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용산참사범국민추모대회를 다니면서 (2)

냉이로그 2009. 2. 15. 23:28

용산참사범국민추모대회를 다니면서 (2)

-거꾸로 가는 시대, 얼어붙는 평화

공무집행의 무법천지

어제 4차 범대회를 다녀오면서는 이러한 그간의 고민들이 한낱 부질없는 게 아닌가 싶은 깊은 무력감에 들게 했다. 집회신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예정된 곳은 원천 봉쇄, 옮겨간 곳도 겨우 광장의 집회만 허용될 뿐 참가자들이 모여 움직이는 발길은 모두 막아 버렸다. 집회 참가자 아닌 시민들이라 해도 통행을 막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그렇게 인도까지 꽉 틀어막는 상황은 십수 년을 길바닥을 뛰어다녀왔지만 아주 처음 맞는 거였다. 비택이 준비되고 저마다 지하철과 버스로 비밀리에 움직이며 압구정에서, 서대문에서, 청량리, 동대문, 신촌, 대학로에서 틈을 타 동을 뜬다. 하지만 두어 곳을 빼면 그곳들조차 이내 경찰들에게 가로막히고 만다. 인도에서조차 촛불을 들기가 어렵고, 구호를 담은 종이 쪽 하나 들기가 어렵다. 색소 분사기를 등에 맨 이들이 눈을 휘번득거린다. 또 다시 다음 택을 받아 움직이려 하면 여지없이 그 골목에는 경찰들이 먼저 닿아 있는 일이 부지기수다. 또는 집회 참가자들이 가려는 길 앞에는 벌써 경찰 병력이 줄을 지어 뛰고 있다.연락을 나누는 건 비밀 작전인 듯 하지만 실상은 경찰의호위라도 받으며 길을 걷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도무지틈을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심지어는 어젯밤의 마지막 택으로 받은 종로 2가, 이미 열한 시가 넘은 상황이었는데도 그곳 네 거리 귀퉁이들에는 경찰들이 빼곡이 들어찼다. 이제는 의경, 전경이 아니라 한 팔에 동그란 방패를 끼고 있는 무술경관, 경찰기동대들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신호가 바뀌는 건널목에서나마 구호를 외치자며 파란 불을 기다렸다. 아직 상황을 살펴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열다섯 정도의 집회 참가자와 시민이 횡단보도를 건너며 살인정권, 명박퇴진의 구호 몇 마디를 외쳤다. 뒤에서 악 소리가 나더니 경찰기동대원들이 넘어뜨린 시민 하나가 바닥에 나동그라져 군홧발에 짓밟히고 있었다. 왜 때리냐고, 때리지 말라고 달려드는 우리에게도 기동대원들은 폭력배와 같은 모습으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일삼았다. 그리고는 넘어뜨려놓고 밟아대던 그이를 일으키지도 않은 채 그대로 끌고 가.

끽소리도 하지 마라!

