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일을하러 간다/ 9월 20일

호 형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 대구에 있어요. 바쁜가 보네? 아니… 그냥 좀요. 추석에 서울 올라가지? 네. 그럼 추석 쇠고 동해로 내려와라, 일 시작하게……. 일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우며 하는 일이 아니라 진짜 일.

내게 전화를 준 호 형은 학교를 다니면서 마칠 때쯤 해서 벌써 동해에 있는 제재소에 목수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호 형 말고 진 아저씨와 일이, 준이 그렇게 넷이 팀을 짜. 졸업을 앞두고 학교 동기들은 이어지는 술 자리들에서 졸업 뒤에 대해 어느만큼씩 걱정과 초조함을 드러내곤 했었다. 물론 그야 내 놓고 얘기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두워진 표정이나 이리저리 일자리를 찾아 묻는 모습들로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보이긴 했지만, 대놓고 말은 안해도 졸업 뒤 어떻게 일을 할 것인지는 모두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한껏 흘린 땀에 대팻밥, 톱밥을 뒤집어 쓰고서 담배 한 모금 빠는 쉬는 시간이면, 여어 그래 너는 어떻게 할 건데? 형은 어디 일 맡았어요? 그래 걔는 학교 쪽에 남아 있는다냐……?


졸업을 했고, 한 주일이 지나 기능사 시험을 보고 나면서 대충은 저마다 갈 곳을 정해 놓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학교장이 운영하는 회사의 견습 목수로 남겠다 했고, 또 몇은 자비교육생으로 들어온 분이 지으려는 집의 공사를 맡아 그 일을 시작하려 준비했다. 동기 분들 가운데에는 입학 전 한옥이 아닌 일반 건축 쪽 일을 하다 온 아저씨들이 더러 있는데 그 분들에게는 공사라는 걸 따낼 줄도, 팀을 이끌어 공사 전반을 관장할 줄도 알아 그 분들을 도편수 삼아 그 팀으로 일을 준비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또 한 축이 앞서 말한 것처럼 제재소 목수로 들어간 진 아저씨와 호 형, 일이, 준이의 팀. 나중에 들어보니 그 제재소로는 이러저러한 일감이 적지 않게 들어오는지 아직 진로를 찾지 못한 동기 몇 사람도 그 제재소 팀 분들의 소개로 다시 새끼를 쳐 일감을 맡게 되기도 한 것 같고, 그 제재소를 통해 알게 된 연으로 어느 현장에 목수 몇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연결받아 일을 시작하게 되곤 한 것 같았다.


나에게도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들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나는 뭉실 대답을 하거나 돌려 넘겨 미루곤 했다. 그러면 형들은 너 어디에 같이 집 지으려 하고 있다던데, 하고 뭔가 계획이 있으려니 짐작을 하거나 아니면 쟤는 원래 글 쓰던 애였으니 이제 마치면 다시 글 쓰면 될 거라, 하면서 그 고민의 줄에서 아예 열외로 놓기도 했다. 그 모두가 다 맞는 말이기도 했지만, 졸업을 앞둔 즈음부터 나는 어울리지도 않게 사춘기 어설픈 방황 같은 걸 하고 있었으니, 실은 아무 생각도 없는 채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만 있었다.


오늘로 졸업하고 꼭 한 달이 되었다. 며칠 뒤 추석 밤이면 텔레비전에 나올 할아버지 방송을 찍느라 몇 날을 돌아다녔고, 실로 몇 달만에 서울에 올라가 여기저기 활동이 있는 자리와 친목이 있는 자리들에서 못 만나던 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책이라는 것들도 읽었다. 목수학교에 다니던 여섯 달 동안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를 않았으니, 책을 읽는 일은 그것이 재미가 있건 없건 그저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고, 폭식을 하듯 잡히는대로 꾸역꾸역 읽고 나니 벌써 질려 버리고 말았다. 나는 심상정을 응원했고, 친구가 사는 동네 홈에버 전경차 앞에 우두커니 서 그곳의 긴장을 구경하기도 했고, 학원에 바쁜 이제 겨우 여덟 살인 조카의 씽크빅 숙제를 도와주다가 나도 모르겠다 놀이터로 데리고 나가곤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그 동안에도 제재소에 있는 동생에게서 혹시 일 같이 하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더러 있었다. 역시 나는 뭉실 대답으로 응인지 아닌지 확실히 얘기를 못하면서(분수도 모르고!), 그저 목소리에나 반가워하면서 한 번 얼굴 보러 가겠다는 말이나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정쩡할 수 밖에 없던 것에는 백 가지도 넘는 이유가 있었겠는데, 그 중 하나는 이건 학교 수업이 아니라 현장 일인데 일도 잘 못하는 내가 혹시 그 팀에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 것도 있었고, 또 하나는 최소한 얼마간이라도 쳐박혀 ‘글’이라는 것이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아, 그래. 어젯밤 이 시간까지 앉아서 글을 썼다. 시작한지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제법 감이 좋아 흥분이 되고 있었다. 억지로 숙제를 쓰듯 쓰는 글이 아니라면, 그리고 뭔가 막힌 것이 뚫린 것 같은 느낌으로 쓰노라면 그 흥분되는 기분은 마음으로가 아니라 가슴 뼈로 느껴지는 것 같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이 가슴 뼈에 와 닿는 느낌. 정말 아닌 게 아니라 이번에는 글의 시작부터 그 중간들과 끝까지 다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었다. 전에는 안 그랬지, 그 전에 쓴 동화들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어느 한 장면, 혹은 몇 장면에 꽂혀 그것을 두고 이야기에 씨름을 하곤 했다. 그도 아니면 뒷머리를 때리고 가는 듯한 어느 구절 하나 그걸 붙잡은 채……. 그런데 이번에는 그저 시간 문제일 것만 같은, 그대로 성실하게 옮겨내기만 할 것 같은. 혹 모르지, 더 써 가다 보면 이게 아닌 것 같고, 더는 아니게 되어 막히고 주저 앉다가는 그만 파일 삭제를 눌러버리고 말지. 그러나 어쨌든 감이 좋은 것만은 맞아, 가슴 뼈 안 쪽으로 자꾸만 뭔가 와서 때리고 있잖아.


