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두막!
안녕, 오두막!
5월 31일이었다. 오두막 방으로 나드는 툇문 위에 해광 목수가 그린 엉겅퀴 그림과 그 아래 상량문이다 싶게 써 놓은 글을 보면 <박기범, 황시백, 김상기, 해광, 탁동철 등 2007년 6월 15일 헌집 고침>이라 되어 있으니 두 해에서는 꼭 보름이 빠지는 날이다.아침 일찍 포크레인 기사가 올 거라 하여 얼굴에 물도 묻히지 않고 모자를 눌러쓰고 오두막으로 내려갔다.
포크레인이 올라오기 전에해 두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았다. 가스레인지도 떼어놓질 않았고, 창고 방에 있는 버려야할지 챙겨야할지 구분이 안 되는 몇 가지 짐들도 아직 그대로였다. 우선 그것들부터 떼어다 하나하나 차에 실어. 대충 짐과 쓰레기를 다 거두고 난 뒤에는오두막을헌다 해도 그대로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살려내는 일이 남았다.오두막살이를 맞이하면서 먹통 엉아가 짜 걸어둔 정지간 문을 떼어냈고,단장을 해 흙을 새로 바르면서 해광 스님이 벽그림으로 그려넣은 엉겅퀴 그림은 그것 그대로 떼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자칫 하다가는 그대로 부서져버릴 것만 같아.중망치를 들고 조심조심 때리는데도 금이 쩍쩍 가려한다. 흙벽이라 그런가 하면서 최대한멀리 쳐 내어 오려내듯 흙벽을 떼어내려 하는데도 흙벽 안으로 외를 엮어었기 때문에 잘못하다가는 외가지를 타고 전체가 떨어질 것도 같아. 최대한 조심조심흙벽을 때리고 외가지를 끊어내듯 하면서벽그림이 있는 부분을벽 째로 잘라냈다. 그리고 바로 그 그림 아래 문설주 윗부분 써 넣은 글씨까지.못질이 되어 있으니망치로 적당히 때려서는 떼어낼 수가 없고, 그렇다고 세게 때려서는 벽그림도 다 손상이 될 것 같아.못이 찌른 곳만 남기고 톱으로 조심조심 썰어낸 뒤 망치로 치고서야 겨우 그것들 그대로 떼어낼 수 있었다. 흙먼지를 얼마나 먹었는지 몰라.
엉아들 손길이 직접 가 있던 그것들 말고도 오두막 방과 부엌으로 난 문들도 경첩을 떼면서 하나하나 떼어냈다. 예전에 집을 허물면 고물상이 와서 온갖 것들을 다 챙겨가곤 하던데, 방과 부엌, 창고방의 형광등도 살면서 한 번 씩은 다 새로 갈았으니 다들 쓸만한 것들인데 하는 생각에 형광등의 전구와 갓까지 하나하나 다 떼어냈다. 해광 스님이 부엌에 새겨넣은 글씨 '나는 말도 잘 할 줄 모르는데 어머님 나라 말씀은 참곱기도 하네'는 어찌 살려낼 도리가 없다. 아마 스님은 어느 싯귀가 떠올라 새겨 넣었겠지만 나는 그 글귀를 볼 때마다 왠지 말 잘 못하는 내 마음이기라도 한 양 가슴 짠하게 읽곤 했는데 이제 그 글귀는 오두막과 함께 흙에 묻히게 할 밖에는 없다. 어느 새 포크레인은 모임 집 앞으로 올라왔고, 우리가 오두막 헐기 전 준비에 아직 더 손을 보는 동안 길을 닦으며 기다리기에 포크레인 일이 쉽도록 집안에 얼기설기 가로지른 전선들도 미리 끊어 걷어내려 했다. 그래 함석 지붕 밑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전선들을 끊는데 앗뜨! 아파라. 가슴까지 찌릿한 것이 오른손 검지 손가락에서 최초 통증이 있었는데 무엇인가 하고 보니 내가 끊던 전선 옆으로 잠자리만한 말벌이 앵앵거리며 벌집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얼얼하던지, 그 쏘인 자리는 이틀 째 되던날 아주 터질 것처럼 징그럽게 팅팅 부어 올랐고, 사흘 째가 되는 지금까지도 붓기는 빠지지 않고 있다. 아마 벌은 화가 난 모양이었다. 헐지 말라고, 왜 허무느냐고, 제 집이 있던 그 오두막이 헐리는 것이 싫다고 온 힘껏 침을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래, 벌만 그런 것이 아니었지. 막상 포크레인이 들어와 오두막 지붕의 함석부터 뜯으며 헐어내리는데 지붕에서 뱀 한 마리가 떨어져 흙먼지 투성이 방에서 몸부림을 쳤다. 그 집이 헐려 살 곳을 떠나야 하는 건 나 뿐이 아니었구나. 부엌 상자마다 아파트를 이루고 살던 쥐들도,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살던 벌들도, 그리고 그 집을 지켜 함께 살던 뱀도 다 제 삶의 자리를 잃는 거였다. 어디 그 뿐이었겠나, 또, 또, 또…… 더 많은 목숨들 그 오두막에 기대어 함께 살고 있어왔겠지.