지휘관을 둘러싸고 물었다. 집회 참가자 뿐 아니라 길을 오가는 시민들도 놀란 마음 금치 못하며 함께 항의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사람을 어떻게 그리 때릴 수 있느냐고,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저 사람을 왜 잡아가는 거냐고…. 불법집회를 했기 때문이라 한다. 불법집회라뇨, 우리는 도로를 점거한 것도 아니고, 단지 파란불의 보행신호를 받아 길을 건넜을 뿐인데 어떤 법을 어겼단 말인가요. 답은 없다. 너희는 불법집회를 했고, 우리는 정당한 공무집행 중이라는 말 뿐이다. 요즘 들어 지긋지긋하게 듣는 말, 용산 작전을 벌인 것도 정당한 공무집행이었고, 사람이 불에 타 죽게 했어도 그것은 정당한 집행이 나은 실수일 뿐이다. 자리를 옮겨 동을 뜨면서 동대문 밀리오레라는 복잡한 옷가게 건물 앞에서도 그 말 한 마디면 아무 시민이나 함부로 감금을 해도 좋았다. 길을 열어달라던, 그저 쇼핑을 하러 나온 것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경찰 지휘관은 막말을 하며 윽박을 질러댄다. "집에 가야 하니까 나가게 해 달라구요!" "입 다물어!" "아니, 왜 못가게 하는 거죠?" "공무집행 중인 거 안 보여? 야, 이 여자 사진 찍어 놔!" 그네들은 아무렇게라도 시민을 가두어 둘 수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그네들에게 항의라도 할라 치면 공무집행 방해라며 위협에 협박을 가했다. 촛불을 든 이들은 무조건 불법집회, 경찰에게 항의하는 시민은 무조건 공무집행 방해. 아주 끽소리도 하지 말라는 거였다. 제 정신을 잃은 그들은무서울 것이 없었다. 어떻게든 꽉 틀어막는 것만이 그네들이 부여받은 유일한 임무인 듯 시민을 적으로 대하고있었다.지난 해 광우병 정국에서 시작한 촛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사람을불사르게 해 죽인 이 일로촛불시즌2로이어질까 싶어전전긍긍, 아예 그 씨앗조차 밟아버리겠다는 태세였다. 아직더 번지기 전에, 아직들불로 일어서고 강물되어 흐르기 전에싹을 밟아버리겠다는.철거깡패를 동원하지 않았다는 그들의 거짓말은 뽀록이 나버렸고, 온갖 여론조사에 일선 경찰관들을 동원했다는 것도 뽀록이 나버렸다. 연쇄살인범 사건 보도로 여론을 돌리라는 언론지침마저 뽀록나고 말았다.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와 그 범죄를 덮기 위한 술책들이 계속해 뽀록나게 되면서 그네들이 기댈 것은 단 하나 짓밟는 것 밖에는 남지 않았다 여겼을 것이다. 최소한 시민과 여론의 눈을 의식해 스스로를 단속하려는 기색은 눈꼽만큼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막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겁에 질린 눈을 한 앳된 전의경을 방패 삼아 그 뒤에 숨은 지휘관과 기동대원들은 무소불위, 안하무인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것이다. 법적 근거, 그런 것은 없다. 작전을 펴고 있는 지휘관의 소속과 이름을 물을 새도,체증과 연행의 이유 따위를 묻는다는 것도 그 상황에서는 코미디가 되고 만다.조금이라도 항의를 할라치면 잡아끌어 에워싸고 둘러서서 짓밟아 끌고 가버리는 상황 속에서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명시된 그들의 의무를 논하는 일이란 얼마나 같잖겠는가. 끽소리도 하지 마, 우리는 법이고, 우리에게 까부는 것들은 모두가 불법이니.

촛불의 상상력

누구라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1차에서 4차로 이어지도록 집회 참가자들은 이른바 꾼들 이상으로 넒혀지지 못하고 있고, 그야말로 '촛불'들이 곳곳에서 붙어주지 않는다면 이 힘도 곧 소진해버리고 말지 모른다는 안타까움. 여러가지 상황이 너무 어렵다.바깥으로는 저들의 진압 작전이 놀라울 정도로막나오고 있다는 것이고, 안으로는 우리의 저항이 더 많은 시민들의 반란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지난 촛불 때처럼 촛불의 광장에서는 저항성에 놀이성이 결합되는 저항의 나들이로 이어질 수 있던 반면 이번 일에서는 그러한 나들이의 흥이나 발랄함 같은 것이 함께 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집회는 이름 그대로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추모집회인 것이고, 단상의 맨 앞줄에는 슬픔을 안은 유가족들이 상복을 입고 앉아 있다. 집회에 쓰이는 유인물이나 펼침막, 손종이 같은 것들도 모두 검은 만장을 연상시키는 것들일 수밖에 없다. 그런 속에서 흥겨움이나 발랄함, 난장의 잔치를떠올리는 것은 어색하기만 한 일.지나던 시민들이 멈추어 구경을 하기에도, 구경을 하다가 함께 흥에 젖어 양초를 얻어 참여하기에도,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해방의 축제, 저항의 나들이를 하기에도 어려운 조건이 있다. 게다가 광장이라는 건 한 뼘도 열어내기가 쉽지 않아, 경찰의 차벽이 둘러쳐 있고, 조금만 거센 목소리를 내기만 해도 바로 잡아가려는 그들 앞에서, 비밀 택을 써가며 이리 옮겨가고, 저리 숨어들어야만 하는 엄혹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니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그러나 촛불의 상상력이라는 것이 흥겨움이나 발랄함에만 있다는 것 또한 갇혀진 편견일지 모른다. 촛불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조직된 '꿘'들이나 '꾼'들로서는 하지 못할 자유로운 발상, 틀을 넘어서는몸짓,스멀스멀 동시다발빛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 그 힘이 있었을 것이다.아파트 베란다에 걸렸던 미국산쇠고기수입 반대의 펼침막처럼 가난한 우리 철거민 이웃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펼침막을 내걸 수도 있을 것이며,온갖 동아리, 동호회들부터 뜻을 모아 신문 광고를도배하는 물결로이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상주가 되어 삼베 리본을 옷깃에 달고다닐 수도있을 것이며, 승용차 안테나에 검은 리본을 펄럭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집회의 공간이 막힌다면거리 공연이나음악회, 연주회 따위로 틈새를 찾아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왜곡보도를 일삼는 조중동에 대한 불매와 철거작전 배후의 실체인 삼성물산, 포스코, 대림(용산 4지구재개발업자들, 사실상이들이 정부와 용역업체에철거를 재촉)들에 대한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이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또… 아, 나는 이렇게나 상상력이 모자라지만 재기넘치는 더 많은 이들의 반짝임들이 더해진다면 이 정국이라 하여 촛불의 틈새, 끝내는 벽을 허물어뜨릴 그 물줄기들은 차고 넘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분명한 구호는 필요하나 이제는 구호를 넘어서는 일상의 행동과 촛불의 틈새를 찾아야만 해.

