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지구의 날.
오늘 하루 나는 또 얼마나 너의 거죽을 더럽히고 속살을 갉아먹으며 내 하루 목숨을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

지구라는 말, 생태라는 너의 몸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사실 전쟁 앞에서 놀라면서 반전평화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을 거야. 전쟁이라는 것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얼개, 그리고 평화라는 것이 진정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결국 전쟁 없는 세상에 닿고자 하는 '반전평화'라는 가치는 ‘생태평화’라는 너의 몸, 곧 내 삶에 대한 성찰과 맞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무차별적인 자원소비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끝내 제국들에게 화석 에너지를 비롯한 자원 확보에 혈안이 되어 덤벼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것, 끝내 전쟁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강요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지구 목숨을 갉아 먹는 위에 세우는 최첨단 쓰레기의 성을 짓는 것으로 공멸의 길로 치달아 가게 한다는 것을.

너의 몸을 제 것처럼 독점, 소유하기라도 한 듯 마음대로 속살을 파먹고 사는 인간들에게는 언제까지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전쟁은 그칠 수 없을 거라는 것도, 그리고 그렇게 해서 벌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전쟁들은 단지 인간들만의 슬픔이 아니라 가장 무섭게 너의 몸을 무섭게 부수고 망가뜨리는 일로 되풀이 된다는 것도.

그렇게 전쟁과 생태 파괴는 하나로 물려 계속 되고 있어. 그 어느 것과 다른 어느 것이 선후의 인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근거가 되고 또한 서로가 서로의 결과가 되면서.

지구야, 미안.
전쟁을 벌이고 있어서 미안해.
그 수많은 폭탄과 미사일로 네 거죽을 불사르고 망가뜨려 미안해,
그 엄청난 방사능에 네 속살들도 모두 감염되고 있겠지.
방조제를 쌓아 바다를 죽어가게 해서 미안해.
빠른 길을 만들겠다고 터널을 뚫어 산의 목숨을 빼앗아 미안해.
자꾸만 자꾸만 사서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네 살갗을 파헤치고 뜯어 쓰레기만 만들어 내어서 미안해.

우리 사람들이 아플 때 열이 나는 것처럼 네 몸도 그렇게 열이 나는가봐.
우리 인간들이 만든 온실가스로 네 몸의 온도가 지난 백 년 동안만 0.6도 올랐다며,
다른 어느 곳보다 내가 사는 이 나라 둘레는 네 몸의 평균치보다 두 배 가까이 열이 올랐다던데.
거기에는 다 내가 먹고 버린, 입고 버린, 내 몸 따뜻하고 편하게 한다고 써서 남긴 그 쓰레기들도 톡톡히 한 몫을 해오고 있었겠지.

남극의 빙하가 녹아 네 몸이 울고 있구나.
아마존의 숲이 사라지면서,
곳곳에 풀기 없는 사막으로 말라가면서,
그리고 쓰나미와 카트리나의 몸부림으로 그렇게 아파하고 있구나.
미안해, 미안해.

상처 입은 네 몸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곳곳의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면서 이 편지를 마친다. 안녕. 2006. 4. 21. 너를 위한 날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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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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