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톱

냉이로그 2007. 10. 2. 19:51

치목 (10월 2일)

여섯 시 반에 알람이 울려 일곱 시에 일을 시작하고, 여섯 시 저녁 밥이 나올 때 공구를 정리한다. 열 시도 안 되어 잠이 든다. 아홉치 아홉자 기둥 열 두 개를 깎았다.

이곳 (9월 29일)

내가 일하는 곳은동해시 북평공단이라는 곳에 있는 대창목재라는 제재소. 그렇다고이곳 목수들이 제재소 직원이 되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제재소에서 숙소와 치목장을 쓸 수 있게 해 줘 이곳에 머물며 일을 하는 것이다. 집을 짓기 위해 각 부분의 부재를 치목하는 일은 집을 지을 곳에서 하는 게 아니라 어딘가 일을 하기에 좋은 곳에서 한다. 그런 뒤 다 깎아 준비를 한 부재들을 트럭에 싣고 집 지을 곳으로 싣고 올라가 그곳에서는 조립을 해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목수들에게는 나무를 바로 사서 치목할 곳이 있으면 좋은 것이고, 제재소 처지에서도 그렇게 목수들이 일할 수 있게 해 주면 거기에 드는 나무를 대 줄 수 있어 좋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추석이 지나 며칠 뒤나는 이곳으로 왔고, 함께 일할 목수 친구들과 이곳 치목장 앞 숙소에서 지낸다. 우리 말고도 다른 팀 목수들이 또 있고, 그리고 제재소 직원들.

이것 (9월 27일)

엔진톱, 볼수록 예쁘고 마음에 드는 녀석. 이것을 찾기 위해 청계천에서 하루 허탕, 그리고 다음 날 다섯 시간 그곳을 헤맸다. 인터넷으로 사지 않고 발품을 팔기를 정말 잘했어. 병수 아저씨가 자주 찾는다는 그 엔진톱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톱들을 들어보고, 주인 아저씨에게 그것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고민고민 끝에 녀석을 골랐다. 그리곤 그곳에서 사용법과 관리법, 움직이지 않을 때 손보는 법, 주의해야 할 것들까지한 시간 넘도록 배울 수 있었다. 아, 지금도 녀석의 시동 손잡이만 보면 당기고 싶다. 부릉 부르르르릉!

그리곤 목수학교 친구들이 자주 다녔다던 세운상가에 있는 덕영상사라는 곳을 물어물어 찾아간 뒤 곡자와 먹통, 넓은 한치팔푼 끌과 좁은 세치끌, 그리고 가지고 있는 다른 끌에 끼울 베어링 따위들을 샀다.

무얼 사러 돌아다니면서, 무얼 사면서, 그리고 무얼 사고 나서 그토록 가슴이 뛴 적이 없었다. 그 공구 상가를 돌아다니는 내내 아마도 내 눈은 한겨울 새벽 별처럼 반짝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망설이며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 그런 기분은 생전 처음. 쇼핑 좋아한다는 사람들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아, 이런 거구나, 옷 사러 돌아다니고, 뭐 사러 돌아다니고, 그런 게 이런 거구나하며처음 느끼는 기분. 처음 노트북을 사던 때도, 자동차라는 것을가지게 되고도 가슴이 뛰어 본 적은 없어. 엔진톱 이 녀석에게 사랑스런 이름을 붙여 주고 싶은데 아직 고르질 못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곳 제재소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 어제는 전기대패도 하나 사고 말았다. 이것들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부르다. 돈을 많이 썼다. 탈탈 털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다.

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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