여전히 희망인 것

이미 쓰고 지나간 것처럼 어제 4차 대회는 집회를 마치고 일정한 행진이란 없었다. 이미 그러한 상황은 3차 대회 때부터 그러한 것. 집회를 주관한 범대위에서는 경찰의 차벽에 가로막혀 행진은 할 수 없으니 더 많은 시민을 만나기 위해 행진이 아닌 시민 선전전을 하자는 것으로 집회를 마무리했고, 참가자들은 어디로도 나갈 수가 없어 우왕좌왕하다가 저마다 선이 닿는 곳들을 통해 다음 집결지로 이동, 이동을 해가며 그야말로 게릴라 식으로 산발적인 도로 행진을 했다. 어제 또한 마찬가지.집회를 마친 뒤 저마다 크고작은단체와 촛불모임들은 선을 댄 곳의 연락을 받아 움직이고 있었는데, 아직 그 상황을 잘 몰랐던 나는 함께 간 모임 분들과 함께유가족과 전철연 분들의 경찰과의 대치에 섞여 있었다.차벽 앞의 외침은 삼십 분 가량 있었지만 돌아보니 다른 참가자들은 이미집회장소인 서울역을 빠져나간 터. 누구도떠들어 말을 하지는 않지만 분명다음 집결지가 있을 텐데, 이러할 시에는누구에게도 물어보기 어려운 상황. 취재기자라면 정보가 있겠다 싶어 물으니 그도모르겠다는 것. 다행히 집회에서 만난 활동가 친구들에게연락하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서대문으로,혜대학로로, 압구정으로, 동대문으로, 신촌으로, 청량리로 일단 흩어져공간을 파고들다가이후 또다른 집결지에서 다 같이 모일 거라는 것.그래서 함께 간 분들과 함께 우리는 동대문으로 옮겨갔고, 그 사이에도 을지로 방향 행진이네, 경찰에 막혀 다시 동대문운동장으로 돌아가고있네, 또다시 경찰이 투입되어 밀레오레 앞에 붙잡혀 있네… 따위 문자를 받으며 겨우 일단의 대오와 합류할 수 있었다. 이어서 다시 종로2가 택이 떨어져 그리로 옮겼고,그곳 택은 정보가 샜다며 무산되고 말았다. 가장 많은 참가자들이움직이고 있다던 신촌 행렬이 경찰에게 막혔다는 것.다시떨어진 것은 명동 밀레오레 앞.그리크지 않은 곳이긴 했지만 그곳의 경찰 벽 앞에서집회 공간을 열었다. 경찰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 맞서서 밀어대는 상황.어찌나 서로 밀어대었는지 갈빗대가 조금 뻐근하다. 그리 밀어대면서도눈앞의 방패 경찰과 이야기를 나눠."그쪽이라고 어쩔 수 있겠냐만은밀어서미안. 우리 욕하지는 말자.너는 고참 되면 저 뒤에서 손찌검하는 애들처럼 굴지는 말아라."한 시간 남짓의 공방을 마치고 명동성당으로 옮겨 정리집회, 그러고 나서야 오뎅집에 들어가 소주 두어 병을 시키고 있는데 다시 택이 떨어진 것. 종로 2가 탑골 앞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본 것. 신호등을 건너는 시민마저도 우악스레 잡아 넘어뜨려 짓밟아 끌고 가는. 신호등을 건너는 이들 가운데 바로 나와 오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일수도있고, 곁에 있는 친구일 수도 있는 한 시민이. 나중에 들어 알았지만 이 '떴다택' 들은 범대위의 지침이 아닌 자발적인 촛불들의 연락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거였다. 솔직히 나는 이 비택의 움직임을 보며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간 진압 방식에 맞선 이십 년 전 전술이다 싶어 적지 않은 답답함을 느끼고도 있었는데, 이것이 어느 지도부에 의해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말에서 그나마 희망 같은 것을 느꼈다. 적어도 이 움직임들의 바탕이 촛불의 자발성이라는 것.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이 자발성이 살아 있는 한 이 어둠을 뚫고 피어날 상상력 또한 꿈틀일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인간의 가슴

