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나쁜 새끼

냉이로그 2011. 2. 5. 10:42

나쁜 새끼

아침 댓바람부터 알딸딸. 난지도, 이 나쁜 새끼.이 앞까지지나는데 잠깐 내려 같이 한 잔이라도 하고 가면 좋을 것을. 녀석은 형, 잠깐 역 승강장에 나와! 보라더니 고향집 엄마가챙겨준 꾸러미꾸러미 반찬 보따리만 휙 던져주고 열차에 다시 몸을 실었다. 동해에서 설을 쇠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이번엔 어쩐 일인지 버스가 아니라 기차로 귀경길에 올랐다. 묵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그 중간 쯤 잠깐섰다 가는영월역.그럴 거면 됐다고, 싫다고, 너 내릴 거 아니면 그거 받으러 안 나간다고,뻗대기도 했지만고 마음 갸륵하고도 고마워 기차가 들어올 시간 플랫폼에 나가 있었다. 암만 일이 바빠도 그렇지,에이 그냥,머리채라도 확 잡아 끌어내릴 걸,그랬어야 했나보다.

집에 돌아와 녀석 엄마가 봉다리봉다리 싸준 차례 음식을 풀어 아침상을 차렸다. 전이 한무데기에큼지막한가자미 한 토막,먹기 좋으라고 찢어 발라놓은 가오리살이 따로 있고,잡채가 한 봉다리,까자미 식혜 한 주먹에 미역 나물, 시금치 나물….명절을 또다시 혼자 보내면서 겉으로는 어른들께세배드리지 못하는 게젤로마음에 걸린다 하였으나, 정작 서운한 건 차례상에올린 음식들로 술 한 잔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울 따름이었다.그걸 이렇게 풀었네.녀석이 기차역에서 떨궈준 보따리를 받아다 상을 차려놓곤.나쁜 새끼, 이러면서 한 잔. 이쁜 새끼 이러면서 또 한 잔. 나쁜 새끼, 이쁜 새끼, 나쁜 새끼, 이쁜 새끼, 이러면서 또 한 잔, 또 한 잔, 또 한잔, 또 한 잔. 아, 취한다. 나쁜이쁜새끼, 나이쁜새끼… 요 이쁜 새끼. 그래,올해도 고만고만하게 살아내보자. 갑자기 컨셉 바꾸고 그러면 어디에선가 탈 나고 그런다. 그냥이렇게끈적하게, 찌질하게.

잘해보자, 씨발

그래도지난 해까지는 이런 명절이고 무슨 날이고 하면 단체로 끼어보내는 문자라도 심심찮게 들어오곤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뜸하다. 워낙에 내가 무슨 날이라고챙겨가며 인사를 전하는 싸가지를 갖추지도 못했거니와 뜨문뜨문 들어오는 그것들에도 꿀꺽 삼키기만 해온 터라, 이젠 뭐 여기저기에서 다 잘렸다 해도 할 말이야 없다. 사실 뭐, 일 년 가까이 전화기 죽여놓고 지내다가 무슨 날이라고 문자 띡, 이라는 게 무슨 말을 써야할지 한 번 해 보려 해도 여간 어색하기만 한 일. 아무튼 싸가지가 싸가지인지라 오히려 오는 문자 부담스러워하기나 했는데 올 핸 그마저도 뜸하니 적잖이 허전한 마음도 없지가 않더라. 하다못해 보험회사, 대출금융 정팀장의 스팸메일조차 설 명절엔 들어오지 않는단 말이지.

그러다 설날 밤, 문자 한 통이 들어와 있어. -그게 뭣이든 올해 잘해보자 씨발 - 한참을 들여다 보았네. 이 역시폰에 뜨는 주소록 번호들에 단체로 보낸 거였을지는 모르지만, 복 많이 받으세요,복 많이 지으세요, 복 많이 나눕시다, 식의 상투스런 말들하고는 완전 다른 느낌.탁이 형이라고 인사치레 이런 거에 뭐 익숙하기야 하겠나.들어온때를 보니 이미 거나하게 한 잔 걸쳤을 시각. 그러고보니 지난 해엔얼굴 한 번 못 보고 지났구나.어쩌다라야 이쪽이건 저쪽이건 술에 떡이되면 전화를 걸어 야이 씨발, 왜이씨발했던 게다였을 거. 스스로 초라하다 느끼는 이에게는, 세심하고 자상하다 하는말들이, 때론 그 얼마나 구질하고 참담한 말이 되기도 하는지. 앞뒤 딱 잘라 암말 없이 - 그게 뭣이든 올해 잘해보자 씨발. - 이 얼마나 깊은 신뢰의 말, 애정을 삭은 말인가. 용기백배가 된다.그래 잘해보자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