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살, 그의 성찰
나의 몸살, 그의 성찰
사흘 째 지독한 몸살. 그나마 오늘은 몸을 꼼작거리기는 한다. 5차 범국민대회를 마치고 난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그리고 월요일 오전까지는 이불에서 한 뼘도 몸을 빼닐 수가 없어. 하루를 스물네 시간이라 하면 스물세 시간 반은 그렇게 젖은 몸을 비틀어 감고 있었다. 땀에 젖어드는 건 속옷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바닥에 깐 요 뿐 아니라 덮는 이불까지 물 먹은 솜이 되어버렸다. 아플 땐 정말 아무 생각 할 수가 없다. 어서 낫기만을, 아프지 않기만을. 온몸 구석구석 바늘 같은 것으로 찌르지 않는 곳이 없고, 살거죽과 뼛골 사이로 냉골 바람이 쉬지 않고 지나다니는데, 몸을 아무리 뜨겁게 하여도오한은 갈수록 더해졌다.
어제 별음자리표가 집엘 다녀가며 침을 놓아주었다. 지난 번 일을 하다 허리를 삐끗꽤 오래고생을 할 때 그이가 살려주더니 어제도 몸을 만져주었다. 나 뿐 아니라 한 달 째 기침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와날마다 함께 뜸을 뜨시는 외숙모님까지. 세 식구 모두 마루에 엎드리고 누워 삼십 대도 넘는침을 꽂았다. 고마워요, 별음.
오랜만에 별음자리표 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별음 아저씨와 함께 하는 자리는 이야기를 나눈다기보다 듣는다는 표현이 더 옳겠지만. 암튼 오랜만에 별음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별음 아저씨를 알기 전까지, 그이의 진정을 알아 그이의 말들에 귀가 열리기까지는 아저씨의 말들을 듣는 게 힘겨운 적도 있었다. 쏟아내다시피 하는 아저씨의 말들, 나로서는 제대로 소화를 해내지 못했고 귓등 바깥에서만 앵앵거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저씨와 함께 보낸 길바닥에서의 칠팔 년, 그 시간들 속에서 때로는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얘기들 속에서 그 중심을 볼 수 있게 되면서 그이의 다변은 단순히 필요치 않은 변죽의 과잉이 아니라 그야말로 할 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어찌보면 그는 다변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 말을 경제적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이의 말이 핵심을 넘어 산만해 보이는 것은, 그이는 하나의 핵심을 이야기하되 너무나 많은 핵심을 가지고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이를 알아지낸 칠팔 년의 시간이 그저 토론회나 술자리처럼 말의 잔치만 있는 곳에서만 이어져왔다면 나는 여전히 그이의 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귀를 갖지 못했을지 모른다. 길바닥에서 보내온 그이의 삶, 그 곁의 동행으로 비로소.
어제 들은 이야기는 주로 침뜸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단순 침뜸에 대한 강의가 아니었다. 삶을 바꾸어 나가는 운동에 대한, 침뜸을 통해 인간의 삶과 세상을 이해해가는 것에 대한, 생명 운동의 본질과 질서에 대한 나름 그이의 통찰이고 성찰이었다. 끊임없이 공부를 멈추지 않는 그이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이렇듯 새로운 질문을 얻게 되고 성찰을 배운다.
우리끼리야 '별음자리표가이제는침뜸 전도사로나섰다'면서 짐짓가벼이 말을 하기도 하지만침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그이가 실제로 병원에서 손 놓아 찾아온 이들의 목숨 여럿을구했다는건 가까이 아는 이들은 잘 알고 있다.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반신반의하더라도 그아픈 이 역시 아는 이였으니그것은믿음의영역을 넘어서는 일이었다.소문을 탄 이들이 집 앞으로 줄을 서 일주일 넘게 집에들어갈 수도 없어 피치못할 거짓말(불법 의료행위로 고발을당해 유치장에 있다는)을 흘려 사람들을 돌려보내야 했다는 에피소드까지. 어느 한 날은 사찰로 초대를 받아갔더니 보살들 백오십 여 분이 기다리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다 몸을 보아드리고 돌아와 몸살로 앓아눕게 되었다고, 돌아온 뒤 주머니를 보니 보살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 백오십만 원이 들어있기도 하다더라는……. 순간 아주 그 길로 나설까 하는 마음 지나지 않은 것 아니었지만 그렇게 살아, 살 수 있겠느냐며.
