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일지] 거꾸로, 전쟁
[작업일지] 거꾸로, 전쟁
똥고집
좋은 편집자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복이다. 무턱대고 '좋은'이라 써 놓고 보니 그에 대한 어떤 설명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머리가 멍해 굳이 그 기준이라거나 까닭이 될 말을 찾으려 하고 싶지는 않다. 아, '좋은' 편집자라 쓴말을 그냥 '좋아하는' 편집자 정도로 바꾸면 되겠구나. 그래, 그럼 된다. 좋아하는 편집자를 만난다는 건 정말 커다란 복이다. 글을 쓰는 일에도 여러가지 힘겨움이 있겠지만 내 경우 가장 힘든 것은 내 속을 후벼파는 자의식이 주는 부끄러움과 자신없음 같은 거라 할 수 있는데, 아저씨와 일을 할 때면 그 부끄러움과 자신없음을 바닥까지 보여도 좋다. 이런 식으로 혼자 너절하게 떠드는 글이야 아무렇게고 쓸 수 있는 것이겠지만, 어딘가 정식으로 내보여야 하는 글일 경우에는 나는 언제나 뒷걸음을 치고, 열이면 아홉 반 못쓰겠다는 말부터 시작하고 들기 마련인데 그건 어쩌면 내 글의 최초 독자가 될 그 편집자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글이라는 것이 일단 필자 손을 떠나고 나면 그 나름의 목숨, 운명을 지니고 그 자체로서 홀로 서는 것이라 하지만 나는 그러한 말에 그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글은 나이며, 독자가 그 글을 읽는다는 것은 나와 그가 만나는 일이라 생각해. 그래서 잘 쓰지도 못하는 주제에 까탈스럽기는 드럽게 까탈스러워. 그 까탈스러움이라는 것은 내가 쓴 것에 대해 자부심이 강하다거나 혹은 어떤 유별난 스타일리스트가 되어서는 아니고, 그냥 똥고집 같은 거다. 나, 이 말만큼은 죽어도 하고 싶거든, 이 대목을 여기에서 걷어내면 이건 내 글이 아니야……. 푸후, 똥고집. 진짜 똥고집. 예전에 책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전혀 모를 때는, 글이라는 것은 작가 혹은 필자 혼자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줄로만 알던 때가 있었다. 맞춤법 하나라도 잘못 쓰면 큰일나는 줄 알았지. 말하자면 편집자의 역할이라는 게 뭔지를 몰랐지.특히나지금 쓴 것처럼 어떤 기획의 글을 쓰는 경우라면 그 내용의 방향부터독자를 고려한 원고의 눈높이,어느 정도의 형식과 분량까지함께 잡아가는 것이고,순수 창작인 경우에도원고에 대한 일차 독자가 되어 고치고 다듬는 일을 함께 한다는 것을. 그러다 보면 적지 않게 부딪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부딪힘이라는 게 뭐 얼굴을 붉히게 되는 그런 건 아니지만 글쎄 뭐랄까 때로는 서로 정서가 달라 다른 빛깔을 바라기도 하고, 때로는 내힘으로는 닿지 못할 것을 요구받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도 수긍도 할 수 없는 말에 속으로 존심이 상하기도 하면서……. 어쨌든 함께 작업을 하다보면 그러한 순간들을 어떻게든 풀어야 할 텐데, 이 과정은 글을 쓸 때의 힘겨움만큼이나 곤혹스럽고 어렵다. 왜냐하면 이 과정은 결국 나를 설명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것을 썼는지, 왜 이렇게 썼는지, 왜 이 말을 꼭 쓰고자 하는지, 왜 이 대목을 살렸으면 하는지, 왜 더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하겠는지……. 말할 수 있는가, 아니 어렵다. 그래도 해야 하니 진땀을 흘리며 하기야 하지만 하고 나서도 그 대답에 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 단순히 채 말하지 못한 것이 뒤늦게 떠올라서가 아니라, 말로 설명되는 것보다 언제나 말해지기 어려운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어느 편집자 아저씨
