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못자리를 둘러보고 와서 / 최흥찬

냉이로그 2008. 5. 1. 15:09

1.'못자리를둘러보고 와서'

기차길옆 작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게시판을 비롯한 이러저러한 메뉴로 넘어가기 전 만석동 작은학교 일기와 강화 일기를 볼 수 있는 창이 있다. 성급히 게시판 글을 보려 하다간 여기에 있는 보석같은 글들을 놓칠 위험이 있어. 한참만에 다시 찾은 기차길 홈페이지. 큰삼촌 글이 있다. ‘못자리를 둘러보고 와서’라는 글. 글을 읽다 보면 잘 된 것이어서 빨려드는 글 가운데에서도 그것을 읽다 보면 사람이 남는 것과 그저 재미를 주는 문장이나 구성에 긴장을 하고마는 것이 있다. 글쎄, 내 기준에 따라 어느 쪽 글이 더 좋다 말하는 건 부질없지만 어쨌든 나는 사람이 남는 글, 그 사람의 숨소리가 들리고, 얼굴에 맺힌 땀방울, 쑥스러움에 웃어 눈가 주름이 보이는 그런 글을 사랑한다.


오늘 읽은 기차길옆 작은학교 홈페이지 강화 일기 가운데 큰삼촌이 남긴 글이 그랬다. 글에는 쓴 날짜가 들어 있지 않지만 그 아래 댓글로 붙은 것들이 24일, 25일이니 아마 그보다 하루이틀 앞선 날인가봐. 나는 후투티라는 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하지만 큰삼촌이 차를 멈추고 그 새 한 쌍을 바라보는 모습만큼은 눈에 보일 듯 선하다. 조팝나무에 대한 이야기 역시 길진 않지만 삼촌과 공부방 식구들이 강화에 처음 들어가 마음을 붙이고 평안을 찾기까지 쉽지 않았을 그 시간들이 느껴지는 것 같아. 볍씨를 그렇게 틔웠구나, 동훈 삼촌, 종완 삼촌, 길재 삼촌, 상범 삼촌 얼굴들이 다 보이는 것 같아. 정환네 아저씨, 민지 아빠 웃는 웃음 소리도 여기 사잇골에서 듣는 어느 웃음 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다. 모판에 있는 볍씨들이 싹을 다 틔울 때까지 불안, 초조해하는 삼촌 모습에 나 또한 조마조마해지는 것 같아. 그렇게 벼농사를 짓고 있구나, 거기 강화에서.


요사이 읽은 글 가운데 가장 좋았어. 글에 멋을 부린 구석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어. 오로지 그 삶만으로, 그리고 그 삶을 살아내고 있는 굳고도 여린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글. 삶을 닮은 글이고, 자연 안에서 의지하고 위로받으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 이런 글이라면 누구하고라도 나눠 읽고 싶어.

못자리를 둘러보고 와서/ 최흥찬

고추를 심으려고 준비해 둔 이랑을 촉촉이 적실만큼 봄비가 내렸다.
비가 와 색이 짙어진 이랑 사이를 후투티 한 쌍이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한동안 보질 못해 반가운 마음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바삐 움직이던 녀석들이 나의 눈길을 알아차렸는지 이내 우리 밭 맞은편의 팽나무로 휑하니 날아가 버린다.

사람들이 봄을 반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색색의 꽃들이 선물하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산기슭을 꾸미는 진달래, 개나리, 벚꽃, 매화등과 들판을 꾸미는 제비꽃, 고추나물 꽃, 양지꽃, 등등……. 이렇게 봄을 꾸미는 여러 가지의 나무와 꽃 중에서 나는 조팝나무 꽃을 제일 좋아한다. 별주부전에 의하면 별주부가 토끼를 잡으러 땅위로 올라와 처음으로 본 꽃이 이 조팝나무 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이집으로 이사를 와 처음 시작하는 강화생활이 조금 낯설고, 불안할 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것이 바로 강화집 입구에 활짝 핀 조팝나무 꽃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을 오르내릴 때마다 한눈 가득히 들어오는 눈부시게 하얀 조팝나무의 꽃들을 보면 낯설음과 불안이 사라지곤 했다. 작년 사위질빵나무 덩굴이 활개를 쳐 몇 그루가 죽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풍성하진 않지만 그래도 집을 오르내릴 때 가장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조팝나무이다.

