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만리포에서 1226] 바다야, 바보야

냉이로그 2007. 12. 26. 22:53

[만리포에서 1226] 바다야, 바보야

상황실 앞에서

속이 안 좋던 거, 그게 조심스러워 아침 일찍 일어나 뱃속을 채웠다.전날까지는은성장 인연들로부터 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던 장기 개인 봉사자들이 상황실 일을 도우며방제도구 재활용 지급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없다 해 나도 그곳 일을 돕기로 약속을 하고 있었다. 전날 저녁 다시 거둬놓은 방제복들과 면장갑, 고무장갑에 비옷과 장화들.어느자리나 고생되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고무 장화를나눠주는 일에는 발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더 더디고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날 쓴장화를 거둔 것들이 제짝을 찾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기에 더욱 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다보니 이리저리 이것 말고 좀 더 깨끗한 것으로 달라, 속에 털이 든 것은 없느냐 하면서 장화를 고르려 하는 분들에게 속으로 짜증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한 번 신고 바닷가로 나가게 되면 아무리 깨끗한 것을 신고 들어가더라도 더럽혀지기는 마찬가지고, 발에 땀이 차 그 안이 축축해지는 거야 피할 수 없을 텐데 처음 신을 때만큼은 그나마 좀 더 깨끗한 것을 신고 싶은 마음, 사실은 나 또한 처음 이곳에 와 장화를 받아 신을 때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왕이면 좀 더 깨끗하고 좋은 거였으면……. 가뜩이나 이 기름 방제 활동에서 원유의 유독성에 조심하라는 안내가 많이 나갔으니그것에 좀 더 주의를 하고픈 마음이야 당연할 테고. 하지만 일을 해 보면 알겠지만 장화 겉으로 기름 때가 시커먼 거야 그리 상관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깨끗한 것을 신고 나간다 한들 방제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히 그리 될 것을. 발이 닿는 안쪽으로 기름만 묻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신을 수 있는 것들.물론 아무 말 없이 주어지는대로 장화를 신고 바다로 나가는 분들은 훨씬 많았다.

주민 공청회라는 것

어제부터 눈에 잘 띄는 곳에는 주민 공청회에 대해 알리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삶의 뿌리를 두고 살아오신 분들, 바다만을 보며 살아오신 분들, 이 분들이 느낄 까마득한 절망감은 가히 짐작도 할 수 없겠지. 듣자하니 당국에서는 주민들에 대한 생계 지원이나 대책, 보상 같은 것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고, 주민들은 나름으로 살 길을 찾기 위해 이러한 자리를 마련하는 모양이었다. 여기에 이렇게 저렇게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 더 없지는 않지만 그런 얘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아. 다만 그 안내문을 보면서 그저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은공청회라는 것조차 한 번 해 볼 수 없이 죽어가기만 하는 바닷속 목숨들, 그 스러져가야 하는 목숨들이었다. 물고기들과 조개, 게와 소라, 고동, 따개비, 갯지렁이…… 너희들은 누가 보상해줄 수있겠니? 너희들의 죽음은 그 무엇으로 보상이 되겠니? 인간이 저지른 일들과 그 뒤 인간의 방식으로 행해지고, 인간의 아픔만을 달래는 일들 뒤로 가려진 너희 목숨들에는 과연 어떤 보상이 되어야 할까? 그래요, 주민들의 생계와 삶 그 아픔을 곱씹고 그 문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딴지를 걸고자 하는 건 아니에요. 앞으로 살아갈 막막하고 아득한 삶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그 아픔을 나누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말만 앞서고 있는 채 문제를 축소시키고 그 대응에 늑장을 부리는 당국의 모습에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 죽어가는 목숨들에 누가 어떤 보상을 할 수 있을지, 저들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비롯할 우리의 죽음에는 그 어떤 보상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지……. 천성산 터널 싸움 때 도롱뇽 소송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엄청난 재앙 앞에서 결코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바닷 목숨들의 소송, 바다의 아픔이지 않은지. 언젠가 천성산 싸움이 있던 때 김곰치 씨가 '생명에는 대안이 없다'는 제목의 글을 썼더랬지, 정말 그래, 인간들에게야 돈이 보상일 수 있지만 죄 없이 죽어갈 뭇생명들에게 그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니, 결국 인간들에게도 되돌아오고야 말 재앙인 것을.

