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
일간에 방을 들여마을회관으로 짓는 일이 시작한다. 한옥으로 지어 놓은 골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흙벽돌로 벽을 쌓고 바닥에는 보일러를 깔아 방을 들인다. 씻고 볼 일을 볼 수 있는 조그만 욕실도 들일 거고, 한 쪽에는 간단하게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간이 부엌도 꾸미려 한다. 그러니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흙벽을 쌓는 일부터 보일러를 까는 일 그리고 상하수도 길을 내어 관을 묻는 일, 전기를 끌어다 필요한 곳에 등을 달고 콘센트를 내는 것 들이다. 그 밖에도 문과 창을내는 자리 샷시 일도 있을 테고, 욕실 타일을 붙이는 일이나 도배 장판 일까지 적지 않은 일들이 놓여 있다. 말하자면 골조를 짓는 목수 일을 빼고는 집 한 채를 새로 짓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인 셈.
어제 자세히 얘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집의 뼈대를 세우는 목수 일은 보일러실 덧대는 곳 도리와 서까래를 더 얹는 정도일 뿐이고, 남은 공정의 일이야조적공과 미장이,배관과 설비 기술자, 전기공, 문장이와 타일공같은 자기 분야의 기술자들이 맡아 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야 그저 내가 할 수 있는만큼 데모도 일이나 힘껏 하면 되리라생각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일에 들어갈 것을 그려보니 전체 공정을 주관하면서 각 부문의 일을 서로 조율하고, 일을 진행시키기 위한 부대 자재나 설비를 미리 마련하는 일 들의 역할이 애매하게 남아 있었다. 봄에 집을 지을 때는 먹통 엉아가 했던 그 역할.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 일을 하려면 일의 전체 공정을 통째로 이해, 어느 정도 장악하고있어야 품이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각 단계의 선후 과정을알아야서로아귀가맞게일을 진행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그런데 어쩌다 보니그 구실까지 내게 돌아오게 되었다. 물론 흙벽 쌓는 일을 맡은 황사장님이 전체 일을 봐주신다고는 했지만 조적이나 미장 일이아닐 때는 다른 업자들이 나와 일을 하게 될 텐데 곁에서 그 일들을똘똘하게 잘 할 수 있을지가 걱정.아직 나는 목수 일만으로도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하는데, 집 짓는 전체 일을본다는 건 더욱막연할 수밖에……. 또 이러고 있다. 해 보지 않은 일에 덤벼들지를 못하고 걱정부터 앞세우는 버릇. 그래, 먹통 엉아도 처음에는.
오늘 아침 일찍 홍천에서 실어온 흙벽돌과 진흙, 황토 몰타르가 오톤 트럭으로 들어왔다. 지게차가 먼저 와 있어 그것들을 일간 둘레에 부려 놓아. 그리고는 오전 내내 빠루와 망치를 들고 벽이 들어설 곳에 외를 박아 놓았던 것들을 헐어냈다. 그리고 모양을 살려 기리바시처럼 비스듬히 지지해놓던 널빤들을 다 뜯어내. 가을 하늘은 높고 구름없이 공활하였다. 햇볕도, 바람도 딱 좋아. 노가다판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건 뜯어낸 자리 못을 공구는 거. 오랜만에 망치질을 실컷 했다.
"일 시작했어?"
"아니요, 내일부터."
"오늘은 왜 안 해?"
"어어, 지금도 뭐 하긴 해요. 내일부터 일 들어가게 준비하는 거."
"일하는 분들이 왔어?"
"아니요, 아직 혼자.."
"왜 혼자 해?"
"어어……. 같이 일하던 사람이 죽었으니까아."
"그러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스쿠터 언니여서일 것이다. 일부러 더 태연하게 하려 했을까, 스쿠터 언니도 웃었고, 나도 웃었다.어벙한 말투들이어서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태연하게도 그리 말을 할 수 있었다.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연습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