공부방이 막바지 공연 준비로 정신이 없을 때 강화에서는 모기르기 준비를 시작하였다.
소금물로 좋은 볍씨를 가르고,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하고, 낮에 물에 담갔다 저녁에 꺼내기를 반복하고 마지막으로 목초액과 키토산으로 소독을 해 싹틔우기를 하였다. 만석동으로 모임을 다녀와 늦게 싹틔우기를 하는 바람에 골고루 싹이 트질 않았다. 혹시나 열이 골고루 닿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새벽에 작년보다도 더 자주 뒤집기를 해주었는데도 작년만큼 되질 않았다. 싹을 잘못 틔워 실패한 경험이 있는지라 걱정이 되고 불안 했지만, 일정상 싹을 더 틔워 넣을 시간도 안 되고 하여 그냥 넣기로 하였다. 동훈이와 종완이를 불러 작업을 하고 올해는 수동으로 볍씨를 뿌리는 기계도 빌려 놓아 금방 끝나려니 생각을 했는데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기초학습을 미루고 상범이, 길재와 함께 밤일을 해 마무리를 했다.

월요일에 동훈이와 종완이를 불러 모판을 못자리에 넣을 생각이었는데 너무 오래 모판을 묵히는 것 같아 토요일에 넣기로 하고 미안하지만 회사를 쉬는 형섭이를 불렀다. 토요일 아침 모판을 차에 싣고 있는데 민지아빠에게서 못자리를 같이 하자는전화가 왔다. 급하게 SOS 친 민지네 못자리를 도와주려 갔다. 작년보다 공을 들였고 보기에도 베테랑 못지않게 못자리를 준비해 놓았다는 생각에 농담조로 베테랑 농사꾼인 민지아빠의 못자리 솜씨를 타박했다.
“이걸 못자리라고 해놨나?”
정환네아저씨랑 민지아빠가 껄껄 웃는다. 사람이 많아 일찍 끝내고 우리 못자리를 하러 우리 논으로 왔다. 혹시 무슨 잔소리라도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민지아빠 왈
“야 이제 정말 농사꾼 다 됐네!”
40중반이 넘은 나이지만 칭찬은 역시 기분을 좋게 한다.

작년에는 날씨도 우중충하고 바람도 많아 못자리를 할 때 애를 많이 먹었는데 올해는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어 무사히 못자리를 마쳤다. 아침저녁으로 보살피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싹을 덜 틔운 것이 걱정이 되었다. 일을 해놓고도 초조해 하고 불안해하는걸 보면 아직 초보농사꾼의 때를 벗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아침저녁으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오늘 아침 싹이 잘 나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못자리를 둘러보았다. 모판 가득 뾰족하게 새싹들이 고개를 들고 올라온다. 다행이다.
모기르기가 농사의 반이라 했으니 정성을 다해 보살펴야 한다.

마을에 있는 우리 앞논 논 둑에 화살나무가 한그루 있다. 처음 발견 했을 때 덩그러니 혼자 외롭게 있는 나무가 신기하기도 하고 애처로워서 남은 비료도 주고 주위 풀도 베어 주곤 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렇게 가꿔 주는 일조차 뜸하게 되었다. 그러나 닿는 손길이 없어도 화살나무는 매년 딱 그 모습으로 다시 새잎을 틔우곤 한다. 키도 크지 않고 잎도 풍성하지 않아 볼품도 없는 나무.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또 그렇게 1년 2년 버티며 새싹을 틔우는 화살나무가 대견하고 고맙다.
어렵고 힘든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힘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내려는 약한 사람들의 모습인 것 같아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큰삼촌 글을 읽어가는데 이 글에서 먹통 엉아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아, 아닌 게 아니라 먹통 엉아와 많이도 닮아 있는 걸. 가벼운 바람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그 묵직한 무게와 다 해 놓고도 아무 것도 한 일 없다 뒤돌아서는 그 뒷모습까지. 그래, 언제 강화에 가면 큰삼촌이랑 제대로 한 잔 하자 약속해 놓고 있기는 했지만 여태 꾹꾹 아껴두고만 있어 잘은 몰라.그 무게를, 그 깊이를, 그 떨림을. 내가 알기로 큰 삼촌은 기차길에서 서까래나 용마루도, 그렇다고 떡 버티고 서서 그것들을 받치는 기둥과 같지도 않아. 그 기둥 아래 몸을 묻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등을 내주고 있는 주추돌 같은 사람. 그 자리에 있지 않아야 비로소 그 커다란 존재감이 드러나는.그러다가도 춘천 인형극제 같은 자리에서 갑자기사람이 모자라다 하면 아무렇지 않게무대 한 켠에서 소품을 들고 서거나 엑스트라 역이 되어 그 자리를메우는, 그런 맨뒷자리이고 맨바닥인 곳에서묵묵히.