계속 만나지는 인연들

오전 일을 하고 있을 때, 땀을 너무 흘려 안경에 물이 고일 때쯤, 문득 고개를 드니 그 앞으로 호범이가 와서 섰다. 호범이도 지난 번에 내려와 함께 일을 하다 만나 알게 된 동생. 호범이는 알게 된 동생 하나와 함께 내려왔다. 얼마나 반가웁던지. 일을 하다 보면 나 같이 사람 못 사귀는 사람도 자연스레 사람들을 사귀게 된다. 그 가운데에는 이곳 바다와 그 바다에 떠 있는 기름 얘기면 그 뿐. 그 누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사는지, 이리로 오기 전에는 무얼 하던 사람인지, 얼마나 잘나거나 못났는지 그런 건 아무 것도 중요치 않다. 그저 우리는 이 바다의 부름으로 달려오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그 바다의 숨통을 조이는 기름을 제대로 걷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 뿐. 저녁 식사를 할 때는 가의도라는 섬에 들어갔다 온 타잔과 또 타잔을 통해 알게 된 어느 분과 그 동안 열흘 넘도록 백리포에서 일을 하다 온 분… 해서 몇 사람이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 역시 이곳의 일들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얘기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이제 그만 그런 얘기들은 말고 그냥 다른 얘기로 편하게 쉬듯 밥을 먹고 싶었어.) 하지만 또 어떤 분과 새로 만나게 되면 당연 그 얘기부터 하게 되고, 얘기를 끊지 못한 채 그 얘기에 매진하게 된다.이곳의 상황, 이를 테면 날마다 몰려드는 봉사자들의 활동이 안타깝게도 그 노력에 비해 하지 않아도 될 일(심지어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어서 두 번 손이 가게 하는 일까지)로 되어진다던지, 봉사자들의 수만큼이나 방제물품들이 함부로 쓰여지고 있는 모습들에 대한 답답함이 주를 이루곤 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 큰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이런 모습을 보고 이런 저런 기관이나 단체들로 건의를 하고 요청을 해도 이것이 고쳐지지 못한 채 계속 되풀이된다는 것에서였다. 이런 얘기야 그 전에도 많았지만 사고가 난지 이십 여 일이 지난 지금에도 이곳에서 오랜 날을 보낸 이들은 아직도 입을 모아 얘기하고 있다.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솔직히 나는 얼마 전 OO 씨의 인터뷰가 왜곡되어 애꿎은 현장 공무원들을 탓하는 기사로 나간 뒤로 언론을 연결해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움츠러들어 있기도 한 데다 몇몇 단체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본 뒤로 무력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어느 정도 포기하는 마음도 있었고, 차리라 그 어떤 언론이나 단체에 기대기보다는 틈새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찾아 하고 있는 타잔이나 또 다른 타잔들의 활동을 돕는 편이 실질적인 움직임이 될 수 있겠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분명 이대로는 안 된다. 당국에서는 유화제를 쏟아붓는 것으로 상황을 축소, 무마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고, 전문 인력이라는 용역 업체들 가운데 어떤 곳들은 이 상황을 내심 즐기고 있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전해진다. 방제 작업이 더딜수록 공기를 늘릴 수 있다는, 어떤 이들의 불행이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호기가 될 수 있는 인간사의 슬픈 이면……. 어떻게든 지금 모습의 방제 시스템은 다시 정비되어야 한다. 무조건 방제복 행렬에 동참하라는 부추김이 아니라 실제로 방제 작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는메뉴얼들이 상황에 맞게 정리되어야한다. 실제로 이 부분들에서 공신력 있는 환경 단체들에서도그 역할에 아쉬움이 많은데, 이 일들에 있어서는 단체의 조직력과 현장에서 이름 없이 일을 하고 있는봉사자들의 노하우가네트웤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다들 입모아 그런 말들을 한다. 현장에 있다보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지금 필요한 일은 그게 아닌데, 그렇게 해서는 오히려 손이 두 번 가는데……하는 걸 느끼곤 하지만아무리 말을 해도 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또 그러다 보면 어떤 순간에는 내가 뭔데 그런 말을 하나 해서 그조차 하기가 어렵다고. 단 한두 사람이라도 나서서 자신있게 어떤 가이드를 할 수만 있어도 좋을 텐데 아쉬워하며 말이다. 실제로 어떤 곳들에서는 어떠한 사람들이 나서서 그 틈새들을 메꾸듯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분들이 자리를 뜨고 나면 그 틈새야 바로 구멍이 되어버리질 않겠나. 적어도 그러한 역할과 노하우가 어떤 네트웤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면 지금 느끼는 안타까움을 한겹 넘어설 수 있을 텐데…… 그저 답답함에 속을 끓이며 이리 뛰고 저리 뛰기만 한다. 글쎄, 이곳으로 다시 내려오기 전 환경운동연합에서 앞으로 이 방제활동을 한 달 이상 지원할 시민 간사 지원을 받는다 해서 타잔에게 그 내용을 소개하고 권해 지원 의사를 확인하고는 추천을 해 놓긴 했는데 다시 그 게시판에 들어가보니 지원들이 적지 않다. 계속해서 현장 상황을 모니터하고 봉사자들에 대한 안내를 비롯한 환경련의 현장 상황실 지원을 하는 역할인데 그렇게 고리가 되는 자리에서라도 타잔 같은 이가 구실을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글쎄 연락이 오려는지. 그저 바람이라면 뜻있는 단체들도 그 나름의 관성을 넘어 현장에서 몸을 다하는 이들과 적극으로 네트웤을 해내려는 노력을 하면 좋으련만.

숙소

어제부터 이곳의 몇 개 모텔이숙박을 공짜로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이곳에 긴 날을 머무는 봉사자들에게 잠자리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곤 했다. 더 오랜 날을 같이 일하고 싶어도여관비가 만만치 않으니마음을 둔 채 떠나야 하는상황을 맞기도 하고 말이다.그나마 싼값으로 은성장 생활을 했었는데거저로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 하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전체 숙박업소가뜻을 모아 그렇게 하지는 못한 모양, 알게 모르게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모텔과 다른 숙박업을 하는 주민 분들 사이에 갈등이 있는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렵게 숙박업을 하는 분들 또한 방을 내주게 되면 그 기름값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테니 무조건 요구할만한 상황도 아닌 것이다. 바람이라면당국에서 어느 정도 숙박업소에 보조를 해주고, 봉사자들은불편하게 끼어 자더라도 잠자리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된다면 좋을 텐데, 그 모든 것이 아쉽기만 하다. 어찌했건 그래서 오늘은 방을 옮겼고,네 명이 쓰는 방에 먼저 들어 있는 어떤 아저씨와 함께 호범이, 호범이가 아는후배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바보 같은 바다

바다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어, 그 아픈 얘기. 그냥 내가 꿈꾸듯 듣는 얘기 말고, 내 깜냥으로 짐작해들어 결국은 내 얘기일수밖에 없는 그런 얘기 말고,바다가 하는 얘기. 저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담아 보내는 얘기……. 바다야, 그래도 너는 우리를품어주려고만 하고 있겠지, 바보처럼, 바보처럼…….

바다여 / 이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