마지막 종로2가 택까지 마치고 더는 할 것이 없어 함께 한 이들과 잠시 둘러앉을 곳을 찾아가던 길, 모퉁이마다 막아선 기동병력을 보며 그 답답함을 어쩔 수 없었다. "야, OO아 모여서 신호등만 건너도 불법이면 말야, 일인시위는 몇 미터 간격으로 보장된 거냐?" "십 미터던가, 아니 이십 미터?" "그럼 오늘처럼 이천삼천이 모여서 이리저리 깨지고 다니지만 말고 이 사람들 다 같이 십 미터든 이십 미터든 그간격으로 피켓들고 서면 어때? 삼천 명만 되어도 여기부터 저 아래 남가좌동까지 쭉 뻗을 수 있지 않겠나? 그것도 불법이라 잡아갈까?" 이런 이야기나 떠들다 피맛골 골목 앞 기동대원들이 대열을 풀고 섰기에 그 앞으로 다가섰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을, 한 시민을 엎어놓고 뭇매를 놓아 끌고 가던 그이들의 동료. 사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그 제복의 사람만 보면 화가 치밀기도 하고 마음 한 편 겁이 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것 다 떠나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그냥 인간 대 인간, 이 비루한 시절을 살아가는 당신과 나로 말이다. 그 기동대원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의무복무 방패경찰이 아니라 나이 사십 가까이 되어 보이는 무장경관, 직업경찰이었다. "아저씨, 제가 무슨 아저씨에게 시비를 걸겠다거나 항의같은 걸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정말로 묻고 싶을 뿐이에요. 여기 계신 분들이야 정말 임무에 충실해 어쩔 수 없이 그러실 것 모르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인간적으로 아저씨는 너무하단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아요? 아저씨도 집에 돌아가면 빠듯하게 살아야 하는 서민이잖아요. 우리는 아저씨 동료 한 사람이 죽은 것도 마찬가지로 안타까워하고 있어요. 아저씨 친척 가운데에도 세입자로 어렵게 사는 사람이 한둘은 있을 거 아니에요. 결국은 우린 다 같은 피해자일 뿐인데, 우리끼리 이렇게 싸움을 붙여놓고 뒤에 앉아 배불릴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아저씨도 이 일을 한두 해 해온 게 아니실 텐데 아무리 공무집행이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요. 아니, 막말로 아저씨도 퇴근하고 나면 어느 대폿집에서 만나 이웃 동생이니 선후배니 하면서 우리가 같이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개잡듯 패고 밟을 수가 있는지…." 나보다 서너 살은 많아 뵈던 그이는 이미 몇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쪽도 친척들이 모이면 적어도 한두 집 이상은 셋방살이 어렵게 하지 않느냐는, 십 년 넘게 일해왔지만 적어도 이 정도로 시민을 때려잡으라는 명령은 아니었다는…. 정말 더 긴 얘기라도 나누고 싶었다. 대화가 끊긴 건 같이 집회에 참가했던 한 사람이 그 곁을 지나면서 냉소어린 말로 뭐냐고, 경찰 붙잡고 설교하고 있냐 하기에 맥이 끊겨버렸지만 경찰과 시위참가자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가슴으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경찰이라면 무조건 적대하고 야유, 조롱하려는 태도, 조금 전 너무나 울화 터지는 상황이 있은 뒤였기에 그 마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을 끊게 하던 이가 솔직히 야속했다. 적어도 그 경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생각을 곱씹는 얼굴이었는데, 대열 속에 있을 때의 그 맹수 같은 눈빛이 이미 아니었는데 야유조의 냉소는 그이의 낯빛을 아주 바꾸게 하고 말았으니. 하지만그렇게 만나 함께이야기나누던마포촛불연대친구들이 수요일마다 열고 있는 홍대 앞 걷고싶은 거리의 작은 문화제에서다음 주부터는 김남훈 경사를 포함 참사 희생자 여섯 분을 위한 영정과 분향소를 차리고 열어가겠다고 했다. 여러가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꾼들이 벌이는 초라한 거리 공연이겠지만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공감과 울림을 가질 수 있다면….뿐 아니라 더 많은 삶의 문제, 더 다양한 의제들로 촛불을사를 수 있도록 해직교사와 함께 놀며 이야기하는 자리로, 묻혀가고 있는 경부운하삽질이나 저 멀리팔레스타인의 이야기들까지환기해가며길바닥의촛불 난장을 열어가겠다며 말이다.

