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꾹

감자로그 2014. 4. 21. 00:06



1. 딸꾹


 칠센티미터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 카메라로 엄마 배를 문질러가며 네 모습을 보여주었어. 너는 무어가 부끄러운지 두 팔로 얼굴을 가리고는 내내 엎드려 있기만 하더라. 그래서 의사 선생님 일러주는대로 엄마가 몸을 굴려 옆으로 눕기도 하고, 또 반대쪽으로 몸을 세우기도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너는 어떻게 아는지 딱 반박자씩 느리게 너도 몸을 굴리거나 세우면서, 내내 얼굴을 보여주지를 않아. 마치 얼굴을 묻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하는 술래처럼 자꾸만 얼굴을 묻으며 옆모습만 겨우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야. 너도 부끄러워 그런 거니. 부끄럼 많은 엄마아빠를 닮았으면 그래서 그런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에, 그 또한 하나도 서운치가 않더라. 꼼작꼼작 움직이는 네 모습을 신기해하며 보고 있는데, 엄마가 그러더라. 딸꾹질을 하나 봐요. 그러게, 너는 일이초 간격으로 어깨를 들썩여가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모습이 꼭 딸꾹질을 하는 것 같았어. 무얼 그리 급하게 먹다가 딸꾹질에 걸렸을까, 하하. 희거나 검은 빛으로만 너를 볼 수 있었지만, 너에게는 이미 목에서부터 등을 타고 이어지는 척추뼈가 또렷이 보이고 있었고, 너는 얌전하게도 두 팔을 움직여, 그리고 두 다리를 움직여.  




2. 망설


  다음 번 출산센터 가는 약속을 하기 전, 의사 선생님이 묻더라. 그건 엄마아빠가 의논해 결정하는 거래. 그곳에서만 해도 이미 엄마하고 아빠는, 아기를 낳으러 찾은 이들 가운데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들. 그러니 우리는 흔히 말하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예비엄마아빠인 셈. 그러니 혈액검사니 양수검사 같은 것을 하여 장애아인지를 알아보는, 다운증후군인지를 알아보는, 그런 검사를 받겠는지를 결정해달라는 거. 엄마랑 아빠는 바깥으로 나와 한 번 더 의논을 하긴 했지만, 벌써 예전부터 마음먹었던 것처럼, 그런 검사는 받지 않기로 하였다. 그 검사를 한다 해도, 그 어떤 조치나 치료 같은 걸 할 수 있는 건 아니. 그저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는 정도랄까, 그게 아니면 아기와 서둘러 이별을 결정하는……. 아주 잠깐 망설임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 순간 너를 떠올렸단다. 이 망설임이라는 게 어떤 걸지를 네가 안다면, 네가 얼마나 섭섭하겠는지. 물론 그런 마음이 아주 없던 거는 아니었어. 사람 일이라는 게 알 수 없는 일인데, 만약에 그러해서, 그래서 훗날 너를 보기가 너무 힘겨워 후회하는 마음 같은 게 들지는 않겠는지, 고작해야 어떤 오만이나 경솔함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겠는지.


 

3. 믿음


 그러나 감자야, 엄마아빠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라는 건 네가 장애없이 건강한 몸일 거라는, 그런 믿음은 아니란다. 그런 생각이야 말로 믿음이 아니라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버린 마음이겠지. 그건 믿음이 아니라 일방적이고도 폭력적인 기대나 바램에 지나지 않는 걸 거야. 엄마와 아빠가 진정으로 저버리고 싶지 않은 믿음이라는 건, 너와의 인연, 그것이었어. 네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만나러 온다 해도, 그 인연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것. 네가 건강한 모습을 하건 아님,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이미 감자는 냉이달래와 하나라는 것. 너의 몸과 마음이 건강할 거라고 우겨대는 믿음이 아니라, 네가 어떤 모습을 할지라도 너를 품어안겠다는 약속 같은 것 . 그랬으니 네 몸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아보는 검사라는 건, 일찍 안다 해도 아무런 치료법이나 조치할 방법이 없는 검사라는 건, 부질없는 일일 수밖에. 있는 그대로 너를 맞이하겠다는 마음이자, 그 자체로 이미 소중한 인연이라는 믿음.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있는 기도라네 / 고정희 시, 백창우 곡 




4. 감자 


 반가웠어, 감자야. 삼주일만에 올라가 엄마를 만났는데, 평안하고 행복한 얼굴로 내내 해맑게 웃는 엄마를 보며, 너도 엄마처럼 그런 표정이겠구나 싶어 그저 고마울 따름이더라. 단 한 가지, 엄마에게 비타민 디가 모자라다는데, 그 비타민 디라는 거는 햇볕을 많이 받아야지만 보충을 할 수 있는 거라던데, 아빠가 곁에 있었다면 엄마 손을 잡고, 너와 함께 셋이서 어디라도 거닐텐데, 그러질 못해 미안한 마음만……. 게다가 이번에 집에 다녀오면서 생전 처음 엄마가 일기라는 걸 쓰는 걸 보았단다. 일기는커녕 짧은 엽서 한 칸 채우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글 한 줄 쓰기를 꺼려하던 엄마였는데, 감자맞을 준비를 하며 날마다 써온 일기를 보니, 가슴이 얼마나 뭉클하던지. 아빠는 이렇게 멀리에 있고, 엄마 혼자서 벌써 이만큼이나 너를 품어 키우고 있었더라. 감자야, 부끄럼 많은 감자야, 이렇게 우리는 만날 준비를 해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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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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