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목수일기] 사진들

냉이로그 2008. 3. 6. 23:12

[목수일기] 사진들

1. 아버지와 아들

아, 예쁘다. 하은이 얼굴 좀 봐. 열두 살, 초등학교 오학년인 하은이는 학교를 마치면 자전거를 타고 집터로 찾아온다. 아직 다른 공구를 쓰는일은 못하지만 끌 구멍을 따내는 일이 있으면 웬만한 어른 한 몫을 거뜬히 해 낸다. 저 얼굴 표정 좀 봐, 처음에는 그저 흉내 삼아 끌이며 중함마를 찾아 몇 번 두드리다 마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하은이가 따낸 끌 자리를 보면 외려 내가 한 것보다 더 말끔해 보이기까지 해.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하은이는 치목장에 와 나무를 타고 앉았다. 그리고 눈을 반짝이며 장부 촉이 들어갈 자리 구멍을 따내느라 끌을 이리저리 대가면서 망치질을 해.이렇게 배워가는구나,살아가는 법을, 그야말로 일과 놀이와 배움을 하나로 즐기며……. 늦깎기 목수 엉아와늦둥이 막내 아이가 나란히 앉아끌질을 하는저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여기에 동화가 있다. 읽거나 쓰는 것으로가 아니라 그대로의 삶으로,동화와 같은 삶이 있다.





2. 메모

이건 어제 끄적여 놓은 거. 그저께는 눈이 너무 쌓여 아예 일을 못했고, 밤 사이 다시 눈이 내려 어제도 오전 나절에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고 얘기들이야 요 아래 끄적인 것에 쓴 것 그대로. 점심 밥을 먹고 나서는 일을 했다. 눈밭에서 눈발 날리고, 톱밥 날리는 그림 속에 일하겠다 하는 건 천만의 말씀, 눈 녹아 질척이는 진창에서 발목 위까지 빠져가면서 진흙 구덩이와 싸워가며 일을 했다. 나무가 물을 먹으니 두 배는 더 힘이 들었고, 발이 푹푹 빠져 또 두 배는 더 힘이 들었으니 아홉 자, 열두 자 되는 나무들을 들고 나르는 일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 속에서도 두 분 목수 어르신은 얼마나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시는지 몰라. 한 분은 계산을 할 것도 없이 바로 먹을 놓았고, 또 한 분은 체인톱 하나와 자귀 한 자루 가지고 먹금을 따라 재단을 했다. 대패질로 면을 잡고,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장부 자리에 끌 구멍을 따내는 것이 먹통 엉아와 내가 할 일인데 나무는 계속해서 우리 앞에 쌓였다. 어르신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넘겨지는대로 나무를 다듬어낼 수가 없어. 게다가 치목 차례에 따라 써야할 재목이 있으면 그 위로 산처럼 쌓아올린 것들을 옮겨내는 일을 해야 하니 치목은 더 밀릴 수밖에. 실제로도 대패질이나 끌질, 루터기로 모서리 잡는 일 같은 일보다 더 많은 힘과 시간을 들이게 되는 일은 산처럼 쌓인 나무를 들어내는 일이기도 했다. 으아, 맨 밑에 깔린 재목 하나를 쓰려면 그 위에 산더미를 이룬 것들부터 다 들어내야 해.아, 그런데 왜 그리도 자꾸만어르신이 찾는 나무는 맨 밑바닥 귀퉁이에 깔려 있는 거야. 하하하, 그래도 힘들여 일을 하고 난 저녁지친 몸 따뜻한 물에 씻고 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해서벌써 기둥에도리,장혀, 그리고 대들보까지 치목을 마쳤다.뺄목으로 나오는 장혀 끝 머리도 먹통 엉아가곡을 지게 해 아주 예쁘게 다듬어 놓았다. 아, 오늘도 힘들었다. 어제는 술을마시고 들어와 그대로 뻗었는데, 오늘은술을 먹고 들어와서도 이렇게 앉아 있네. 아, 좋다. 사는 것 같아.






(열여섯 평 맞배집, 작고 아담한 집을 짓는다. 지붕 아래 다락을 만들려 하니 그것 또한 쉽지 않고, 목수 어르신이 지어오신 집과는 조금 다른 구조, 모양의 집을 지으려니 하나하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적지 않아. 그냥 벽돌 같은 것을 쌓아 짓는 집이라면 올리면서 조정해 볼 수 있겠지만 치수에 꼭 맞게 나무를 재단해 다듬어야 하니 대충 넘길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그러니 먹통 엉아는 그것들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다. 때때로 물목표를 다시펼쳐 확인하고, 다른 집들은 어떻게 지었는지 찾아 살피고, 조금이라도 더 편리하고 아늑한 집이 될 수 있도록 부재들의 길이와 각, 매김에 하나하나 신경을 쓴다. 잠깐 짬이 난 사이 깊이 잠이 들었어.)


(우리가 지을 집에서 살 마리아 선생님, 오전 오후로 참을 해다 나르느라 바빠. 게다가 내 저녁 밥까지 차려주시고 있는 걸. 오늘은 오전 참에 점심, 오후 참까지 배가 너무 불러 일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는 걸. 게다가 오후에는 대들보를 다듬어야 했는데 그 크기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들어나르기는커녕 굴리기조차 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기어다니다시피 하면서 전기대패를 밀어야 했는데 배가 얼마나 부른지 허리를 못 굽힐까봐 참을 다 먹을 수가 없었어.)

슈퍼 휴머니즘 / 어어부밴드

3. 목수 냉이

나는 뭘 해도 이렇게 폼이 안 난다니까. 서툴고도 어설퍼.집에 돌아와 장갑을 벗으면 손 여기저기로 까인 자리가 울긋불긋해. 씻다가도 아, 쓰라려라 하고 보면 무릎 어딘가도 또 어딘가에 부딪혀 까져 있겠지. 일할 때는 모르다가 씻을 때야 알게 되곤 한다. 일 못하는 티가 그렇게 나는 거겠지. 하지만 좋다. 버석하고 퉁퉁해진 손을 만지는 게 좋아. - 이 사진들은 마리아 선생님이 찍어 올려놓은 것들에서









(먹을 잡는 도편수 어르신. 먹을 어떻게 그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놓으실 수 있는지 몰라. 처음 만나 인사를 하던 날, 일하다 보면은 혼도 나고 그럴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가 뭘 잘 못해도 늘 자상하게 일러 가르쳐주기만 하신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할아버지야.)



(톱질도 톱질이지만 이 어르신께 내가 정말 놀란 건 자귀질 하는 걸 보고서였다. 나는 암만 먹선에다 끌을 갖다 대놓고 망치로 때려도자꾸만 틀어지고 흔들리곤 하는데 이 어르신은 뭘 대보는 것도 없이자귀를 휘두르기만 하는 것 같은 데도 먹선을 아주 정확히 때린다. 자귀질을 얼마나 하면 그만큼 할 수가 있을까, 정말 무슨 달인을 보는 것만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