겨울에서 다시 봄으로

잠깐 봄인듯 싶게 골목의 바람마저 훈훈하더니 그 바람마저 다시 매운 칼바람이 되었다.아니나다를까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한다. 거꾸로 가는 이 얼음장 같은 시대는 날씨마저 얼어붙게 하려는가.조그만 꿈틀의 몸짓도 허용치 않을 것 같은 이 매서움에 평화도 함께 얼어붙는 것만 같다. 하지만 결코 자연의 흐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시절을 거꾸로 돌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당장은 도심 곳곳 경찰기동대를 풀어놓고 차벽을 쌓아 가둘 수 있을는지 몰라도 시멘트 갈라진 틈에서도 민들레가 잎을 밀어올리듯 가녀리게 흔들리는 촛불들이 이 어둠의 틈 사이로 가물거리는 빛을 내 올릴 것이다.정의구현사제단의시국미사 때 자주 듣던 말,아무리 짙은 어둠이더라도 어둠은 결코 빛을가릴 수없다는 그것.악과 맞서 싸우되 선으로서 싸우라는, 악에 악으로 맞서 싸워서는 그 자신도 악이 되고 만다는, 어둠이 끝내 덮어버릴 수 없는 그 빛이라는 것은 선의 내용이자 선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의 분노가 자연스런 인간의 마음인 것처럼, 우리의 싸움들이 서로의 가슴들에 울림이 되는 싸움이 될 때 비로소 그것이 촛불이 되고, 빛이 되어 어둠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둠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어둠마저도 밝음이 되게 끌어안가 가는 것. 적어도 우리에게는 지난 2008년 그러한 경험이 있다. 시민들이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촛불을 밝힐 수 있는 방식들이 그야말로 다양하게 모색되고, 꼭 당장의 광장이 아니더라도 삶의 자리에서, 꼭 구호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천만의 언어로 표현될 수있다면 그작은 씨앗들이 이 얼음장 같은 시절을 녹여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울림이 또다른 이의 가슴에 울림이 되어전해지는,꺾어 물리치는 싸움에 조급해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 가는것으로 곁의 이들의 마음에물이 고여 흐르게 한다면 이 어둠의 발악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날마다 청계광장에서는 추모집회가 이어지고 있고, 주말의 범국민추모대회들이 징검돌로 놓여 있다. 21일에 이어 28일에는 10만 국민추모대회라는 제목으로 잡혀 있지만 지금 이 형세로는 그 10만이라는 숫자는 선언에 가까운 의지 표현으로 보이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차피 정권의 거짓말들은 다 들통나다시피 했고, 정권을 향한 분노와 사안의 심각성은 10만이 아니라 천만이 넘게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물 위로 드러나지 못할 뿐, 세상에 대한 자신의 소통방식을 찾지 못한 것일지 모른다. 추모집회라는 엄숙함과 위협적인 강경진압의긴장감은 집회참가를 부담스럽게 하는 안팎의 조건이다. 그러하다면당위에 가까운 집회참가독려만으로가 아니라 저마다 자기 언어와 몸짓으로 틈새를 찾아 촛불을 밝힐 수있는 방식을 찾고, 그러한조건 위에서광장의 힘으로 모아나가야 할 것이다. 결국 사람의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은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에서 표현되는 저마다의 자기 언어,자기 표현들일 테니.얼음장 같은 녹여 봄이 되게 하는 촛불.

(모르겠다.머릿속으로 들고나는 여러가지 단상들, 그리고 마음으로엇갈리고 있는 것들을 내놓고스스로 마주해보기라도 해야겠다고시작해어떻게든붙잡아 힘겹게 쓰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 말들이 자꾸만 엉켜드는 것을 느껴. 나 역시 의지의 주관에 빠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내가써놓은 문장을 보며 정말 그러한가 하는 질문에 막히곤 했다. 하지만 아직은 여기까지, 내 고민과 혼란을 날 것 그대로 펼쳐보이는 것만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