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형만들기 4

괜히 건드렸다. 두어 시간이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여섯 시간을 씨름. 이럴 시간이 없다.이른 아침에 양양으로 올라가야 한다. 실은일요일부터 일이 시작되어목수 친구들에 도와주러온 형님들까지 일을 하고 있다.생각보다 일이 빨리 시작된 것이다. 주말에야강의들으러 서울다녀오는 것을미리 말해두고 있었고, 갑작스레 일이 시작된 바람에적어도 화요일에는 아침 일찍 올라가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있던 것이다. 현장에서는 일요일 터닦기와 축대 쌓기기까지 해놓고 월요일에는 기초 공구리를 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일에서는 일의 총괄을맡다시피 하였으니현장을 떠나 있는 동안 계속 전화벨이 울렸다. 강의를 듣고 있는 동안에도 철근을 주문해달라 전화가 왔고, 숙소 부분이나 잠자리 이불 문제 같은 것에서부터월요일 작업에 필요한 준비 물품 구입 같은 것과 관련해서도 계속 연락이 왔다. 현장 바깥에 있으니더욱 어려운 일이다. 생각보다 반나절 정도 공정이또 더 빨라지기도 하는 것 같아 기초를 놓기 전 배관 설비 쪽 연락도 해야 했다. 가설 업체에 연락해 기초 가다에 필요한 유로폼을 대여해야 했다. 한의원에서 침을 꽂고 있는데 계속 전화를 받아 연락을 해야 했고, 그래서 침을 맞다 말고그만일어나야 했다. 그러니내일, 아니 오늘은 아침 일찍 올라가기로 하고 있었으니 그 전까지 해야할 일들부터 했어야 했다. 자료들 구하게 된 것, 난지도가 제본을 맡겨주기로 했으니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기도 해야 할 테고, 어느 잡지에 글 하나를 쓰기로 했는데 글쎄, 못 쓸지도 모르겠지만 해보기는 하겠다고 한 것도 하나가 있다.일요일흥인문에 가서 찍어온 사진들도 정리글까지는 못쓰더라도 사진들이나 옮겨놓기는 해야할 텐데. 이제 현장으로 가게 되니 두달 여를 지내게 될 연장들이며 옷가지 따위 이삿짐도 꾸려야 할 텐데, 그리고 현장에서 일을 하더라도일을 마친 저녁 숙소에서 뭐라도 들여다보려면 공부할만한 것들도 따로 챙겨야 할 텐데……. 도무지아무 것도, 아무 것도!맨 처음 계획대로 일주일 뒤 일이 시작한다 해도 시간이나 마음에 여유가 있는 건 아닐 테지만, 이렇게 갑작스레당겨지는 바람에 더욱 뒤죽박죽이었다.

익공 모형을 조립하고 난 뒤 하나만 더 해보자며 꺼낸 것이 화암사 극락전 공포도였다. 하나하나 해갈수록 재미있고 또한 뿌듯한 마음에 그 뿌듯함을 한 번 더 느껴보자는 심사였다. 그러나 이건 손을 대는 게 아니었다. 나는 하앙에 대한 공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몇 번이나 다시, 다시, 다시 분해하여 처음부터 다시, 또 다시 해야 했는지 모른다. 그러고도 이게 아닌 것 같아 또 다시……. 저녁 밤 열두 시를 넘겼고, 새벽 두 시, 세 시를 넘겼다. 아침에는 양양으로 넘어가야 한다. 바로 일옷으로 갈아입고 가다 엮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는 거다. 성질이 나서라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미칠 노릇, 갑갑한 노릇. 게다가 이 모형은 꽉 조여지게끔 되어 있질 않아 고정을 시키려면 접착제를 써야 하는데, 앞으로도 계속거듭 만들어보면서 연습을 하려고 일부러 접착제를 쓰지 않고 있으니실컷 만들었다가 제 무게에 못이겨 무너져 버린 일도 줄잡아 스무 번이 이상이다. 조립을 잘못해서 다시 뜯어야 하는 것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인데, 실컷 만들어가다가 스스로 허물어져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게 되곤 하면 정말 머리에서 열이 나는 것만 같았다.

완성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즐겁지도, 뿌듯하지도 않았다. 하앙에 대해서는 아직 나는 제대로 알지를 못한다는 것 하나를 똑똑히 배웠다.

처음에 이렇게 부재들을 늘어놓을 때만 해도 신이 나 있었다. 우와, 무슨 부재가 이리 많나 하면서 말이다.

맨 처음에는 기둥에 창방. (몰라, 플래쉬가 터지는 바람에 벌겋게 나와버렸어.ㅠㅠ 에이 뭐, 그러거나 말거나.)

창방 위에 평방. (평방이라는 부재는 앞서 세 가지 모형을 조립할 때까지만 해도 나오지 않던 거였다. 다포 양식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평방이, 여기 하앙 양식에도 쓰이고 있다.)

평방 위에 주두.

주두 위에 도리방향 소첨차.

소첨차 양끝에 소로들.

소첨차와 십자결구할 살미첨차. 살미의 끝은 아래로 강직하게 내뻗은 쇠서 초각. 이렇게 초각이 된 살미첨차를 여기에서는 제공이라 한다. 그러니 이것은 일제공. 제공의턱이 진 자리들에 소로를 끼운다. 하나는 촉으로 맞춰 끼우고, 다른 하나는 촉이음이 없이 홈에 꽉 끼우며 맞춘다.

