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안식

냉이로그 2017. 8. 29. 12:19

 

 

 새벽 다섯 시면 목탁 소리와 함께 예불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선정원이라는 이름의 절, 감자네 집 앞에 절이 생겼다.  

 

 

 집 앞에 절이 생길 거라는 얘기는 지난 겨울부터 들었다. 웬 절이 생긴다고 하나 싶었고, 어떤 절이 생기려나 궁금했다. 그러다가 올 이삼 월 무렵 터를 닦기 시작해, 사오월에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가더니 유월에는 스님이 들어오셔.

 

 

 인연, 이라는 거 참 신기하기도 하지. 봄이었나, 감자네 집 건너편에 절을 지으실 거라는 스님을 처음 뵈었더랬다. 어머나, 그런데 십 년 전 쯤에 뵌 일이 있던, 스님이었어. 한 번을 잠깐 뵈었더랬으니 얼굴을 알아본 건 아니. 그런데 그 스님이 먼저 얘기를 꺼내셨다. 우리 옆집에 계신 분이, 우리를 소개하면서, 아기 둘을 키우는 부부가 산다고, 아기 엄마는 육지에서 교사를 하고 있고, 아기 아빠는 동화를 쓰는 사람, 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다던가. 그랬더니 스님이 바로 내 이름을 들면서 혹시 누구 아니냐고 했다지. 소개해주시던 분도 깜짝 놀라 어떻게 아느냐며…….

 이라크에 함께 들어갔던 대학생 은국이, 그 친구가  이모라 따르던 스님이었다. 그 당시 은국이는 자기가 아는 스님이 제주도에 있다면서, 형 얘기를 했더니 제주도에 내려와 글을 쓰며 지내라 했다면서, 그 절에 방 하나를 내어주시겠다 했다면서, 간다고 하면 얘기해주겠다고, 얘기를 하곤 했어. 십년도 더 전 얘기, 물론 나는 그때 혼자 몸이었고, 보따리 하나만 싸면 어디든 가 있을 수 있는 처지였지만, 그 당시 제주는 내게 너무 먼 곳이었고, 뜬금없는 제안이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러더니 은국이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들어가기 전, 기자회견을 겸한 조그만 행사를 가질 때, 그 자리에서 잠깐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이모라고 부르는 스님이, 그 분이라며. 스님께서는 책 잘 읽었어요, 라고 인사를 해주셨고, 제주에 오면 연락하세요, 라는 말까지.

 그 뒤론 은국하고도 십 년 가까이 연락이 없이 지내고 있으니, 그 스님을 기억할 일이라곤 없었다. 제주에 내려와 지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수소문을 해 그 스님을 찾는다는 것도, 아니, 실은 그때 그 기억을 까맣게 잊다시피하고 있기도 하였으니.

 그런데 집 앞에 절을 짓는다는 스님이 바로 그 스님.

 

 

 유월 말, 방에 들어가 살 수 있을 정도로만 건물 준공이 된 채로 스님은 들어와 살기를 시작하셨다. 하지만 건축업자를 잘못 만났는지, 마당 정리며, 절집 안팎 정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채. 그날부터 스님은 날마다 흙투성이가 되어 호미를 들고 마당을 기다시피.

 그때부터 아, 저 스님은 그냥 그런 스님이 아니구나 싶은. 흔히들 그렇게 하듯 일을 보아주는 처사나 보살들을 두면서 일을 맡기는 게 아니라, 마당 흙을 메우는 일부터 돌을 고르고, 엉성하게 해놓고 가버린 돌담에 굄돌을 끼워넣는 일까지, 모두 흙투성이 손이 되어 당신 손으로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어 달을 곁에서 지내면서, 잘은 모르지만인사를 나눌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곤 하다보면, 공부도 꽤 깊은.

 일주일에 두 번, 법당에서 명상과 공부를 하는 모임이 있다기에, 어떤 공부인지를 물어 듣다가, 흔히들 우리가 아는 샨스크리트어로 번역한 불법이 아닌, 부처님이 원래는 '빨리어'라는 인도의 민중언어, 최하층언어로 설법을 하셨다는, 그 언어로 된 경전을 번역한 것으로 함께 공부를 한다던. 스님 당신도 인도에서 십 년 수행을 하던 때 얘기도 잠깐 들을 수 있었다. 부처님의 생애를 다룬 어린이책 한 권을 번역한 게 있어. 영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쓴 책이라던가, 그런데 당신이 보고는, 그 이야기가 정말 잘 되어 있어, 우리 말로 다시 옮겨, 딱 한 번 책으로 내기도 했다면서.

 늘 만나면 어리숙하게 웃으시고,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하는 식의 말 한 마디 없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사람을 좋아하는. 더구나 감자 품자를 너무나 예뻐하셔서, 아기 웃는 소리나 울음 소리만 나면 달려와 베란다 창을 열어보며 볼 한 번이라도 만지고 가고싶어하시는. 일주일에 두 차례, 한 번은 한라대학으로, 한 번은 불교문화원이라던가, 하는 곳으로 강의를 다녀오시는 것 말고는, 법당 안이 아니라 마당에서 호미를 잡고 흙투성이가 되어 계시는.

