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만석신문] 바다 앞에서

냉이로그 2008. 2. 2. 07:27

[만석신문] 바다 앞에서

하나의 글감, 두 편의 글

하나의 글감으로글을 거푸두 번 쓴다는건 아무래도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어차피내가겪은 거라거나 내 고민은한 자리일 테니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할 밖에. 하지만 쓰기로 약속한 것은 못하겠다고 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만석신문이 아니었고, 두리하나 소식지가 아니라 다른 어떤대중 매체 같은 곳이었다면 둘은커녕하나도 약속할 수 없었을 거야. 먼저 만석신문에 약속을하고 있었고,바로 이어두리하나 연락을 받았는데 두리하나에는그전부터 이러저러한 일에내내 함께 하지 못해온 것이 걸려 이렇게나마 갚고 싶은 마음이었달까.만석신문에 글쓸 것을 얘기하면서 동훈 삼촌은그 마을에도 굴을 까 살아가시는, 그 전에는 갯일을 하며 굴이나 바지락 같은 것을 캐고 살아오신 분들이 많은데 그러한 아주머니, 할머니들께 들려드리듯 쓰면 좋겠다 했다. 아마도 태안의 어르신들과 비슷한 일로 살아오신 분들, 그런데 그 마을 어른들이 그 아랫 바다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잘 모르시더라면서, 그래도 그 분들 마을 신문은 다 보고 계시니 거기에 태안 이야기를 담아 전했으면 좋겠다며 말이다. 잘 할 자신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정성껏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약속을 했어. 그리고 두리하나에 약속을 하면서는, 그래, 만석신문에는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께 말을 건네듯, 두리하나 소식지에는 아이,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듯 쓰면 되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만 두고 있었지. 어차피 거퍼 쓰는 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얘기야 하나일 테고, 같은 글 두 번 쓰는 고역을 그렇게라도 피해가야겠다 생각한 거였을 거다. 하지만 어제 먼저 쓴 두리하나에 보낼 글도 영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되지 못한 채 내 고민에 갇힌 글이었고, 오늘 쓴 글도 결국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어.

43번지 굴막

어떻게 써야 하나 첫 줄을 잡기가 너무도 어려웠네. 역시 난 프로 글쟁이는 되지 못해. 한 번 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또 한다는 건 정말 어렵고, 나를 바꿔가며 다른 어법이나 다른 자세, 다른 거리를 능수능란 구사할 줄을 몰라. 그냥 한 가지 이야기에는 하나의 말 뿐. 그래도 마음으로는 만석동 골목을 지나며 뵈었던 아주머니, 할머니들을 그리고 있었어. 어떻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는지. 어려워하기만 하다가는 인터넷에 모아놓은 만석신문에 들어갔지. 여러 꼭지들 가운데에서도 마을 이야기나 이웃들 모습을 담은, 사람 이야기를 실은 꼭지들 안에서 갯일에 대한 얘기가 있는 것들부터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어. 그리고 굴을 까는 할머니 얘기가 있는 기사와 북성부두니 만석부두가 나오는 기사들.그러곤 그 기사들을 보면서 43번지 굴막에서 43년 굴을 까며 살아온 할머니를 만났고, 영종도에 용유도, 멀리는 충청도에 있는 울섬, 모래섬, 배섬 같은 곳으로까지 굴을 캐러 다닌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기사 하나하나를 읽어가면서 마을 분들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한 게 어휴 이내글쓸 일이 있었다는 건 까맣게 잊고는 '괭이부리 이야기'와 '이웃을 찾아서'부터 '아이들이 본 세상', '육아일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어 읽었다. 이것 참, 배에서 꼬륵, 날이 저물어 형광등을 켤 시간이 한참 지나 모니터 불빛 말고는 방 안이 새카매졌는데도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던 것이 주륵 다 훑고 말았다. 물론 그 중 반은 전에 읽어본 기억이 있기는 해, 하지만 아주 처음인 양, 그 때 봤을 때보다 더 재미있어하며 읽게 되었는 걸. 몰라, 기차길, 만석동과 맺은 인연이 십 년이 되면서 그 사이 알게 모르게 귀동냥에 어깨너머 본 것들이 있게 되어 그랬을까? 전에는 읽어도 무슨 얘기인지, 어디를 말하는지, 그 느낌이 무언지 아주 모르기만 한 채 지나는 얘기들에서도 지금은 좀 더 가까이 느끼는 것 같아 그런 것인지. 암튼 나는 하루종일 만석신문을 읽었고, 마을 어르신들 얘기를 들었다. 마치 한나절을 그 마을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어. 그러고 나서야 신문에 보낼 글을 쓰는데, 그제야 어떻게 써야할지를 알겠어. 뭐 별 건 아니고, 모르는 건 모른 채로 아는 건 아는 만큼만,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건 미치지 못한 채로……. 겸손하다는 건 다른 게 아니야, 그냥 나도 그 43번지 굴막에 끼어 쪼그려 앉아.

가게 앞 / 유동훈 (2007. 6. 1) - 만석신문』, 이웃스케치

만석신문

새로 읽다시피 이번에 다시 하나하나 보는데 정말 만석신문만한 신문이 또 있을까. 있다면 내가 몰라 그렇겠지만 아, 정말 여기에 신문이 있구나 싶어. 마을의 기록이 있고,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있고, 그리고 마을에서 함께 풀어 얘기해야 할 것이 있으니 이것으로 마을의 역사가 되고, 마을을 담는 그릇이 되고, 마을의 길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이 되는구나. 알다시피 이 신문은 기차길옆 이모삼촌들이 만들어가는 것, 오늘에야 이 신문을 보면서 이모삼촌들도 다시 만나게 되었네. 사실 벌써 십년을 드나들고 만나 지내면서도 아직도 이모삼촌들을 잘은 몰랐거든. 늘 우르르 만나는 자리에서 우르르 인사하고, 정신없이 만나 그래서인지, 어느 이모랑 어느 삼촌이 짝인가 하는 것도 여태 헷갈려. 그런데 이모삼촌들이 쓴 기사들을 보면서 한 분 한 분 담아가는 이야기에 저마다 다른 빛깔의 세상이 보이는 것도 같네. 게다가 기사들 가운데에는 이모삼촌 한 분 한 분을 따로 만나 이야기 들려주는 것들도 있지. 솔직히 그 전에는 이 신문을 그리 주의깊게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신문을 내는 일은 공부방에서 아이 하나하나를 끌어안는 일만큼이나 값지고 귀한 일이구나 하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점점 철거와 개발로 언젠가는 아주 없어져 버릴지 모르는 만석동, 이모삼촌들은 만석동이 아주 없어져버릴지라도 그 모습을 신문에 하나하나 담아 놓고 있었어. 피난으로, 가난으로 처음 그곳으로 모여들어 1세대라 할만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그곳에서 살아온 옛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담아내고 있었고, 지금의 마을 구석구석 모습을그림으로, 사진으로, 그리고 또 영상으로도 담아가고 있다 했지.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어디 다른 뉴스나 일반 신문은 보지 않으셔도 만석신문만큼은 한 자 한 자 빠짐없이 다들 읽어보신다던 얘기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어렴풋 알 것 같아. 그냥 구색을 갖춘 소식지 정도가 아니라, 아니, 어디 다른 소식지라고 그냥 구색만 갖추는 정도일리가 있나, 거기에도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갈 텐데,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신문을 내는 일에는 정말 대단한 정성, 진정으로 마을과 마을 분들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여서는 하지 못할 일.

* 만석신문에 보낸 글 -

바다 앞에서.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