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

감자로그 2014. 3. 17. 23:36


1. 들이네 집


 삼주만에 육지에 올라가 달래를 만나고 내려오는 길. (아니, 이젠 감자도 함께!) 김포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줄을 서고 있을 때쯤, 소길리 들이네서 오늘 저녁은 집에서 함께 먹자는 문자가 왔다. 영월에서 출발해서 김포에 도착,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다시 소길리까지, 장장 여덟 시간 길을 달리고 날아서 돌아오는 길. 그렇게 며칠을 나갔다 깜깜밤중 썰렁한 집에 돌아오는 길은 얼마나 쓸쓸한가. 그럴 때 썰렁한 내 집이 아니라 따뜻한 밥상을 준비해놓은 이웃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 

  제주에 들어와 처음 만났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오랜 사이인듯 가까워진 식구들. 처음 피네 아저씨에게 형님을 소개받으면서, 아주 착하고 여린 사람이라고, 그리고 섬세하고 예민한 영혼이라고 얘기를 들을 때는 솔직히 겁나는 마음이 더 컸다. 게다가 그 소갯말을 맺으면서 하던 한 마디, 그러고보니 너네 둘이 되게 닮았다, 라고 할 때는 완전 겁에 질려 버렸어. 물론 피네 아저씨야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겠지만, 나랑 닮은 인간이라니, 으으으, 그렇담 얼마나 까칠하고 까탈스럽고 괴롭고 복잡한 영혼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에 오히려 겁을 잔뜩 집어 먹어. 그러나 내가 만난 그 식구는 말그대로 맑은 영혼과 여린 감성의, 따뜻한 이들이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나랑 닮은 까칠에 까탈, 골치아픈 영혼이 아니었다는 거 ^ ^ 

 그러나 막상 이곳에서 지내면서는 그리 자주 얼굴을 보지는 못해. 나부터가 새벽 바람에 일을 나가 지친 몸으로 깜깜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으니, 게다가 주말이란 것도 따로 빼지를 못했으니, 일주일에 한 번이나 겨우 만났을까. 그랬으니 마치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막걸리잔을 나누었고, 그간의 안부를 나누었다. 나는 서울에서 달래와 감자의 소식을 전했고, 형님과 누이는 한 가득 기뻐하였다. 아무래도 1학기까지만 영월에서 학교를 나가고, 여름부터는 달래도 아주 내려와 함께 살면서, 이 섬에서 감자를 낳으려 한다는 말에, 벌써부터 그 삶을 시작하는 듯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2. 선물


 "아저씨! 선물이에요."



 어머나, 깜짝야. 조용히 제 방에 들어가 있던 들이가 내놓은 그림. 마루에서 엄마, 아빠, 아저씨가 나누는 얘기를 듣고는, 그 잠깐 사이 이같은 그림을 그려 막걸리 상에 살폿 내려놓았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거야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놀라웠던 건, 어쩜 이런 이미지를 담아내었을까 하는 것. 노란벚꽃나무, 그 꽃잎들에 감싸인 아가의 모습. 나는 감동에 어쩔 줄을 몰라 하였고, 열네 살 들이는, 별 것 아닌 듯한 시크한 표정으로 살짝 웃어보였다.




 들아, 고마워! 이 그림은 정말 잘 간직해서 감자에게 선물할게. 이제 가을이면 감자와 만날 수 있으니, 그때는 들이가 얼마나 좋은 언니가 되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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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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