소로들을 끼운일제공을 소첨차와 십자결구할 수 있도록 맞춰 끼운다.

책상 위에서 하니까 어지러워서 방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일제공까지 맞춘 모습.

위에서 본 모습.

제공의 앞쪽 끝에 소로 위에 소첨차를 올린다.

뒤쪽 소로 위에도 소첨차.

주심열에서는 소첨차가 이미 있었으니 대첨차가 올라온다.

그렇게 올린 소첨차와 대첨차 끝 부분들에 모두 소로를 올린다.

그렇게 소첨-대첨-소첨들을 한 번에 직교하여 결구하는 이제공을 맞춰 끼운다.

이제공까지 올린 모습. 이제공 역시 쇠서 초각을 하고 있다.

이제공까지 올려놓고 밑에서 본 모습.

이제공까지 올려놓고 위에서 본 모습.

다시 이제공의 양끝 턱이 진 자리들에 소로. (일제공에서 소로를 올리던 것과 같다. 단지 이제공은 일제공보다 안팎으로 출목 하나만큼씩 더 길어졌을 뿐.)

이제공의 양쪽 끝 소로를 올린 부분에는 소첨차들을.

출목소첨차들이 있던 곳 위에는 대첨차들을.

주심열에서 대첨차의 자리 위에는 출목가로재를.


그 위로 삼제공이 출목첨차들과 출목가로재들 모두와 결구하며 올라간다.

삼제공까지 올라간 모습.

각도를 조금 바꾸어서봤을 때.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역시 삼제공까지 올린 상태에서)

삼제공 위에서 다시 내출목의 끝에서부터 소첨차(소첨차라기에는 소첨차보다는 조금 크고 대첨차보다는 조금 작은)를 올린다.

내출목에서 소첨차 안쪽으로는 대첨차(대첨차라기에는…… 대첨차보다는 조금 큰)를 올린다.

그 밖의 열에는 출목 가로재들을 올린다. (외2출목 자리에는 아직 아무 것도 올리질 않아.)

그런 뒤 사제공을 올린다.

사제공까지 올린 모습.

사제공까지 올린 모습, 측면에서 봤을 때.

사제공까지 올린 모습, 정면에서 봤을 때.

사제공까지 올린 뒤, 비워두었던 외2출목 자리에 제공 위에서 출목을 올린다. (다른 출목보다 춤이 낮았다.)

이제 대보를 올릴 차례인데, 이렇게 하나하나 올리려면 조립하고 있는 모형이 지탱할 수가 없다. 그러니 여기부터는 조립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하나하나 사진으로 담을 수가 없다. 옆에다 내려놓은 것이 대보, 그리고 대보 밑으로도짜여지는 출목.

말하자면 이렇게 대보가 사제공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 상태에서는 손을 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덩어리지게 분리하여 방바닥에 내려놓고 어떻게 짜여지는가만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대보에 하앙까지 조립. 하앙의 맨 바깥쪽(왼쪽)에 방형의 외목도리가 있고, 원형의 주심도리와 맨 안쪽(오른쪽)에 방형에 가까운 팔각형의 중도리가 올라간다.

그 세 덩어리로 나눈 것을 모두 조립하니 완성. 공포의 한 부분만을 조립한 거기 때문에 홀로 서 있을 수가 없어 대보 밑으로 활주와 같은 보조기둥 하나를 받쳐 모형을 세울 수 있게 했다.

장장 여섯 시간이 넘는 씨름. 얼마나 많이 헐었다 다시 끼웠다 했는지 모른다. 내가 미쳤지, 이걸 왜 손을 대가지고는. ㅠㅠ 그렇게 수도 없이 다시 맞추고, 다시 만들고 했으니 아예 처음부터 새로 조립해보면 이번에는 제대로 또렷이 알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미 지금도 시간이 너무 늦었어. 하지만 조만간 다시, 제대로 다시 해보고 싶다. 물론 시험 전까지는 수도 없이 다시, 다시 해야겠지만.

으으, 복잡하고 징그러워라. 사실 여기에서도 제대로 정리하고 지나가자면 하앙 양식이 발생한 배경이나 양식의 특징,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지게 된 까닭 들에 대해 한 번 더 확인하면 좋겠지만 오늘은 무조건 여기까지, 이만. ㅠㅠ (하앙 양식에 대해 그나마 조금 정리를 했다면 정림사지 답사를 하면서 복원한 강당 을 보면서 살펴본 대목들이 있고, 언젠가 하앙 양식에 대해 인터넷에서 본 자료를 옮겨본 일이 있다.)

녀석들 모여 서 있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좋기는 하다. 암튼 조금만 더 기다려봐라. 눈감고도 조립할 수 있게끔 할 테니까.

그나저나 큰일이다. 눈이 자꾸만 감겨. 두 시간 뒤에는 민방위 소집받으러 가야 하고, 그러곤 세 시간을 운전해 양양으로 올라가야 한다. 아, 이 일을 어째……. 아, 그런데 집을 짓는 내내 이럴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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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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