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감자로그 2014. 10. 15. 06:48

            


 이슬이 비추고 빠르면 하루, 길면 일주일이 지나 저마다의 시점과 속도대로 하강과 조임이 시작될 거라 하더니, 감자는 일단 엄마아빠를 준비 시켜놓고는 다시 잔잔하다. 고맙게도, 너무 갑자기는 말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고요히 내려오고 있는가 보다.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으로, 그렇게 오렴. 





 시작한 몸의 변화에 다소 긴장을 하기도 하고, 몸 일으키기가 한결 힘겨웁던 달래가 다시 산책을 나서고 싶어했다. 봉퐁이라는 장난꾸러기 같은 이름의 태풍은 지나갔고, 또다시 아주 맑고 파란 가을 하늘. 갑자기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너무 멀리는 말고, 가까이에 있는 고성리 토성으로 올랐다. (감자야, 엄만 씩씩하단다!)




 
 저기 보이는 토성이 삼별초군이 제주로 밀려오면서 몽고군에 맞서기 위해 쌓았다는 마지막 몸부림. 하늘 아래 바다, 바다 아래 마을, 그 아래로 이어지는 토성. 그리고 그 아래 억새. 손을 잡고 저 길을 걸었다. 걷는 내내 쉼없이 감자에게 말을 걸어. 주로 재잘거리는 쪽은 나. (감자야, 아빠 목소리 기억하겠니? 모라구? 시끄럽다구? ㅋ) 



  아침에 비타민 / 커피소년 

 이 노랜 지난 달부터 달래가 자주 찾아 듣던 노래. 요가를 가거나 장을 보러 나갈 때마다  차에다 틀어놓던. 이 날도 항파두리로 나가는 길에서부터,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면서도 우리는 자꾸만 이 노래를 흥얼거려. 행복하다, 행복하다. 나는, 가장, 행복하다, 세상에서, 젤, 행복하다.  






 동영상을 찍은 거였다. 처음엔 장난처럼 동영상 녹화 단추를 누르고는, 버릇처럼 감자를 향해 중얼중얼. 말을 걸어 얘기를 하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어떤 편지글을 읽고 있는 것만 같아. 마치 방송같은 데에서 영상편지 어쩌고 하는 그런 것처럼. 그러더니 그만 울컥하여 울음이 터져버렸는데, 그걸 지켜보던 달래는 웃음이 빵 터지더니, 나중에는 둘 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어. 남편이 둘라가 되어 출산을 한 부부들의 후기를 보면 아기를 낳고난 순간 아내보다 남편이 더 엉엉 우는 모습이 보이곤 하여, 오빠는 더할 거라며 달래가 말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럴 것만 같아. (감자야, 아빠가 쫌 그렇단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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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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