언젠가 할아버지가 그런 얘기를 한 일이 있어. 이미 그 땐 큰삼촌, 큰이모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다녀간 뒤 몇 달이 지난 때였어. 무슨 얘기인가를 하다가 나는 기차길 소식을 전해드렸고,내가 큰이모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고마워하는지에 대한 얘기 따위를 하고 있었을 거야.가만히 듣고만 있던 할아버지가 그러셔.전에봤던 그 남편되는 사람, 그 사람이 참 믿음직스러워……. 글쎄, 그 지난 번 함께 만날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큰삼촌이 그다지 특별한 얘기를 나눈 것 같지는 않았는데,뜬금없이 그러한말씀을 하는 거였다. 그냥 신기하다 생각을 했어. 참 신기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어떤 콩깍지 같은 것이 있어 어느만큼은 무슨 도력을 지니기라도한 분처럼 여기던 때거든. 잠깐의 만남에서 할아버지는 어찌 그리사람을꿰뚫듯 들여다 보셨을까, 하고만 생각을했더랬지.아, 그러고보니 내가 큰이모를 만나고 기차길 식구들을 만나게 된 것도 그 처음이 할아버지였더랬어. 아직 큰이모를 모르던 때, 그저 괭이부리말을 책으로만 읽고, 기차길옆 공부방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던 때 할아버지가 내게 보낸 첫 편지에서 큰이모 얘기를 했어. 인천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이를 만나보라고, 만나 좋은 인연을 맺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만난이모삼촌들, 그곳의아이들.

나무의 꿈 / 수니(Soonie)

2. 샘골

집짓는 일이 마무리되면서 그간 목수로, 미장과 설비, 조경 따위 데모도로 일을 하던 초보 목수들은 각자 부업으로 돌아갔다. 이게 부업인지 본업인지 어쨌든 먹통 엉아는 농사꾼으로 돌아가 샘골 논으로 올라갔고, 나는 백수에 가까운 작가, 룸펜으로 돌아와 있어.먹통 엉아는 지금도 샘골논에 올라 있겠지. 지난 주말 논을 다 갈지 못했으니 어제오늘도 경운기를 밀고들어가 씨름을 하고 있는지 몰라.나는 이렇게 헐렁하게 무언가를 읽거나 끄적여 폼이나 잡고 앉아 있어.

그 동안에도 나는 지나치리만큼 그 말을 많이 했는 걸. 나는 목수 일만 할 거에요, 집 다 짓고 나면 다음 집 짓는 일에 들어갈 때까지 글 쓰며 지낼 게요.농사일은 하지않을 거야, 목수만 할 거야……. 듣는 사람 지겨울 정도로 얘기를 했는지 몰라. 나도 모르겠어. 왜 그 말을 그렇게나 많이 했는지. 그렇게 못이라도 박아 놓지 않으면 누가 억지로 끌고 나가기라도 할까 싶어 그랬는지.

