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히
이번만큼은 평화니 비폭력이니 하는 드립 따위다 버려도 좋다는 생각. 지금까지는 관념으로라도 그러는 척, 그래야 한다는 척 하고는 있었지만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아미타불아멘. 그 날 하루만큼은 테러범이 된다 해도 좋아. 파이프를 들라면 들어도 좋아. 꽃병을 들고 호각 신호를 기다리라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어.어떻게 유유히 너를 보낼 수가 있겠니? 아마도 그곳에서는 성조기 태극기 펄럭이며 환호하겠지. 그러면 너는손끝을 입술에찍어 키스를 날리며 답례를 할까?피쓰몹같은 거 말고 좀 더 쎈 거 없나, 그렇게착하고 경건한평화시위 같은 거말고 좀 더 강력한 거. 그 놈에게 똑똑히 말해줘야 해. 니 눈에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다 만만한 홍어좆으로 보이는지 모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고. 평화기도회랍시고 너를 모셔다 환호해대는 미개한 종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아, 그 더러운 낯짝에 신발짝이라도 던져줄 수 있다면.수백만의 죽음과 전지구의 아우성, 놈은 가식으로라도 한 번 고개 숙이지 않았다.어떻게 그가 버젓이 이 땅을 밟을 수 있고, 그 엄청난 환호 속에서 유유히 머물다 가는걸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그것도 평화라는 이름으로 개드립치는 꼴을 보면서.제 집 마당으로강도가 들어오면 묶여 있는개라도 컹컹 짖을 일. 그저 어 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어 하고 가는걸 보고만다 생각하면그 억울하고 원통함, 쪽팔림은 평생의 한이 될 것만 같아. 그리고 그곳에서 죽어간 친구들, 삶이 망가지고 꿈조차 모두 빼앗긴 이들을 생각하면, 도무지 이번만큼은 몰라라 할 수가 없어. 아무리그 알량한 시험이라는 거 칠 때까지는 아무 것에도 눈돌리지 않고 지내겠다 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 아, 김선일 씨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밤도 꼭 여섯 해 전 이맘 때였구나. 정확하게는 엊그제 밤.어쨌든 화요일에는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부시 조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