호 형 전화를 받고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추석 다음 날부터 바로 시작한다고요? 나랑 일이는 추석도 못 쇠고 제재소에서 준비하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바로 내려와. 얼마나 걸려요? 이건 얼마 안 걸려 삼 주면 될 거야. ……네, 갈게요. 특별히 생각해서 연락한 거야, 바로 내려와, 알았지? 네, 고마워요.


전화를 대답을 해 전화를 끊고도 망설였다. 내 마음처럼만 되면야 얼마나 좋겠나, 지금 쓰던 글 다 마치고 나서 이렇게 일감이 있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면. 어이구, 세상이 어떻게 지 좋은대로만 돌아가려구. 감이 좋은데, 지금 쓰고 있는 것만 마저 쓰고 싶은데…… 하는 마음 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삼 주면 된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다른 주문 계약을 알아보고 입찰 견적을 내고 있다 하니 일을 시작하게 되면 글쎄, 삼 주만 하고 마는 게 될까. 그것도 실은 호 형이 말한 것처럼 ‘특별히’ 생각해 내게 연락줬다는 걸 모르지 않는데. 아마 쉰 네 명 동기들 가운데 일 잘하기로 줄을 세우면 내가 오십 번 째 안에나 들 수 있을까, 일이 한참 서툴다는 걸 아는데도 형들이 불러준 것이다. 아무리 술자리에서 친했다 한들 팀을 이뤄 일을 하면 공사액으로 품값을 나눠야 하고, 공사기간이라는 걸 맞춰야 하는 것인데 친하다 하는 것만으로 불러줄까? 아마, 일을 잘 하지는 못해도, 늦게까지 남아서라도 하려고 하니, 그걸 봐 줘 그래서인 건지…….


감이 좋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쉬이 꺼지지 않았지만 이내 마음을 굳혔다. 감이 좋았으면 됐다, 그 경험만으로도 좋았다, 가슴 뼈에 와 닿는 그 느낌으로도 좋았다. 일을 하고 나면 아마 그 감은 더 좋아질 거야, 라고 믿기로 하자. 솔직히 언젠가부터 내 스스로의 희열이라거나 뿌듯함만으로는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뭔가 그것을 증명할 만한 것으로 내 놓아야 할 것 같은, 만들어내어야 할 것 같은, 결과물로 보여야 할 것 같은. 그러한 마음들에 밀리곤 했다. 적어도 부모님과 식구들 앞에라도, 적어도 나를 걱정스런 눈길로 보아주는 이들에게라도, 적어도 딱한 얼굴로 나를 내려 보는 눈길에라도, 적어도 안심시켜드리기 위해서라도……. 물론 아직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가, 감이 좋으면 되는 거지. 글에서든, 일에서든, 삶에서든, 감이 좋으면 그걸로.


한 달을 쉬었다. 나만 쉰 것이 아니라 자동차 짐칸에 실린 냉이대패와 냉이끌들, 그리고 안전화와 일옷들도 구겨진 채 쉬고 있었다.연장에 날부터 세워놓아야겠다. 긴 궂은 날씨에 쳐박혀 눅눅해진 신발도 햇볕에 내다 말리고, 일할 때 입을 옷들도 다시 챙겨야지. 전동 공구를 파는 싸이트 들을 둘러 보았다. 어떻게 될지 몰라 아직 하나도 갖추지 않고 있었는데 당장 다 마련할 수는 없고 엔진톱을 파는 곳들을 둘러 보았다. 아, 이제 정말 일을 한다. 잠깐 ‘목수일기’라는 걸 이어 쓸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그건 아마 못할 것이다. 적어도 팀을 짜 일을 하는 건데, 돈을 받아 일을 하는 건데, 그 일이 나 때문에 늦어지게 되어서는 안 되잖아, 밤늦도록 일기 따위를 쓰느라 컴퓨터에 앉았을 수는 없겠지. 그래, 손이 좀 더 섬세하게 닿아야 할 곳들은 잘 하는 형들이 마감질을 하면 될 거야, 그에 앞서 거칠게 깎고 잘라내는 거라도 해 넘기는 거라면, 크게 실수만 하지 않으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요 며칠 글을 쓰겠다고 않아 있을 때처럼 지금 가슴 뼈 안 쪽으로 뭔가가 와서 자꾸 때리고 있잖아. 아, 정말 간다, 목수 일을 하러.


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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