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굴 속의 시간 2011. 3. 7. 05:57

고만 쓰러져 자야겠다. 지난 일주일 내내 법주사 원통보전과 봉정사 대웅전을 뜯었다 다시 짓고, 헐었다 다시 세우고, 저 맨 바닥 기둥밑둥부터, 아니 그 밑의 기단 지대석부터 저 꼭대기 옥심주와 절병통까지 들어냈다 다시 쌓아올리기를…. 잠을 자면서도 도리 위를 타고 다녔다.

이를테면 법주사 원통보전.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으로 탑파 형식의 구조를 가진 사모지붕집.내진기둥들이 사천주를 이루고 그 위로 중도리가 올라가. 보통의 건물이라면기둥 위로 들보부터 올라가야 할 텐데, 얘는 도리부터 올라간다. 그리곤 우물정자로 틀을 짠 도리들의 허리에서 들보재가십자맞춤을 하고 있어. 그러니 걔들은 대들보라기보다는 덕량이라 하는 게 옳겠지. 횡방향으로는 방형의 덕량이, 종방향으로는 원형의 덕량이우물정자위에서 밭전자를 그리듯 십자로 교차해 만난다. 그 교차점이 이 건물의 가장 중심이 되는점. 그 자리에 옥심주가 세워져.탑도 아닌 것이, 정자도 아닌 것이 옥심주를 세워 꼭지점을 두고 모임지붕을 이룬다.그리고종방향의 덕량중간에 동자주가 서면서상중도리 지지틀을 만들어. 모임지붕이라지만 얘는 추녀도, 서까래도 옥심주 끝까지 올라가지를 않는다.중도리까지만. 그리고는 그 뒤를 덧추녀라든지, 덧서까래라는 것이마루형성을 위해 옥심주로 덧대어 있을 뿐. 하여간 특이한 녀석이야.옥심주가 있는데도, 모임지붕인데도 추녀가 옥심주에 꽂히지를않아. 외목이 내목보다 길어지니 전복이 일어나고 말텐데,제대로결구 기법을 쓴다 해도추녀 뒤뿌리 때문에 언제나 조심스러운데, 얘는 아예 결구라는 것도 없이 중도리 위로 걸쳐놓았을 뿐이야. 그럼 뭘로 추녀 뒷뿌리를 눌러줄래? 그 뒤로 덧댄 덧추녀,이것 또한 옥심주 제대로 결구되어있지가 않아. 하긴 이 덧추녀야 그리 하중을 받을 것도 없으니얘에게는 결구가중요한 건 아니니까.이 덧추녀 끝이 옥심주 받침재에 걸리면서 추녀 등을 눌러주고 있는 것이다. 옥심주 위에는 절병통. 이 또한얘만의 독특한 모습. 다른 곳에 있는 것처럼 기와를 구워 만든 것도 아니고, 궁궐에서 쓰인고급 재료처럼 청동으로 만든 것도 아니야.돌로 만든, 화강석으로 만든 절병통이 옥심주 위에 떡하니 올라 있어. 무겁기도 하겠다.그 하중 가운데 일부가덧추녀에게 전해져 추녀 뒷뿌리를 꾹꾹 눌러준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도 추녀 밑에는 그 추녀 밑을 받아주는 활주가 있던 흔적, 활주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는데 하여간 그 당시에도 추녀 전복의 위험은 관건이 되었을 거야.

그러니까 얘는 들보 중심의 지붕상부 구조를 가졌다기 보다는 도리 중심의, 종도리와 종보는 아예 생략되어 옥심주를 두고 있는 그런 뼈대를 갖추고 있는 거. 2고주 7량집이라 하기도 한다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종도리와 종보가 생략된, 옥심주가 그것들을 다 대신해주고 있는 2고주 6량집이라 해야 하는지 몰라. 연목 구조는 이미 한 차례 해체보수를 하면서 바뀌었다던가. 그래, 원래는 덧도리와 덧서까래를 둔 구조가 아니라 일반적인 동연과 장연을 둔, 그 둘을 연침으로 이은 모습이었다지. 지붕 하중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지붕 속 빈공간을 마련한 구조 변경이 있던 거라고.어디 그 뿐인가, 추녀 위에는사래가 있어 겹추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서까래에는 부연이 없어.그러니까 모서리에서만 겹추녀, 처마면에서는 홑처마가 되는 아주 이상한구조란 말이지. 이걸 두고 뭐라 그러더라, 모임지붕의 특성상 지붕이 너무 내리누르는 느낌이라 귀퉁이라도 좀 더 쳐들어올리는 모습을 주기 위해 그랬을 거라 그랬나. 하긴 모임지붕의 물매는 여느 건물의 것보다 훨씬 세기 마련이니까.

평범하지 않은 건 그것 뿐이 아니야. 기둥 위에만 포작구성을했으면서도 마치 다포식에서 구성하는 것처럼 평방이라는 부재를 썼다거나,주간 사이에는 커다란 화반을 놓아 익공계 구성에서 보이는 모습을 섞어 쓰고 있다거나 공포의 구성 자체를 법주사 외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중첨차라는 걸 사용했다거나. 하여간 그 당시먹을 잡은 도편수 할아버지는 머리 깨나 아팠을 것이다.조선의 억불정책 아래라돈은 없지요, 임란 난리를 겪은 뒤라 물자는 달리지요, 아무리 왕실에서 반짝 후원을 했다 해도굵고 튼실한 나무를 마음껏 골라가며 쓸 수는 없었을 테니까.

조선중기 중건된 건물이기는 하나 기단 자체는 통일신라 때 조성된 그대로이다. 전란 통에 목구조는 불에 싹 탔어도기단석들은그대로 남아, 그 위에 다시 지었다는 것인데,그렇담 이것을다시 뜯어 복원하려면 기단 조성 당시의 용척과 목구조를 중건하던 때 용척이 서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부터 확인을 해야 해.시대마다 자, 치, 푼의 단위는 일정치가 않아 그 기준부터 잡아야 할 테니….

이렇게 잠꼬대를 한다. 추녀 뒷뿌리가 들리고,부지끈나무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놀라 잠에깨곤 한다.제길, 자꾸만 가위에 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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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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