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용산, 삼성

냉이로그 2009. 12. 30. 16:36

용산 참사의 핵심에는 삼성이 있다.참사가 일어난 용산4구역의 개발은 삼성과 대림, 포스코 세 건설사가 나누어 맡고있었고,그 가운데 삼성은주간사를 맡으며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열여섯 개로 나뉜 용산의 재개발지구 가운데 4구역이라면 국제빌딩과 가까운 곳으로 규모가 꽤 큰 알짜배기 땅이라 할 수 있다.(그 조그만구역의사업비만 2조원이 되는데 이 가운데 시공사가 6천억원을 가져갈수 있는.)이 지역의 개발계획은 이미 2002년부터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을 위한 용역을 시작했고, 2003년에는 삼성물산 등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입찰보증금 송금 따위의 활동에 들어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삼성은 지역의 지주와 건물주들이 구성한 재개발조합에 운영비와 이주비 따위를 빌려주면서 깊이 개입, 뒤를 봐주고 있었다. 시공사로서는 어서 개발에 들어가야 했다. 이미 보상금을 받아 나간 지주와 건축주는 물론이고, 버티고 있던 세입자들도 어떻게든 쫓아내 그 땅을 새로 갈아엎어야 했다. 시간이 곧 돈이 되고 땅이 돈이 되는, 그것도 서울의 알짜배기 한복판에서 마냥 손을 놓고 있기에는 자신들의 이윤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테니. 2007년 10월 개발조합과 철거업체는 2008년 6월 30일까지 철거를 마치겠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한다. 만약 그 기한을 넘기게 되면 하루에 510만원씩 철거업체에서 배상을 하기로 못박아두는 것도 빼놓지 않고. 그랬으니 철거시한에 몰린 철거업체로서는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강제철거를 밀어부치게끔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용산4구역의 철거를 맡은 업체는 이미 그동안 삼성이 손을 대온 재개발지구들(종암, 석관, 길음, 아현, 마포)을 도맡다시피 해온 실질적인 삼성의 손발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시공사는 세입자를 포함한 거주자의 이주나 철거를 최초 이주금지급일에서 8개월 내로 시공사의 책임 아래 끝내는 것으로 계약을 맺었고, 철거업체의 공사감독관 자리에서 철거 전반에 대한 관리 위임을 받아 철거 진행을 보고받기로 되어 있었다. 철거는 2008년 6월에 끝내야 했고, 시공은 2009년 2월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철거가 늦어지면서 51억에 맺은 철거비용을 다 토해내야 할 처지에 몰린 철거업체는 2월로 예정된 착공이전에 끝내기 위해 용역깡패를 동원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제철거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그해 1월 20일, 공사 착공을 열흘 앞둔 날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하면서 용산4구역 남일당 건물 옥상에는 불길이 치솟고 만다.다섯 명의 철거민과 경찰 한 사람의 죽음. 자본의 행정집행자로 전락한 국가권력은 정확하게도 그들의 부름에 달려나가준 것이다. 자본의 나라, 삼성공화국에서. (지긋지긋하지만 이역겨운 이야기들을기억해두려 기사들을 뒤적이고, 더듬거리며 적어보았다.)

어제는삼성의 우두머리가 사면에 복권까지 되었다는 기사가 전해졌다.그리고 오늘은 용산참사에 대한 장례와 보상금문제가 합의되었다며 '극적타결'이라는보도가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