 

 

 

 그래서 우리는, 집 앞에 절집이 생겨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니, 그냥 절집이어서가 아니라 그 스님이 계셔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스님은 사나흘이 멀다 하고, 과일이며 떡이며, 감자며 고구마까지, 한 보따리씩을 싸들고 전해주었다. (우린 그동안 값에 질려 사먹어볼 엄두도 내질 못하던 애플망고라는 것도 몇 보따리를 받아 먹었나 몰라 ㅋ) 부처님 상에 올린 거라면서, 혼자서는 다 먹을 수가 없다며, 감자네가 먹어주지 않으면 이것 나누어주러 차 타고 멀리 가야 하는데 그것도 일이니 같이 먹어달라며. 어떤 날은 쌀 한 포대를, 어떤 날은 절집 이사했다고 들어온 휴지 한 보따리를, 어떤 날은 감자 품자 주라면서 손수 만든 요구르트며 쥬스를.

 아, 쓰다보니 스님께 얻어먹고 받아먹는 얘기만을 늘어놓게 되었는데, 정작 좋은 건 그런 게 아니. 새벽 예불의 목탁 소리가 좋고, 아침 출근길마다 스님과 합장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어 좋고, 감자품자의 울음 웃음 소리에 반갑게 달려와 주시는 게 좋다. 게다가 감자 품자를 데리고 법당엘 한 번 다녀온 뒤로, 감자 품자가 절에 가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스님의 목탁을 감자가 먼저 만졌을까, 스님이 먼저 만져보라 했을까.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감자가 마치 자난감처럼 스님 목탁을 두드리려 할 때 나는 깜짝 놀라 말리려 했고, 법당 안을 놀이터처럼 뛰어다닐 때, 그러면 안 된다고, 여긴 부처님 계시는 집이라고, 조용조용 가만가만 다녀야 한다고 말릴 때, 스님은 오히려 그러지 말라 하셨다. 법당이 엄숙한 공간이 되는 게 좋지 않으시다며,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즐거워하면 부처님도 더 좋아하실 거라며, 당신이 캄보디아던가 어느 나라 절을 갔으 때, 법당 한 켠에 개 한 마리가 들어와 엎드려 있고, 스님은 한 구석에 드러누워 졸고 계시고,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걸 보면서, 그 풍경이 그렇게 좋으셨다면서, 법당은 누구라도 친숙하게 편안하게, 그렇게 드나들 수 있는 게 더 좋으시다면서.

 

 

 그러나 내 마음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감자 품자랑 법당에 건너갈 땐 다른 신도들이 없을 때여서 그나마 다행이지, 부처님 앞에서 조용히 당신의 내면과 마주하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아무래도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그런데 어느 밤이었나. 감자가 잠에 들지 않고 더 놀고 싶어하기에, 마당으로 안고 나갔더니, 감자가 스님 집엘 가고 싶대. 그래서 가만가만 법당으로 들어가보았더니, 그 늦은 시간에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이 멈추지 않고 절을 올리며 기도를 하고 있어. 문을 살짝 열어 들어가면서, 감자야, 지금은 뛰어다녀서는 안 돼. 아빠랑 부처님한테 절만 하고 가자, 했더니, 오히려 그 아주머니가 절을 멈추고는, 얘가 지슬이에요? 하고 환하게 묻는 거라. 그러더니 다시 그 법당 안에서는 그 아주머니와 감자의 까꿍놀이, 숨바꼭질이 시작되었어. 불단 주변을 뱅뱅 돌며, 감자가 숨으면 아주머니가 찾고, 아주머니가 숨으면 감자가 쫓아가서 찾고. 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 목욕을 다시 해야 할 정도로.

 그러고 보니 스님과 가까운 분들은 감자, 품자를 알고 있었다. 얘기 많이 들었다면서, 집 앞에 아가들이 있다고 스님이 말씀을 많이 하셨다면서, 네가 지슬이니, 네가 우슬이구나. 팔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점안식이 있어 손님들이 꽤 많이 모이던 날도, 스님은 마치 지슬이 우슬이 하면 다 알아듣는 것처럼 만나는 사람마다 스스럼없이 아가들을 소개하곤 했다. 한참 예불을 올리는 중에도 한 분은 시내에서 불교서점을 하신다 했고, 또 한 분은 불교신문 기자라 하시면서,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그 분들은 어린이책에도 관심이 있어 그런지, 내 이름도 알고 있었고, 암튼 스님에게 지슬이 우슬이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집 앞에 스님의 절이 들어선 게, 감자 품자에게는 마치 놀이터가 생기기라도 한 것 같아. 오히려 감자품자를 안고 며칠을 건너가지 않으면, 스님이 왜 놀러 오지 않느냐며 궁금하다고 창문을 열어보실만큼.

