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시작하여 11월 12일까지 계획한 을들의 국민투표가 11월 25일로 투표마감을 연장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불이 붙고 있는가봐. 어제 기사를 보니 투표함만 전국으로 2100개 이상설치되었고, 뒤늦게 더 많은 생활공간으로 설치되고 있다던가.
난장이공 카페에서는 지난 주 토요일에 이미 받은 투표용지가 다 나가. 그래서 오늘 아침 투표함을 봉하고, 선거인명부와 투표소 기자재들을 상자에 담아 택배로 보내.
조용한 마을의 조그만 카페 한 가운데에 투표소를 설치해 놓았으니, 가끔 들러주곤 하는 마을 분들은 아주 낯설어하기도 했어. 그러나 이 투표소가 있었기에,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통 나누지 않곤 하던 세상의 일들에 대해 얘기하는 기회가 되었던 거. 나이든 마을 아저씨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도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가 테이블 위로 올랐으며,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거에 대한 얘기며, 아직 제자리 걸음이기만 한 세월호, 그리고 이 섬이 직면하고 있는 강정과 이 섬의 뼛속 깊은 아픔인 사삼까지.
얼마나 불편한 이야기들인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서로 생각이 달라 불편한 논쟁이 되어서가 아니라, 더 많은 경우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들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알지만 외면하고 싶은, 알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알지만 내 삶을 바꿀 수는 없는, 그런 불편함이랄까.
어쩌면 세상이 바뀌어갈 수 있는 건 바로 그 '불편한 이야기'들이 '이야기되는' 것부터 시작인지 모르겠다. 불편하니 덮어놓는, 외면 아닌 외면으로 피해버리는, 그 이야기들을 사람들 사이로 불러내는 것.
기꺼이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
중문 쪽에 살고있는데 카페를 구경하러 찾아왔던 분이다. 투표 전에 유인물을 드렸더니, 이런 유인물은 한 장이라도 아껴야 해, 라며 깨끗하게 다 읽고는 그대로 다시 놓아두시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출퇴근 길에 카페 앞을 지나면서 국민투표 포스터를 보곤 했다면서, 출근하지 않는 날 일부러 찾아왔다는 아가씨들.
마을에서 펜션을 하면서 마을 일도 돌보고 계신 이웃 아저씨. 이 날도 마을에 행사가 있어서 카페에 가져갈 게 있어 들렀다가, 내가 물건을 찾는 사이 어느 새 벌써 투표인명부를 쓰고, 투표용지에 도장까지 찍었네.
카페에 술을 공급해주는 사장님도 기꺼이.
지인에게 소개를 받고 카페를 찾아와 혼자 커피를 들고 가시던.
달마다 한 번씩 들러가는 외식업중앙회 직원 분도,
지난 해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던 보수기술자 후배도,
서울 공연을 다녀오면서 아기 운동화를 사들고 감자야, 축하해~! 하시던 수니 이모야도,
제주에 귀촌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아이쿱 제빵 매니저와 목수 부부도,
친구와 함께 들러간 민구 씨도,
한길이 형아가 투표소로 먼저 달려가 이름을 적어 ^ ^
지난 번 감자 돌을 챙겨주러 강화에서 내려온 기차길옆 작은학교의 한길이네 식구가 가족여행으로 제주에 내려왔다가 다시 또 감자를 만나러 들러.
이 즈음 우도에 들어가 게스트하우스 데크 공사를 하고 나오던 친구 말랴도,
미생의 고과장님, 선우네 식구도,
이웃에 사는 제이비에스 피디님도,
육지에서 내려오셨다 저녁 식사를 하고 가시던 손님도,
급한 걸음으로 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하고 나가던 분들도 걸음을 돌리더니 투표소 안으로.
서귀포 뮤직페스티벌에 공연을 하고 카페에 다녀간 뮤지션 이아립 님도,
시와 이모야도,
아솔 님도,
카드 결제기 교체를 하러 다녀가시던 기사님도,
마을에 이사와서 살 집을 짓느라 창원에서 내려와 머물고 있던 부부도,
소길댁 집이 궁금해서 (그러나 가르쳐 드릴 수는 없어요 ㅠㅠ)마을을 들러보다 들러가던 분들도,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는 길이라며 카페에 들러가던 제주 동쪽에 사시던 분도,
제라진의 또치 언니와 나명도,
생태학교를 운영하며 이웃에 살고 있는 친구 늘보.
그리고 난장이공 카페의 마지막 투표 용지는 이 여학생이.
아, 그런데 일산에서 여행을 왔다는 가족들이 열넷이나 한꺼번에 들어와 하나둘 투표소 앞으로 줄을 서는데, 분홍색 옷을 입은 여학생이 마지막 투표용지에 투표를 했으니, 그 다음 분부터는 선거인명부에만 이름만 올리고 투표는 할 수가 없었어 ㅠㅠ
갑과 을, 본디 관계를 표현하는 말인 것을, 어쩌다가 계급을 표현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