아, 그렇구나. 내가 그 편집자 아저씨를 '좋은' 편집자, 아니 '좋아하는' 편집자라고 말을 하게 되는 것은 적어도 그이에게는 내가 그 어떤 설명을 해야 할 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특별이 더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얘기를 해서도 아니. 아,물론 더 많은이야기를나누어오기야 했지, 이미 오랜시간 동안.그래서 굳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아. 그저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그것에 주석 정도를 다는 말을 한다거나 내 망설임과 머뭇거림, 자신없음과 부끄러움을 털어놓는 그것이면 족해.글쎄, 단지 친하다는 것만으로 그게 설명이 될까. 아니, 느끼기로 그이는 나를 걱정하고 있고, 나를 가련히 여기고 있고, 그래서 더더욱 나를 지켜주려 하고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앞에 얘기했네 뭐, 바닥까지 다 보여도 좋다는. 앞서 출판 과정에 있어 편집자와 함께 맞춰야 하는 몇 가지 일들에 대해, 그리고 때로 빚게 되는 부딪힘에 대해 쓰기도 했지만 아저씨는 거의 그런 것도 없어. 혹 서로 그리는 바가 다르다 하더라도 둘 다 존중될만한 것이라면 네 하고 싶은대로 해라, 끝까지 더 가 봐라……. 새끼개, 어미개 때도 그러했고, 미친개와 낙타굼에서도 역시 그랬다. 알기로 그 아저씨가 가진 미감이라는 것 또한 만만치가 않아, 예쁘지 않은 건 용서를 않거든. 예쁘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조화와 균형, 여백과 여운, 그리고 성찰과 진정이 뿜어내는 그것. 거기도 까다롭기는 보통이 아닐 텐데, 문제는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거거든. 그래도 끝내 보아 넘길 수 없는 대목이 있으면 마음에 안 드는 걸 지적해 얘기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반문할 여지를 만들어주곤 하지. 응, 이제 '좋아하는' 편집자라 한 걸음 물러서 말하지 않고 '좋은' 편집자라 말해도 되겠지.
그 때 쓴 초고
조금 전에야 전쟁 글 마마마지막 교정을 마쳐 아저씨께 메일로 보냈다.한 달 전쯤 작업일지에 쓴 것처럼 이 글은 열 명 남짓한 필자들이 한 꼭지씩 나누어 써서 모아 낼 책.약속하기로는 한 꼭지 당 원고지 사십 매 안팎의 글을 써 보내는 것이었는데, 나는 이번에도 또 분량을 못 지키고 백매가 넘는 글을 보냈네. 에이, 몰라 하고 보냈어. 세상에서 분량에 맞춰 글쓰는 게 제일 싫어, 그리고 더 싫은 건빠꾸맞아 다시 써야 한다거나 쓴 거 줄여 달라 하는 거. 이야, 이거 두 배도 넘게게 길어졌는데 어쩌나 했지만한 번 쓴 거 다시쓰기는 정말 어려워. 풋, 처음에는쓸 수 있을까, 쓸 말이 있을까, 어떻게 써야 하나고민해 놓고 그렇게나길게 쓰다니. 솔직히 처음에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글을 써나가야 할지 몰라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전쟁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평화라는 것을, 그 어마어마한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그러다 썼어. 살람 아저씨를 떠올렸고, 이라크 아이들과 기차길 아이들이 나누어온 편지를 떠올렸고, 그리고 할아버지를 떠올렸어. 그 셋을 키워드로 잡아 써 나가기 시작. 살람 아저씨 이야기를 더듬어 지금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실상에 대해, 그리고 기차길 아이들이 나누어온 편지 이야기에서 전쟁의 바깥에서 그 안을 만나는 방식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 할아버지의 삶에서 전쟁을 넘어서는 삶, 평화로 사는 삶으로 큰 덩어리를 잡았어. 다시 나는 이천삼 년부터 지금까지 이라크를 더듬었고, 그 동안 내가 한 계단씩 밟으며 보아온 전쟁의 속살과 평화라는 것을 더듬어 온 길을 되짚었지. 그래 놓고 쓰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글이 길어지네. 중간도 못 썼는데 벌써 원고지는 사십 매를 넘기고 있었어. 두드리고 가야 할 것은 아직 한참이나 되는 것 같은데 이를 어쩌나,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핵심만을 물으며 간다고 썼지만 결국은 백 매를 넘겨 버리고 말아. 아아, 그렇게 분량의 압박을 받으며 쓰다 보니 비로소 그 생각도 들었지. 아마 그 동안 내가 여러 출판사들에서 가장 많은 섭외를 받은 것이 있다면 전쟁이라거나 평화를 주제로 해 아이들에게 들려줄 단행본의 책을 만들자는 걸 텐데, 그 동안 나는 도리질만 쳐 왔네. 감히 내가 무슨 말을,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아직 헤매고만 있고, 평화라면 더더욱……. 