포크레인이 들어왔다. 지붕을 덮고 있는 함석부터 내리치고 뜯어내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을 수가 없다. 비가 내리던 밤이면 투당탕탕 함석 때리는 빗방울 소리 그리도 예쁘더니 우악스레 내리치는 포크레인 주먹에는 아프다, 아프다 비명을 지르며 우그러진다. 곁에서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굳이 그 곁을 지키고 있고 싶지가 않아 등을 돌려 밭으로 나와 고춧대를 박았다. 땅 위에 대를 세우고 망치로 때려 박는데 나도 모르게 눈은 자꾸만 포크레인 팔뚝질에 흙먼지 피어올리며 허물어가는 오두막을 보고 있어. 그렇게 망치질을 하다가 얼마나 손등을 내려쳤는지 모른다. 내려치는 팔뚝에는 또 왜 그리 힘이 들어가 있는지, 그 망치질에 맞은 맞은 편 손등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피멍이 깨지고 팅팅 부어 올랐다. 그래 한 번 때리고 나면 손목을 잡고 아픈 것 꾸욱 참고서는 다시 아픈 줄도 모르고 고춧대 박기를 하다가 또 다시 오두막으로 한 눈을 팔아 다시 내려치기를 여러 번. 흙과 나무로만 지어놓은 조그만 오두막은 피를 쏟듯 흙먼지를 피어올렸다. 방이 헐리고, 부엌이 헐려, 그 다음에는 창고 자리가 헐려. 아궁이가 없어지고, 구들장이 들려나왔다. 그동안 잘 지냈어. 네 안에서 술도 많이 마셨구나, 그 앞에 나와 앉아 별도 많이 보았구나, 그리고 많이도 기다렸지. 네도 기억할까, 지난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 방에서 백팔 배를 하던, 가을 찬바람이 분다고 아궁이에 불을 잔뜩 넣었다가 발바닥이 뜨거워 방 안에서 까치발을 하고 다니던……. 솥에 물이 설설 끓으면 그 물로 목욕을 했고, 상 차려 방으로 들이기가 귀찮다고 부엌에 앉아 밥을 먹던.
포크레인이 오두막을 허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삼천 주 심은 고추밭에 고춧대를 다 박을 때 쯤 오두막은 벌써 굴뚝만 남긴 채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납작하게 흙이 되었구나, 가루가 되어 지구가 되었구나, 별이 되었구나. 지못미라는 말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쓰는 것 많이 들어보았는데 처음으로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지못미, 오두막! 안녕, 오두막. 언젠가 머지않아 내가 살 집을 짓게 되면 너를 꼭 닮은 조그마한 집을 지을게. 어쩌면 이제는 크게 짓는 것보다 네처럼 작게 짓는 일이 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래도 너를 닮았다 싶은 집, 네 안에서 살면서 배운 마음으로 짓는 집, 그런 집을 지을게. 아마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네 안에서 살 때보다 더 좁고 가난한 집에서 살 일은 없을지 모르지만 언제나 잊지 않을게. 그 가난과 그 눈물겨운 날들을.
해광 스님이 그린 툇문 위 엉겅퀴 벽그림.
박기범, 황시백, 김상기, 해광, 탁동철 등 2007. 6. 15. 헌집고침.
부엌 댓돌에 새겨놓은 "나는 말도 잘 할 줄 모르는데 어머님 나라 말씀은 참 곱기도 하네."
솥단지 세 개를 걸어두었던 부뚜막.
처음 오두막에 들어가 살 때는 불 때는 것도 잘 할 줄을 몰라 한 번 불을 살리려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리곤 하던 것이 이제는 십 분이면 족하게 된 것을…….
문 세 짝을 다 떼어내고 들여다 보는 방 안.
방 안에서 내다보는 마당.
부엌 뒷벽.
방 뒷벽.
굴뚝.
포크레인이 들어와 헐기 시작.
헌 자전거도 함께 안녕.
지붕에서 뱀이 떨어졌다.
너도 함께 이 집을 지키며 살고 있었구나.
아프다 한다.
순식간에 방을 다 헐었고,
먹고 씻던부엌을 헌다.
고춧대나 박아.
외로 엮은 흙벽은 떨어져서도 예쁘다. 외라는 것이 그리 단단하게 잡아주는 것인지를 몰랐어.
부엌도 다 헐고 어느새 창고방까지.
고춧대는 안 치고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등을 때린다.
창고방까지 다 허물어.
남은 것들.
방을 덮혀주던 구들돌들.
고춧대가 아니라 기억들을 때리고 있었던 것도 같아.
저기가 방이었고, 부엌이었다. 그리고 짐을 쌓아두던 곳…….
오두막이 있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