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동

            

 닷새 전, 감자가 비행기를 한 번더 탈 일이 있었다. 상주, 그 꿈들 전시 첫날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경, 충주, 제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오르면서 박달재 아래 평동마을의 철수 아저씨네 집엘 들러. 

 그러고보니 영월에서 제천이 그리 멀지 않은 길임에도 여태 인사 한 번을 가질 못하고 있었지 모야. 장가를 들면서도 겨우 청첩 편지 한 통으로 인사를 대신할 뿐이었는데, 아저씨는 목판에 새긴 엽서로 답장을 띄워와. 그러고나서도 여태 인사를 가지 못해. 그러다가 곶감의 고장으로 다녀오는 길, 이제는 감자까지 셋이 되어 두 해나 지나서야 인사를 드리러. 

 감자는 좋겠다. 삼십 년 세월, 나무에 새겨온 마음들. 이번에는 감자가 큰아빠에게 이렇게나 큰 선물을 받아. 



 

 용수마에서 하루를 묵고 집을 나서려 할 때, 철수 아저씨네로 연락을 드렸더니 안 그래도 들러가라는 말씀이었다. 상주 전시를 보러 내려올 차비를 하고 있었는데, 자고 가는 손님들이 있어 그러질 못했다고, 지나는 길일 테니 들러가라 하시며. 나로서는 요 며칠 정생이 할아버지 일로 식구들 연락이 있기도 했고, 어린이재단 일로 이리저리 의견을 묻는 얘기들이 있어, 아무래도 아저씨를 만나 어찌해야 좋을지를 들어야 할 것만 같아. 그런데 아저씨도 이미 그 일들에 대한 얘기도 해야겠기에 얼굴을 보자 하시던 거. 

 아저씨를 만나러 가길 참 잘했다. 요사이 어리둥절 듣게 되던 어린이재단 일이며, 할아버지 뒤안을 돌보는 일들에 대해서는 이미 깊고도 소상하게. 그 일들 뿐 아니라 오래 되어온 그 마음들, 그리고 그 너머의 것들까지. 아저씨가 들려주는 얘기들에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아직도 나는 참 바보같고 어리석기만 하지. 철수 아저씨네 집엘 가면 여경 언니가 내려주는 사과주에 입술을 축여, 밤을 아껴가며 가만가만 마셨어야 하는 것을, 비행기 시간에 쫓겨 그러지를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한. 






 아저씨는 자연을 커다란 경전으로 삼아 마음 공부를 나무에 새겨왔다 하는데, 그 삼십 년을 새겨온 목판집은 그 자체로 내게 경전이 되는 것 같아. 삼십 년을 두고 읽고 또 읽으면 그 마음이 내게도 들어오게 될까.  




 
 몽실언니와 점득이네 개정판을 내면서 다시 작업했던, 그러니까 두 해 전, 혼례식 청첩을 알렸을 때 할아버지 일로 바쁘시다던 그 일. 그 목판의 작품들을 길게 이어 족자로 만든 두루말이를 여경 언니가 풀어주었다. 그 간결한 선을 따라 살아나는 맑고, 눈물겹고, 아득한.   
 




 할아버지는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