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소리] 선거

냉이로그 2006. 6. 1. 11:24

스무 살을 넘기면서 이번만큼 선거에 관심을 덜 가져본 일이 없다. 물론, 그렇다 해도이삼일에 한 번 정도 내가 지지하는 정당 홈페이지나 몇 군데 정치 포털 싸이트에 들어가 사람들의 전망과 분석, 비판 글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중요 지역의 후보자 토론 방송을 찾아 유심히 보곤 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여전히 선거에 관심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선거 자체가 나에게 흥분을 주거나 커다란 긴장을 주지는 못했고, 그랬으니 당연히도 적극 발언하고 싶은 어떤 것도 있지 않았다.



1. 싹쓸이


싹쓸이. 이번 선거에서 지겹도록 들은 말이 이건 거 같다.

그리고 개표가 끝난 오늘에도 이 말은 온갖 정치면 기사를 도배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나라당 싹쓸이'.

이 말이 영 불편하다.

싹쓸이 맞다.

하지만 이걸 두고 한나라당 싹쓸이라고 하는 건 그들의 언어일 뿐이다.


한나라가 12개 먹고, 열린우리당이 1개 먹었으니 그게 싹쓸이인가?

한나라랑 열린우리당이 7개씩 나란히 나눠 먹으면 그건 싹쓸이가 아닌가?


광주학살의 뒤를 이은 세력과 평택 군부대 투입을 결정한 세력 사이에 애초 차이는 없었다.

한나라의 퍼런 군홧발이나 열린우리당의 누런 군홧발이나 어떤 때깔을 입히건 군홧발은 군홧발이다.


싹쓸이는 비단 이번 선거뿐이 아니었고,

이번 선거 또한 반평화세력의 싹쓸이,

개발과 이윤만을 쫓는 이들의 싹쓸이,

한-미 동맹 세력의 싹쓸이로 마쳐졌다.


한우리당과 열린나라당이 7개씩 나란히 나눠 먹었다고 해도,

반평화 세력의, 개발과 이윤의, 한-미 동맹 세력의 싹쓸이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언어이다.


한나라당 싹쓸이라 말하는 것은 우리를 그 자리 그대로 묶어두려는 그네들의 의지, 그네들의 언어일 뿐이다.



2. 견제와 균형

이 또한 같은 맥락의 말이다. 싹쓸이라는 말만큼이나 지겹게 들은 말이 이것이다. 견제와 균형이 깨질 거라는 위기감, 그것을 지켜달라는 읍소.


그러나 애초부터 한우리와 열린나라 사이에 견제나 균형은 없었다.

그네들은 두 손 꼭 잡고 침략 전쟁에 앞장섰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탄압하는 데에도,

산과 바다를 죽이는 데에도 마음은 하나였다.


논을 빼앗아 제국의 전쟁 기지를 짓는 데에도,

우리의 땀을 초국적 자본에 그대로 갖다 바치게 할 FTA 체결에도 사이좋게 합의하고 있다.


기껏해야 싸움박질 한 것이 한나라의 자립형 사립고와 열린우리의 영어마을.

그래봐야 그 둘은 어느 것이나 귀한 집 자제 분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뉴타운 개발이든 용산 아파트 건설 계획이든 그 또한 서민들의 보금자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네들은 언제나 사이가 좋았다.

너무너무 사이가 좋은 그들,

쓸데없이 깃발만 따로 그려 놓고 깃발 꽂기 싸움을 벌인다.


온통퍼런색깃발이면 어떤가,

온통누런색 깃발이면 또 무엇이 다른가.


어차피 그 깃발들은 모두 우리 삶의 심장을 찌르는 창날일 뿐인데.



3. 다시, 헤쳐모여


를 하겠지.

선거가 끝나기도 전부터 호들갑을 떨었으니.


큰일 난 것처럼 말하지 좀 마세요.

그거야 그 사람들 얘기뿐이잖아요.


지금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실컷 그네를 타고 있을 아줌마와

자기네 편이 이겼는데도 똥줄이 타기 시작했을 청계천 아저씨,

어떻게 자리 좀 바꿔보면 안 되겠니~

어떻게 편을 좀 다시 짜면 안 되겠니~


코미디를 준비하는 열린나라의 지긋하신 분들.



4. 수고하셨습니다.


그네들만의 잔치 안에서

어떻게든 평택 농민들의 아픔을 대변하고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드러내고자,

영세 상인과 장애인, 실업 청년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그리고 그 대안을 그려보이고자

애쓰신 민주노동당, 희망사회당 후보자님들과 운동원 분들

참으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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