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선언
지지선언
민노당 홈피에 잠깐 들어가 보니 오늘 오전 열 시로 어린이책 작가들 100인의 기자회견이라는 것이 잡혀 있다 했다.한 보름 전쯤이었나,어린이책에 글을 쓰는 허은미 선생님에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선언에 함께 이름을 올려도 좋겠는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별로 뜸을 들이지 않고 같이 할게요, 라고 대답을 했다. 기자회견장에도 함께 나올 수 있느냐 물으실 때는 그건 어렵겠다 하면서.
별로 뜸을 들이지않고답할 수 있었던 건 이미 어느 정도 고민을 마쳤기 때문이다. 당내 문제야칠팔 년 전 용산 지구당 문제를 필두로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 동안에는 굳이 그 안의 노선과 정파 갈등 문제에까지 샅샅히 알고 싶지도, 그것을 내 문제로 삼아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야 당원도 아니고, 당 활동을 하지도 않으니 큰 틀에서 힘을 싣고 지지하는 것이면 족하다 싶었다. 그리고 안의 문제들이야 당 게시판나 진보누리, 레디앙 같은 싸이트들을 멀리하면서는 사실 잘 알지도 못했다. 그저 당직자 선거나 이번처럼 대선이니 총선이 있을 때 가끔 들여다 보는 정도였다 해도,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해묵은 노선과 정파의 문제가 그 옛날의 방식으로, 아니 더 치사하고 치졸하게 되풀이 되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 당내 후보 경선 때는 바깥에서 보기에도 아주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더니, 얼마 전에 있던 동기의 혼례식장에서 만난 옛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니 당내 사정은 아주 가관이라 한다. 지역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중앙당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하다는. 이른바 진보라는 가치, 그 가치를 실현시킬 진지로서의 당을 제대로 살리려는 것보다 당 안에서 자신의 세력이 살아남는 것에 더 매달려 이전투구하는 모습들을 말하며, 아, 굳이 이렇게까지 하며 같이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던…… 이미 탈당과 분당의 움직임이 적지 않게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는.
고민이라고들 했다. 그래도 이번에도 3번을 찍어야 하는지, 아니면 아예 투표를 거부하는 것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지. 또 누군가는 투표 용지에 기표가 아니라 원하는 정책을 써 넣고 나오자는 식의 행동을 얘기하기도 하지만…… 나 또한 그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고, 길지 않은 고민 끝에 그래도 3번을 찍는다 쪽으로 마음을 두고 있었다. 찝찝한 마음이야 내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또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말하자면 비판적지지인 셈인데, 이건 흔히 말해지곤 하던 비판적지지와는 다르다. 더 나은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선가능성이니 뭐니를 따지면서 덜 좋은 쪽을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그보다 나아 보이는 대안이 없으니 그나마 가장 나은 대안을 지지하는 것이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앞의 것은 비판적지지가 아니라 계산적지지 정도가 되는 거겠지. 게다가 내가 그래도 아직까지는 지지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까닭은 어쨌든 민주노동당에는 아직 내가 지지하고픈 방향과 정책이 있고, 그 안에는 심재옥 전 시의원이나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소금 같은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섯 달 뒤에 있을 총선을 치러 적어도 지금 이상의 비판 기능을 그러한 이들이 해낼 수 있게 받쳐주자면 권OO 후보의 얼굴을 봐서가 아니라 그 정당의 그릇에 대고 한 표를 보태야 할 거라는.
참 재미없는 선거다. 아니, 누굴 탓할 것도 없이, 이렇게 되도록 무얼 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는, 부끄러운.
어린이책작가기자회견보도자료최종.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