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이었다. 개업식을 해라, 떡이라도 해서 돌려라, 사람들 초대해 파티를 열어라, 등등 이런저런 얘기가 많았지만, 솔직히 그 무엇도 자신이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그냥 조용히 첫날을 시작했다. 그랬는데, 이게 왠일. 기존의 까페지기에게 배울 건 배우고, 인계받을 건 인계받고 하면서 함께 보낸 일주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 어, 어…… 이거 왜 이러지? 그전부터 난장이공을 자주 다니던 익이 형님도, 이렇게 사람 많은 건 처음이라며 놀란 얼굴로 축하를 전해주어. 막판에는 가게 문닫는 시간을 한 시간 반이나 넘겨서야 겨우 자리에서들 일어났다. 아마 수니 언니가 정리해주지 않았다면 몇 시까지 이어졌을지 몰라. 어쩌다보니 오늘 밤엔 까페 안에 있던 손님들이 점점 서로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나누더니, 테이블을 모두 하나로 모아. 냉장고에서 술은 계속 나가야 했고, 그러다보면 열두 시가 될지, 한 시가 될지를 모르겠지. 그때 수니언니가 자리를 정리해주었다. 지금 저 사람 어서 가게 마쳐야 한다고, 애기랑 애기엄마가 기다려서 더 오래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고, 이제 이걸로 막잔 들고 일어나자고.
막상 오늘이 오픈이란 걸 알고서 부러 찾아준 손님은 딱 한 팀, 익이형님과 수니언니였다. 익이형님과 수니언니는 감자네 오픈을 기억하고 일부러 밖에 나가 두루마리 휴지까지 한아름 사들고 가게를 찾아주었어. 무지도 고마웠고, 무지도 쑥스러웠고, 암튼 좋아서도 빨개져, 쑥스러워서도 빨개져, 암튼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버렸다.
아, 두루마리 휴지말고 수니언니와 익이형님의 선물이 하나 더 있었어. 그게 바로 이 씨디. 언니의 8집 리워크 앨범을 준비하면서 한 곡 한 곡 새로 녹음하고 있는 것 중, 지금까지 작업한 곡들을 담아준 거. 으아아, 좋아라!
안 그래도 소품인형들이 놓여있던 스피커쪽 선반에는 씨디들을 진열해놓았더랬는데, 그 아래층에다가 수니언니와 익이형님에게 싸인받은 씨디들을 펼쳐놓았더랬거든. 이야아, 여기에 싸인 씨디가 한 장 더 들어가게 되었네, 이히!
오픈 첫 날, 아침에 문을 열어 블랙보드 입간판을 내놓는데 이상하게도 참 마음이 떨리더라. 암튼 저 블랙보드에다가는 감자네 식구의 난장이공 시작을 선언해 ^ ^ 그 전까진 저 블랙보드엔 '효리 씨 집은 우리도 몰라요' 라고 써있었거든. 왜냐하면 소길리에 찾아드는 렌트카 대부분은 그 때문에 마을을 헤매이는 데다, 소길리에 까페라곤 여기 하나 뿐이니, 이효리 씨 집을 묻는 사람들에게 많이도 시달려야 하는 모양. 감자네만 해도 리사무소 바로 앞집이라 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질문을 받곤 했던지.
암튼 보드판에다 감자네 식구의 시작을 선언하면서, 감자 얼굴도 그려보았는데 하하, 이 그림 반응이 좋다. 감자랑 많이 닮았다나, 정말 감자같다며 말이지 ㅎㅎ
아버지가 까페로 난을 보내주셨어. 한 동안은 연예인들이 축하화환 보낼 때 그 리본에다가 얼마나 재치있게 말을 쓰나 하는 걸 경쟁이라도 하듯 그러던데, 내가 본 리본 중에서는 이게 젤 웃긴다. 난을 보내주신다기에 그만 두시라 말을 했다가도, 그렇게라도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인 건데 기분 좋게 받자, 한 건데. 난을 보내주신다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지었는데, 감자 할아버지가 라고 쓰시다니. 하하하, 재미있어라.
아직 책꽂이는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어. 내 바람은 난장이공 책장이며 선반들을 그림책이랑 어린이책들을 꽂거나 진열해놓고 싶은 것인데, 정작 감자네는 책이 몇 권 없어. 책들이야 모두 영월 집에 있으니 제주도에는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 그래서 어찌할까 하다가 책을 빌리기로 해 ^ ^ 그래서 어젠 또치 언니가 책을 한 짐 들고 왔고, 낮은산에선 오늘 부쳤다 하고, 해원 언니야도, 피네 아저씨도 책을 보내준다고. (아, 그치만 이건 후원이라는 이름의 강탈은 아닌 거임 ^ ^ 여섯 달 동안 장기임대로 해서 빌렸다가 고대로 돌려드리는 거 ㅋ) 사진에 있는 책꽂이 말고도 다락 위에는 이거 두세 배는 되는 책꽂이가 있는데, 혹시 그림책, 어린이책 장기임대해줄 사람 어디 더 없나? ㅎㅎ
문 옆에 있는 선반엔 감자네 식구 자리로 ^ ^ 감자가 태어났을 때 들이와 들이아빠가 그려준 그림들, 그리고 그 아래엔 아빠가 쓴 책들을 여기에 꽂아놓곤 밥장사에 술장사, 거기에 책장사까지 해보겠다구 ㅋㅋ
감자 얼굴 옆에 감자 ^ ^ 오후까지만 해도 이렇게 잠깐씩 감자를 안고 햇볕을 보러 문앞에 나가 있고 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건만, 저녁부터는 왜 그렇게 손님들이 밀려들어 왁자왁자했는지.
아, 어서 자야겠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하루종일 너무 오래 서 있기만 했어. (그래도 기분은 좋다, 방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