다. 그것도 일이 많이 진행되었으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아직 시작과 다름없는 단계. 몇 사람은 준비한 각재에 홈을 내 ㄱ자로 끼워 맞추는 것까지 다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이제 막 먹금을 놓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난 목요일이 쉬는 날이어서 징검다리 휴일이 되니 꽤 많은 분들이 금요일 결석계를 쓰고 목, 금, 토, 일을 달아 쉰 모양이야. 그러니 금요일 문 짜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못 하고 지나간 듯 하고. 아주 수요일 오후부터 조퇴해 길게 쉰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니 실제로 내가 교육에 빠진 건 처음 그 금요일에, 월, 화요일 정도라 해도 좋았다. 열하루 만에 학교에 왔다지만 주말을 두 번이나 끼고, 노는 날까지 중간에 하루 있었으니 정식으로 빠진 것도 닷새 밖에는 되지 않으니.


조장님은 돌아와 문 짜는 일 같이 할 수 있게 해 주려 내 것까지 각재를 준비해두기도 했다. 다른 조에 있는 신부님도 일부러 쓰려던 각재를 선물로 갖다 주시기도 했고. 그것들을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어떻게 먹선을 긋는지, 어떤 과정으로 깍고, 파고, 자르는지를 배웠다.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동기, 형님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오후 교육을 마칠 때쯤 해서는 언제 서먹함을 느꼈냐는 듯 이내 마음이 편해졌다. 형님들이 불러내주어 미로면에 나가 밥을 얻어먹기도 했고, 오랜만에 보는 동생들에게 지난 한 주 학교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저런 걱정을 나누기도 했다. 앞으로 보름이 넘도록 문 짜는 일을 할 거라는데, 이걸 가르쳐주는 교수님도 문 짜는 걸 배우기는 배우되 나중에 집을 지을 때는 손수 짜지 말고 사다 쓰라는 얘기를 하셨다는데, 그 시간이 사뭇 지겨울지 모르겠구나 하는 얘기, 문 짜는 거 배우고 나면 바로 장마가 질 텐데 그리 되면 어떻게 되나 하는 얘기…….


어쨌든 다행이다. 학교에 와 걱정하던 만큼 크게 처지지는 않은 것 같으니. 동기생들, 형님들 챙겨주는 마음에 고맙고, 기댈 수 있고.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님들이 낸 음반 [사랑의 이삭줍기1]에 있는 '꼬마천사와 꼬마거지'.

이 노래를 계속해 듣는데 꼬마천사가 꼬마거지를 하늘 나라 데려갔다는 노랫말이

꼭꼬마천사가 할아버지를 하늘 나라 데려갔다는 것처럼 들려,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

학교에 돌아왔다. 할아버지 남은 뒷일들에는 애를 끓이지 않고 편하게 마음을 두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맡은 것 안에서만 일이 그르치게 되지 않게끔 심부름을 하는 것으로, 그 밖에 내 손을 벗어나 진행되는 일들에는 어떻게 되어가든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기로. 어젯밤 그 일을 맡아보는 분 한 분과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며 한 번은 해야 할 얘기를 충분히 전했고, 적어도 앞으로는 일의 진행에 있어 빠뜨린 채 지나오던 논의 과정을 챙기며 해 나가야 한다는 데까지 공감을 가졌으니. 더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구실은 거기까지고, 그 다음이야 잘 되기를 바라며 믿어야 하겠지. 학교에 와 있으니 왠지 할아버지는 그곳에 그대로 있을 것 같아, 금요일까지 일을 하면 할아버지를 만나러 조탑에 가겠구나 하고 주말을 기다리던 그 때처럼. 그렇게 여전히 할아버지는 있는 거야, 거기에는 없지만 마음에, 하늘에, 부끄러운 내 삶 속에……. 있는 거야, 가 아니라 있을 거야, 라 해야 옳은 걸까? 마음에, 하늘에, 앞으로의 삶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