하지만 요즘은 정말 평화니 생태니 인권이니 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어 봇물로 차고 넘치는지, 아이들 책을 내는 출판사라면 저마다 생태에 평화에 인권을 내세우는 씨리즈물을 기획하거나 아예 따로 브랜드를 내기까지 하는 모양. 그 진정성들을 함부로 의심해서도 안 되겠지만 왠지어느덧그것들마저 상품이 되고만 있는 것 같아 한 편으로는 씁쓸. 그래, 그러다가 억지로 줄이고 줄여가며이 글을 쓰고 보니 아이들에게 들려줄 평화책을 이제는 쓸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어, 벌써 시간이 이리 되어 버렸네. 쥐띠 해 첫날부터 날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이제는 설 쇨 준비를 하러 가야 해. 큰일이네 이거. 이러다 제삿상 앞에서 꾸벅꾸벅 졸지나 않을지 몰라.그 다음은 나중에 이어서.)
엄마찾아 반만리 /실버라이닝 (원곡 'Bob Marley Reble Music)
첫번 째 교정
백 매가 넘는 그 원고, 아저씨는 어이구야했지. 어쨌든 여러 꼭지를 모아내는 책을 준비하는 것인데 그 안에 한 꼭지를 브렇게 배 부른 상태로 넣는다는 거에 적지 않은 곤란함이 왜 없겠나, 그러니 나 또한 긴장.여느 때와 다르게술 한 잔 하자, 하지를 않고 그 원고놓고 같이 얘기좀 해 보자 하고 불렀으니. 이제는 내가 어이구야가 되어서, 왜요, 빨간 줄그을 때가 많아요? 하고 너스레를 떨어물어. 아니,그런 건 아닌데……. 으응, 고맙게도 빠꾸를 놓으려는 건 아니었어.처음에는 그런 대목 몇 군데에 대한 지적.- 이를 테면 나는 글을 쓰면서 가장 조심했던 게 이 글이 자칫 어떤 일방의 주장글이 되거나 내가 생각한 가치를밀어내세우는 꼴이 되지 않도록 하는거라거나 내가겪거나 들은, 알게 된 이야기를섣불리일반화해말하지않는 것, 뜬구름잡듯 관념의이야기로만 맴돌다말 것 같은 거. 그래서 나는이라크 전쟁에 대해 쓰면서미국이라는 말을 '침략자들'이라거나 '점령당국', '점령 국가'라는 말로 돌려 쓰곤 했는데, 그건이야기를 들어가면서성급히 '반미'의 관점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걸 피하고 싶은 거였거든. 또는 살람 아저씨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어떻게든아저씨와 맺은 인연이랄까,함께 나눈사연을 건너 뛸 수가 없을 텐데 그런 대목 이야기를 할 때 굳이이라크에다녀온 경험이랄까 하는 일들을 애써피하려고만 했거든.그러대, 아저씨가. 야, 이건 그냥 미국이라고하자, 이 대목에서는 니가 어떻게 살람을 만나 알게 되었는지 그 때 이야기를 어느 정도라도비춰줘야 할 거야,아마도 니가 ……한 걸 걱정해혹 어떤 규정이나 단정이 될까 싶어조심스럽게 쓴 거 같은데, 그리고너를드러내는 것 같아 부러 그 어떤 경험의 내용들은 빗겨 가려한 거 같은데……. 허허, 아니, 이 아저씨 이거 얘기가 되네.내가 그랬는 거 어떻게 알았대요, 으응, 그런 거에계속긴장하면서 말을 골랐던 것을.그래,거기에서는 더 할 얘기가 없었어. 그런 걸 서로 알고, 또 알아 그리 더 긴 얘기가 있지 않아도 좋았으니. 그러고 나서 아저씨가한 번 손을 봐 보여준 원고는에이포 열두 장 글을 열 장 정도로 다시 챙겨 본거였어. 살람 아저씨 얘기부터 시작해 전쟁의 배경과 실상, 그리고 내전의 속 모음까지 이야기하고, 그 뒤 기차길 아이들 얘기까지 와서평화라는 것이 어떤마음에서 비롯되는가를 얘기하면 이 정도만으로도 하나의 완결성을갖는 것 같아……. 아이들이 한 호흡으로읽기에도 그 정도에서 마무리지어도 충분할 거라는, 어떻게 보면 그와는맥을 좀 달리해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의 얘기는 굳이 담지 않아도 좋을 거라는얘기. 아저씨 얘기는 충분히 수긍, 공감할 만한 얘기였고, 아쉬움이 없기는 했지만 한 편의 글에 하고픈 말을 다 담으려 하는 것도 어쩜 내 욕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줄여본 원고만 해도 이미 원고지로 백 매를 육박, 아저씨로서는 그 분량도 부담스럽기는 한 가지일 텐데, 더 요구를 하는 것도 정말 되지 않는 욕심이기만 한 것 같았다. 그래요, 그렇게 줄여 다시 써 볼게요.
편지
