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감자로그 2013. 5. 17. 07:01




 부처님이 오신 날, 그리고 할아버지가 눈감아 가신 날. 하늘이 맑고, 연녹의 이파리들이 깨끗하다. 잠이 많아진 달래는 아직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있다. 평온하게 잠을 자는 얼굴이 고마울 뿐. 달래의 뱃속에는 또다른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감자, 우리는 그 아이를 감자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마 올 봄에 놓았을 그 햇감자들, 아직은 그렇게 주먹보다 작은 크기로 이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도 감자가 왔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고, 자꾸만 잠을 자는 달래를 보며, 조금씩 실감이 되며 또한 긴장이 된다. 그러고보니 나는 준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제야 출산이며 임신에 대한 책 몇 권을 주문해놓고, 수수팥떡이니 하는 싸이트들을 들여다보며 아비가 되는 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어수선하게 찾아보고 있다. 그러니 달래가 약간만 배를 움크려도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약간의 혈흔에도 침착하지를 못한다. 물론 겉으로야 태연한 척 의연한 척. 

 축하의 인사를 많이 받았다. 나보다도 더 기뻐해주는 사람들. 그 축하의 인사와 기쁨에 겨운 목소리들이 얼마나 고마운가. 아마 할아버지에게 이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이다. 언제나, 가장 많이 하시던 말씀이 바로 그거였으니. 좋은 글을 써라, 는 말도 아니었고,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 어서 장가를 들어 아기를 낳아라, 하던 말. 햇감자를 찌어내, 오두막 들마루에 앉아 껍질을 벗겨 먹으며, 감자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아마 저 햇살처럼, 보드랍게 웃으며 좋아하셨을 텐데, 하는 상상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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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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