별음자리표 님은 지금도 언제나 손가방에는 침을 한 뭉치씩 가지고 다니며 아픈 이들의 몸을 살펴준다. 그리고 위급해 찾는 이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집으로 찾아오는 이들의 걸음이 이어진다. 눈앞의 아픈 사람을 어떻게지나칠 수 있겠냐며, 그리고 당장 다급한 사람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냐며. 하지만 별음자리표 아저씨가이 침뜸 공부를 통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침뜸으로 자기 몸을 보살필 수있도록 돕는일. 그이 자신도 구당 김남수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이지만,구당선생과 그 제자들은 아직 이 침뜸을 저 높은 곳에 두고 있는 것이안타깝다고. 그 높은 곳에 있는 침뜸을바닥으로 내려놓는 일, 그래서 별음자리표도놓는 침이니 나도 배울 수 있다고 느껴 시작하게 하는 일이라 한다. 그곳이 어디든, 지역마다, 마을마다, 조합마다, 공동체마다 한두 사람이라도 배워 놓을 수 있게 된다면 적어도 병원가는 일은 지금보다 반 이상은 줄어들 거라고, 반이 아니라 아주 줄어들 거라고……. 그래서 그이는 언제나 침을 놓을 때면 그 곁의 누군가에게자리를 일러주며 그 자리에서직접 침을 놓게끔 한다. 침 바늘로 사람몸을 찌른다는 공포만없다면 누구나할 수 있는 그 일을 근대 의료체제의 의료권력과의료산업이 다 막아놓은 것을 깨뜨리는 일이다. 그렇게 하여 그곳이 어디든, 아파트 경로당이나 마을 노인정이나 어느 정자나무 아래에서나 서로 침을 놓아주고 뜸을 떠주는문화가 가능케 하는 것이 지금 그이의 소망이다.
밥을 먹고 일어서면서 그런 말을 하기도 해. 자신은 이제 글이나 말로, 혹은 노래로 누군가를 바꾸거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같은 것은 갖지 않는다고. 결국 누구도 누구를 말이나 글로, 노래 따위로 바꾼다는 일은 가능치 않다는 것을 나이 사십 되어서야 이제 겨우 느끼게 된 것이라고. 그냥 이렇게 살아, 죽고났을 때 '아, 어떻게 살다 죽어갔구나' 하고 느껴 단 한 사람이라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그 뿐이겠노라고.그러면서 붙이는 말이 그래서 요즘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저런 사변 늘어놓는 일에서 멀어지게 되었다던가.
사실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아 블로그라는 걸 처음보게 된건 별음 아저씨 때문이었다. 그 전에는블로그라는 게 뭔지도 몰라, 그런 게 있는줄도 몰랐지만 별음 아저씨의 글과 노래를 좇아 즐겨찾기에 올려두고 하던 것이말하자면 블로깅의 시작인 셈.어쨌건 요즘은 아저씨의 블로그에 글이 잘 오르지 않고 있지만, 이러한 글을 볼 때면 늘 배우곤 한다. 본질에 닿는 통찰과 그 성찰, 질문들을…….
별음자리표 님의블로그에서 옮겨온 글
(어느 1월 신용산역 근처, 둘러싼 공권력과 둘러싸인 사람들을 건너다 보면서 마치 '이국'의 아우성처럼 들리는 그 구석을 돌아다나오다 그런 환영이 그려지기도 했다던가. 엄청 부자들이 산다는 강남의 어느 마천루에 폭탄을 안고 돌진하는 대한민국의 911이 보였다며…….)
수직의 벼랑… 바벨탑, 혹은 마천루: 학살자들
지나친 단정이라고도 싶지만, 그게 뭐든간에 곧게 만든다는 건 굽은 것들에 대한 폭력이다. 그게 뭐든간에 크게 만든다는 건 작은 것들에 대한 폭력이다. 높게 만든다는 건 낮은 것들에 대한…… 근대는 굽은 것들에 깃들어 사는, 저마다 등 굽은 곡절을 안고 살아가는 작은 목숨들, 곡절 많은 살림들을 내쫓고 (보다 정확하게는 학살하고) 세운 직선, 수직의 벼랑이다. 당신이나 나나 저 메트로폴리탄에 세워진 바벨탑 혹은 마천루들을 바라보며 가슴벅찬 희망을 느낄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이 을씨년스럽고 싸늘하며 살기등등한 풍경… 단지 경제위기라고만 하기엔, 특정한 정치분파(경제파시스트)의 폭력이라고만 하기엔… 너무 어둡고 메마르다. 무, 섭, 다,. 당신과 나의 분노와 절망, 눈물조차 이 무자비한 폭력의 구성물의 '일부'라면 너무 절망적인가.
높이 올라야, 오래 굶어야, … 많이 죽어야 반응하는 '시민사회적' 리액션은 언제나 늦다. 경제유일신의 주술... 집단최면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하는 건 얼마나 … 얼마나 …
진정 다른 삶은 살 수 없는 걸까?
거기가 구로 어디쯤이 아니더라도 거기가 울산 어디쯤이 아니더라도 거기가 용산 어디쯤이 아니더라도 거기가 가자지구 어디쯤이 아니더라도 거기가 평택 대추리 어디쯤이 아니더라도 거기가 새만금 갯벌 어디쯤이 아니더라도… 그저 내가 발딛고 걸어가는 여기 내가 근근이 살아가는 여기, 오늘 이 순간이 비정규직이고 철거민이고 이주노동이고 장애인이고 농어민이고 여성이고 어린이이며 약자이고 가난이고 전쟁의 희생자인… 노예이며 용병인……
그 자리에서 시작될 수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