그런데 내가 다시 손을 보아 보낸 원고는 처음 보낸 글에서 분량을 하나도 줄이지 못한 백이십 매에 가까운 글이었다. 글의 호흡이나 그 자체로도 하나의 완결이 되는 글에서 더 이어지는 뒷 부분,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삶을 말하며 전쟁을 넘어서는 삶, 다른 삶의 실천에 대해 쓴 부분을 덜어내기로 한 거였는데 다시 정리해보려 글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도 읽어도 나로서는 그 대목을 잘라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실컷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해 놓고, 정작 그래서 어쩌라구, 에 대한 질문에는 아무 답도 하지 못하는 것 같은. 결국 내가 한 것이라고는 거칠게 써 있는 초고를 매만져 다듬은 것 뿐. 나는 원고 교정에보다 전쟁이라는 것을 놓고 내 고민이 어떤 식으로 자라왔는지, 지금 상태에서 정작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고, 그리해 그 이야기들로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는 것에 더 공을 들였다.
흘러온, 혹은 자라온
생각해 보면 전쟁이 있고 여러 해를 지나는 동안 내 고민의 내용과 방향은 어느만큼씩 달리해왔어. 글쎄, '자라왔다'고 말을 했지만, 그것이 옳게 자란 것인가 하는 건가는 모르겠으나 어떻게든 흘러왔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몰랐어. 그냥 무서웠고, 숨이 막혔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 뿐. 그래서 그 때는 전쟁을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자리거나 글을 쓸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말 또한 그 뿐이었다. 그래서 무슨 토론 자리가 있거나 할 때도기껏해야 나는 그곳에서 겪은 기억을 떠올리는 정도밖에 더할 수가 없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야 전쟁을 둘러싸고 나오는 얘기들, 이를 테면 전쟁주의자들의 논리라거나 배경, 그리고 실제로 이뤄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하나하나 찾아 배우게 되었지. 하지만 그래봐야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나 글은 그만큼의 배경 사실들을 뒷받침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인지,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나서였을까, 이라크 아이들과 이곳 아이들이 편지 주고 받는 일에 다리를 놓으면서, 그리고 그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마음을 보면서 비로소 평화라는 것에서 어떤 한 계단을 올라딛는 것 같았어. 진정한 평화는 구체적인 한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곳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국가를 비롯해 그 어떤 크고작은 집단이고 집단의 정의, 집단의 가치,집단의 논리를 넘어서지 못하면 그 끝은 결국 그 어느 집단의 완벽한 승리 혹은 또 다른 집단의 소멸이라는 전쟁의 논리에 갇히게 마련이라는, 어떤 집단 논리에 갇혀 있어서는 자신도 모르게맹목적인 적대와미움을 키우게 마련이라는……. 오직 개인으로 만나 서로 사과와 용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나눌 때 그 아픔을 내 것으로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평화의 바다로 가는 작은 물줄기가 될 수 있음을,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던 그것을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구체적인 마음을 보며 배우는 것 같았다. 옳고 그름을 밝히는 일이 간과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평화가 시작되는 자리는 옳고 그름을 밝히는 일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있다는 것을. 그래, 그리고 나서 나는 또다시 전쟁이거나 평화를 말하는 자리, 글을 쓰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그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했겠지.