자신이 없는 것이었다. 나라고 농사를 짓는 일에 대한 경외나 그 기쁨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왜 없겠나. 머릿속으로만이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 그려왔는 걸. 그런데 겁이 나. 지금 이렇게 목수 일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삶의 엄청난 변화라 할만한데 당장 목수일에 농삿일까지 한다 생각하면 그렇게나 통째로 다 바꾸어내는 것을 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아.지난 몇 달 동안목수일을해 집을 지으면서도 수 년 간 백수로 살아오며 몸에 배어온 것들에 대한 금단 현상 같은 것들이 불쑥불쑥 일어적잖이 힘겹곤 했는데, 바로 이어 농삿일까지 할 자신은 도무지 없어. 나는 아직도 가끔 저녁이면읍내 불빛이라도보러 나갔다 와야 뭔가 답답증이 없으며, 요 며칠 책을 뒤적이거나인터넷을살펴파고들려 한 것처럼 세상의 일들에 대한일정량의 호흡을가져야 무언지 모를 그 불안함이 없으니.그냥 그런것이다. 한 번에 다 바꾸어낼 자신은 아직 없다는 거.봄가을로 두세 달씩 목수 일을 하며 지내는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너무 커다란 변화,여기에만도 몸의 적응이 필요하고 이러저러한욕망의 적응 또한 필요해. 삶의 리듬을 달리해야 할 것이며감정이나 의식마저도.하지만 벌써 석 달 가까이 지나면서그것이 그리어렵지만은 않을 거라는 자신 또한 있다.한 번씩 난리를 친 적도 있고, 가출이랍시고 뛰쳐 나간 일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껏 잘 해 오고 있었고, 앞으로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단지 너무 서두르지 않으려는 것 뿐이야. 시간이 필요하겠지. 자연스럽게 내 몸이 원하는 순간이 올 테니, 어느덧 나는 도시 불빛에 대한 결핍이나 세상 일에 대한 호흡을놓치고 있다는 것에 대한불안감 같은 것을 느끼듯 씨앗 놓아야 할 때나 모자리 해야 할 때를 놓칠까 긴장을 하게 되겠지. 오두막 툇문을 열어 보이는 밭에 풀이 무성히 자라 있으면 내 마음이 먼저 불편해 김을 매러 나가는 그런 때가 올 거야. 그래, 벌써 십 년 가까이를 백수, 룸펜으로 살던 것이 뼛속으로 들었는데 한 순간에 목수일에 농삿일까지 하는 건강한 삶으로 확 바꿀 수는 없는 거잖아. 너무 어거지로 하면 부작용이 생길 거야. 그랬다간 가출이 아니라 아주 달아나 버릴지도 몰라.

벌써 나흘 째, 먹통 엉아는 새벽 바람으로 샘골에 오르고 있겠지. 나는 아직 한 번도 그 쪽으로는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어. 논바닥을 헤매며 땀을 바가지로 쏟고 있을 거야. 지난 해까지는 트랙터를 불러 갈던 논을 올 해는 경운기로만 간다 했으니 지난 주말 잠깐 본 것만으로도 그 일이 여간 쉽지 않을 거라는 걸모르지 않는데. 어쩜 먹통 엉아는 내가 한 번쯤 얼음 커피라도 타 들고 샘골로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일을 하러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차가운 물이라도 한 병 담아, 시원한 하드라도 하나 사 들고, 아님 벌써 땀에 축축해졌을 수건 말고 뽀송한 새 수건이라도 들고 찾아주기를. 아, 솔직히 지금 이렇게 끄적이기 전에는 이런 생각조차 한 번 해 보질 못하고 있었네. 에이, 바보 같아. 어쩜 엉아는 아침에 도시락을 담으면서 혹시 싶어 나 먹을 것까지 밥 한 덩이를 더 싸가지고 오르는지도 모르지. 그러곤 남게 되는 그 밥 한 덩이 그대로 더 꾸역꾸역 먹고 내려오면서…….그만 다 덮고 샘골에올라가봐야겠다. 냉장고에 얼음이 있나 몰라.지난 해 봄 못물을 대고 난 뒤 먹통 엉아가 쓴, 꼼짝 못하게 하는 그 시를 다시 찾아 읽어.

아, 논! 못물 그득 머금은 논

빛날 땐 어떤 사상보다 빛나고

일렁일 땐 어떤 사랑보다도 일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