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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로그 2014. 10. 20. 11:16


 

 감자가 세상에 나오고 서른다섯 시간 즈음 되었을 때, 조리원으로 찾아온 깜짝 방문. 우리가 제주에 들어오던 첫날부터 잠자리를 내어주고, 소길리 마을 조그만 돌담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해준 들이네 식구였다. 만화가 들이아빠와 아이들을 가르치며 글을 쓰는 들이엄마, 그리고 새까만 머루빛 눈동자의 열다섯 살 들이. 

 



 어머나, 어느 새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감자를 보구 가래도, 아기 얼굴보는 건 조금만 더 참겠다면서 그림만 전해주고 가는데, 달래냉이는 이 그림들을 보구선 놀라움을 어쩌지 못해. 지난 밤 이 그림을 그렸을,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며 함께 행복해하였을 그림 속 세 식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하나하나 그림을 볼 때마다 빵빵 터졌고, 그림들을 찬찬히 뜯어보며 눈시울이 시큰하였다. 아니나다를까, 바깥으로 나가 세 식구 돌아가는 길에 손을 흔들고 들어오니 달래 눈에는 눈물이 가득. 행복하였다. 함께 행복해주는 이들이 있어, 우리는 행복하였다. 



 만화가인 들이 아빠가 그려준 그림. 이 그림 안에 고스란히 들이네 세 식구의 모습이, 그 마음이. 



 
 우리 둘이서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하게 되는 그림. 하하하, 저 멀리서 호미를 든 손으로 번쩍 만세를 부르는 사람이 감자 애비인가보다, 그리고 감자를 품에 안은 달래와 이 편에서 만세만세만세를 부르는 들이네 세 식구. 보고 또 봐도 웃음이 나고 행복해. 이 그림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이 만세를 부르게 된다니까. 몇 번이나 이 그림 앞에서 손이 번쩍번쩍 올라갔는지 몰라. 
 



 그리고 이건 열다섯 살 들이의 그림. 진작에도 우리는 들이가 그려준 아기 그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달래냉이가 제주에 내려온 첫날, 처음 만난 자리에서 뱃속에 아기가 있다고 하니까 머루빛 눈동자의 이 소녀는 방에 들어가더니 아기 그림을 그려 선물로 주었다. 노란 벚꽃나무에 둘러싸인 아기 얼굴, 우리는 그 그림을 지금껏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고, 달래는 히프노버딩의 이완호흡법 가운데 시각화 기술을 쓸 때 그 아기 그림을 떠올린다고 했다. 히프노버딩에서는 꽃이 개화하는 이미지 또는 무지개의 일곱빛깔들을 지워나가는 이미지, 새턴리본이 풀려나는 이미지 등을 소개했지만, 달래는 들이의 그림으로 이완법을 준비해. 이 그림에 있는 꽃은 어떤 꽃이냐 물었더니 감자꽃을 그린 거라지, 기억이 잘 나질 않아 찾아보고 그렸다는 감자꽃. 



 감자 곁에 그림들을 놓으니 흡사 꽃밭에 있는 것 같아. 꽃이 된 그림들, 꽃이 된 정성스런 마음.





 올 2월, 감자가 이제 겨우 뱃속에서 콩알만하게 꼬물락거릴 때. 그때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던 들이가, 제 방에 들어가 살그머니 그려나온 그림. 뱃속의 열 달과 출산의 그 컴컴한 서른여섯 시간 달래와 함께해준 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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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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