 

 

 감자 품자네 집 앞에 조그만 절이 생겼다. 신도 수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분들이 꾸준히 다녀가시고, 서로 모여 공부를 하는. 그리고 그 절에는 호미를 들고 돌을 고르는, 아가들을 좋아해 어쩔 줄을 몰라하는, 누구에게도 가르치려 들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는, 그런 스님이 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점안식이 있기 전, 법당 천정에는 스님께서 감자네 식구 이름으로 연들을 걸어주기도 하셨고,

 

 

 품자는, 부처님 말씀이 있는 경전을 그림책이라도 되는 듯, 가지고 놀기를 좋아해.

 

 

 점안식이 있던 8월 26일 토요일, 시간보다 조금 일찍 마당으로 나갔는데, 이미 절에는 찾아온 분들이 많이 있어. 감자도 합장을 하고서는,

 

 

 부처님, 고맙습니다아아~ 하고 허리굽혀 반절을 하는데,

 

 

 허리를 접어 절을 하다가는 발 앞에 기어가는 개미한테 시선을 빼앗겨 ㅎ

 

 

 그날 점안식엔, 손주들을 데려온 보살님들이 더러 있어, 절집 앞 감자품자가 나가니 내내 아가들은 아가들끼리 ㅎ

 

 

 마침 집에는 엄마가 내려온지 열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집 앞에 절이 생겼으니, 날마다 방 안을 법당처럼 해놓고 지내시던 엄마는, 새벽 다섯 시면 문을 열고 절에 가서 새벽 예불을 올려.

 몸이 아프고, 우울증으로 마음까지 힘들어하던 엄마에게, 제주에 내려와 있다가 가시라고, 아가들 재롱 보면서 몸 아픈 거나 가슴 답답하고 울렁이는 것도 잊을 수 있게 내려와 있으면 어떻겠냐고, 그리 얘기를 하면서 한 가지 더 엄마를 부르게 했던 건, 바로 집 앞에 절이 생겼다고, 며칠 뒤면 점안식이 있기도 할 거라고, 아가들 재롱보다가 절에 건너가 기도하면서 지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시겠냐며.

 그렇게 감자품자네 다섯 식구는 할머니부터 갓난아가들까지 모두 부처님 점안하는 자리에 함께 해.

 

 

 감자도 품자도 손을 모아 합장을 ㅎ

 

 

 

 품자도 두 손을 이렇게 모아 ㅎ

 

 

 부처님, 고맙습니다아아 하고 인사를.

 

 

 언제였더라, 점안식이 있기 며칠 전. 감자를 안고 법당에 놀러(?) 갔다가, 여긴 부처님 집이니까, 여기 들어오면 먼저 아빠랑 같이 절을 하자, 그랬더니, 감자가 합장에 엎드린 큰절을 하더리 "할머니 할아버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말을 해, 스님도 나도 깜짝 놀라버렸어. 세상에,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줄을 알까. 아마도 엄마아빠가 절을 하면서 소리내어 기도를 할 때 들은 적이 있어 그랬을까.

 그 모습이 하도 신통해서 스님이 또 한 번 해 보자고 그랬더니, 이번에는 합장에 엎드리면서 "잘 되게 해주세요" 하고 말을 해 웃음이 터져버렸지 모야. 그런 식의 기도는 아빠도 엄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감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까? 암만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기억을 더듬더듬, 혹시 그 전에 달래가 그런 식으로 비렀던 적이 있었던가.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걸 너무 힘들어하니까, "아빠 회사에서 하는 일 잘 되게 해주세요" 하는 식으로, 농담을 섞어 말했던 것도 같고. 암튼 감자의 기도가 얼마나 우습던지.)

 

 

 이렇게 감자품자네 집 앞에는 조그맣고 예쁜 절집이 이웃하게 되었다. 새벽이면 목탁소리에 잠이 깨고, 요즘 같은 날이면 밤마다 귀뚜리 소리와 함께 풍경이 울려. 감자품자는 스님집에 놀러가자, 부처님집에 놀러가자, 하면서 절에 가기를 좋아하고, 스님도 이틀이 멀다 하고 감자품자를 보러 창문을 두드려. 그 절에는 목탁보다도 호미를, 경전보다도 삽과 빗자루를 더 가까이 하시는, 예순 가까이 되시는 비구니 스님이 살고 있어.

 그러니 감자도,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려 집을 나설 땐, 마당에서 흙손이 되어 있는 스님께 합장을 하며,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올 때도 스님이 보이질 않으면, 스님을 찾아. 오늘 아침엔 품자를 보며 한참을 웃었떤 게, 절에서 예불을 올리며 목탁소리가 들려오니, 요 갓난 아기가 그 박자에 맞추어 목탁을 치는 흉내를 내질 모야. 지도 목탁을 만져봤다 이거지 ㅎ

 할아버지 동화책 중에 <하느님이 옆집에 살고 있어요>라는 제목처럼, 감자품자네 집에는 앞집에 부처님이 살고 있다. 이제 감자품자는 아기 딸랑이 소리가 아니라 맑게 울리는 나무 울림의 목탁소리를 더 익숙하게 들으면서.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파일  (0) 2023.04.14
내시경  (0) 2017.08.21
여름, 강  (6) 2017.08.18
근과 은  (2) 2017.07.06
빼떼기와 가자미  (0) 2017.06.19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