할아버지가 들려준 말들
그리고 또 언제였을까,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들. 실은 할아버지가 들려준 말들 그 한 구절 한 구절들은 저마다 몇 해가 지나, 또 몇 해가 지나서야 어렴풋 알게 되곤 했다.그곳엘 왜 갔느냐며, 전쟁터는그 어떤 선한 마음이나 약한 마음도 다 악마로 만들어버리는곳이라는 말이나 또는 한참반전 캠페인 같은 일들을 하러 다닐 때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하시던 말씀이나승용차를 버려야 파병을 막을 수 있다던 그 말씀도,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데 어떻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도…….모두 그랬다. 몇 해가 지나서야 문득떠오르면서 아, 그 때 하신 말씀이 이거였구나 하면서. 그것도다 따로따로. 2005년 살람의 고백을 듣다가, 그리고 또 그 어느 해 텅빈 시외버스를 타고 울진을 내려가던 어느 길 위에서,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당신의 삶의 의미를다시금 마주하면서.할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뒤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권정생을 '아름다운 영혼', '맑게 가난한 무욕의 삶' 같은 말들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단지 그렇게 표현되는 것들에 왜 그렇게나 불편했는지 몰라.자꾸만 할아버지를 어떤 틀 안으로 가두는 것 같은.그것도 단지 무욕의 맑은 삶, 바보같이 욕심없는 착한 삶 같은 프레임만으로. 그게 아닌데, 할아버지는 다섯 평 그 오두막에서 세상과 싸워오신 건데, 전쟁과 싸웠고, 이기와 싸웠고, 문명과 싸웠고, 자본의 방식과 싸워온 건데… 할아버지가 그토록 그리던 평화와 생명은 그저 말이 아니라 할아버지 삶에 있던 건데…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늘 무슨 캠페인 같은 거, 그게 아니다, 그냥 농사지으며 살아라,가난하게 살아라, 불편하게 살아라 하고 말하시기만 했는데……. 그리고 나도 할아버지에 대한 추모글을 하나 쓸 일이 있었는데, 그 때였을까? 적어도 그 당시 쏟아져나오던 할아버지에 대한 글들처럼 그저 어떤 회고담이나 막연한 추앙을 담는 글은 죽어도 쓰고 싶지가 않아. 할아버지의 삶이 단순히 착하고 맑은 것이 아니라 이 시대와 어떻게 긴장하고 대결했는지, 당신의 평화 사상, 생명 사상이라는 것이 그 오두막의 삶에서 어떻게 구현된 것인지를 말해내고 싶은데, 아, 그걸 어떻게 말해낼 수 있을지…….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에 어지럽게 혹은 어렴풋 있던 것을 어떻게든 정리해낼 수 있도록 싸우게 해 주는 과정이 되기도 하는 걸까? 그 글을 쓰면서야, 그리고 그 글을 쓰느라 할아버지의 삶 앞에서 내 어설픈 관념과 싸우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자본과 문명을 넘어선 삶, 그 그물에 갇히지 않고 자립으로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삶의 방식을 달리하면서 없이 사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넘어설 수 있었던,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것으로 전쟁과 개발주의자들의 잇속 바깥에서 그 구조를 거슬러 살아오셨다는 것을……. 그리고 그제서야 다시 한 번 몇 해 전 할아버지 말씀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지.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데 어떻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느냐시던. 삶을 바꾸는 일, 그래 그건 예전 학습'받던' 때 정치경제학 식으로 얘길하면 그건 물적토대를 바꾸는 일이겠지, 전쟁이라는 최고 정치 행위가 들어설 수 없게 하는.
뼈를 깎는
그 편지는 그런 거였다. 아저씨, 나는 할아버지 삶을 이야기해 삶의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대목을 덜어내고서는 이 원고에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어요. 이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아저씨는 벌써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았을 테고, 아저씨는 다시 그 글을, 편지를 읽어주었다. 마치 탁구공이 오가듯 그렇게 원고는 아저씨와 나 사이로 몇 번을 오갔고, 편지와 함께 간 그 원고에 아저씨는 다시 한 번 아저씨 손을 지난 원고를 보내주었다. '내가 졌다, 이누마' 했지만 아저씨는 그 원고를 가지고 다시 씨름, 그리곤 전체를 살리는 속에서 뼈를 깎는, '니 대신 내가 뼈를 깎는다' 하며 여전히 남아 있는 내 중언부언중얼중얼을 찾아 어디를 줄였는지도 모르게 살을 빼 보내왔다. 됐다, 휴우. 그리곤 나도 다시 꼬박 이틀을 매달렸지. 대신 뼈를 깎아준 아저씨가 고마워, 그것 그대로 보아준 아저씨가 고마워, 나도 더 미뤄둘 수가 없어. 원고에는 여전히 더 걷어낼 수식구나 아직도 남아있는 반복되는 구절들이 있어, 그리고글 읽기를 재미없게 나오는 여러 번 나오는 낱말들이 걸렸고, 역시나 다시 읽을 때마다 걸리는 '지요'와 '어요'.정신을 차려 소리내 읽다 보면 알게 모르게 비문이 남아 있어.문장이 긴 것들을 보면주어 술어가 따로 노는 게 많고, 쉼표가 많을수록호응 관계가 어긋나는 곳이 많아. 아마어떻게든 짧게 쓴다 하다가 여러 말을 한 문장에 때려넣다 보니자꾸 그래졌는지. 읽기에도 숨이 차고,무슨 말인지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둘이나 셋으로 짧게 잘라 쓰는 게 차라리 경제적이겠어. 그렇게 그렇게 다시……. 쓰다보니 거의원고 전체에 새로 윤문 과정을 거치듯 했어.그렇게 피씨방에 앉아 설날 동틀 무렵을 맞아.
아웃팅
좋은 편집자를 만나는 것은 정말 복이다. 글쎄, 아저씨에게 그런 말을 하기도 했지. 아저씨가 편집자가 아니라면, 출판사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 좋았겠다는. 왠지 그런 시선이 없지 않게 쓰이기도 하니까. 뭐랄까, 무슨 유착 관계 같은 거, 아저씨는 아저씨 나름으로 필자를, 나는 나대로 출판사 사장님을. 그런 거 아니라면 애정 표현을 더 팍팍 할 텐데 말이야. 그래서 출판사 얼른 넘겨주고 그만 두라 했지. 늘 바라온 것처럼 언능 터 잡고 내려가 집 짓는 거부터 시작하라고, 내가 일해주러 간다고……. 푸하, 이런 아웃팅 이거 사실 되게 위험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지. 필자는 비평가니 출판업자니 그런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느니, 글은 글 자체로 하나의 목숨이라느니…… 오우, 노우! 나는 프로가 아니거던. 그냥 아마츄얼리즘으로 갈 거야.글을 쓰는 일은, 다른 어떤 고려도 없이 그저 싸우는 일일 뿐이야. 누가 뭐라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