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공포 모형을 만들었다. 봉정사 극락전이나 부석사 무량수전을 만들 때는 없었던 헛첨차라는 부재가 새로 쓰였고, 무엇보다 우미량을 조립해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다보니 기둥 하나만으로는 그것들이 표현되지 않아 평주와 내진주, 두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툇보와 계량, 파련대공, 우미량에 대보 끝 부분까지 조립하는 걸 해야 하니 전에 만들었던 것보다 모형 자체가 크고 복잡했다. 도리만 해도 외목도리부터 주심도리, 하중도리, 중중도리까지 다 표현되고 있는. 소로만 서른두 개가 쓰였으니 나름 복잡한 과정이었다. 처음에 살짝 감을 못잡고 헤매었으나 곧 침착하게 주심 라인의 부재들부터 찾아 올라가다 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는 있었다.

수덕사 대웅전에 대해 물어보는 건 이천육 년 시공 문제로 나왔던가. '고려시대 사찰의 대웅전을 보수하려 한다. 상량까지의 시공 절차와 상량 봉안, 그리고 상량 이후의 시공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라는 거. 문제에서는 구체적으로 수덕사 대웅전을 짚지는 않았으나, 고려시대 사찰의 '대웅전'이라면 현존하는 것은 수덕사 대웅전 밖에 없으니 그것을 중심으로 시공 과정을 썼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사실 교수님의 문플 강의를 듣기 전에는 방향을 그렇게 잡지 못했더랬다. 고려시대 사찰이라 했으니 봉정사 극락전부터,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을 통틀어 그 시대 사찰 건축의 구조 특징을 가지고 문제를 풀었더랬다. 쩝. 사실 그 문제 뿐 아니라 최근 문제들의 경향은, 문제 자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부터가 바로 문제 풀이의 시작이 되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출제자가 묻는 핵심, 그 포인트를 찾는 것. 문제로 주어진 표현 안에 숨겨진 출제자의 의도. 그것을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해 수험자 스스로가 문제의 범위를 좁히고 초점을 잡아 그 의도에 정확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아무튼, 수덕사는 내가 그 동안 보아온 절들 가운데 한 눈에 반해버린, 가장 예쁜 건축물이었다. 아, 그 담장 앞에 서 있을 땐 그야말로 한 점 흔들림 없는 사랑과 평화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은.

이처럼 수덕사에는 '소꼬리'를 닮았다 하여 '우미량'이라 이름 붙은 곡재의 보 부재가 도리와 도리들 사이에 힘찬 폭포수가 떨어지듯 이어져 있다. 도리들의 좌우 이격을 잡아주면서 도리들을 모두 하나로 이어지게 해주는 부재. 첨차 끝의 화려한 초각과 헛첨차 안쪽부터 파련 대공의 화려한 초각들은 그 시대만의 섬세한 손길이다. 그리고 맞배지붕 집의 취약한 횡력을 보강하기 위한 방형의 하중도리. 도면을 보고 수 차례 그려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부재들을 하나하나 맞춰보니 그 실감이 또 다른 느낌으로 남았다. 그래, 우미량이 이렇게 장혀와 십자결구를 하면서 도리를 받고 있다는 건 잘 모르고 대충 넘기고 있질 않았냔 말이다. 하하, 기분 좋다.



좀 크게 찍은 사진. 외목도리에서 주심도리, 방형의 하중도리 선까지.

요기는 그 뒤로 해서 하중도리에서중도리 부분.

아, 실제로 저 위에 올라 메질을 하고, 서까래를 걸고 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 ^


그 동안 만들어본 아이들 한 줄로 세워놓고 기념촬영을 했다. 맨 왼쪽부터 부석사 무량수전, 이익공,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이것 말고도 하앙식 구조인 완주 화암사 모형도 만들긴 했는데, 그건 서 있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은 다시 해체되어 있다. ㅠㅠ 하여튼 얘네들 사남매 모아놓고 보니 나름 보기가 좋네.

아, 그런데 맨 오른쪽 봉정사 극락전 공포 모형은 잘못되어 있다.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기둥머리 주두 위에서 소첨차 십자결구와 대첨차 십자결구가 잇달아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봉정사 극락전은 그렇게 되어 있질 않거등. 소첨의 십자결구 위로는 보방향 대첨차와 가로방향 인방재가 결구하고 그 위에서 대들보의 뺄목과 대첨차가 결구해야 하는 것인데, 이건 모형 조립품이 잘못되어 나왔어. 으이씨, 그래놓고 그렇게나 돈을 많이 받다니. 뭐, 어쨌건 어디가 잘못되어 있나 따지며 만드는 것도, 것도 공부가 되기는했다.

이제 하나 아직 만들어 볼 거 남아있는 건 경복궁 경회루. 부재 상자만 해도 얘네들 두 배는 되니 어찌 되려나 기대가 된다. 다포식 공포로는 다포식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 구조를 조립하면서 해보기는 했지만, 제대로 다포를 조립하기로는 처음이겠다. 경복궁 경회루에 대한 문제는 뭐가 나왔더라. 이천일 년 구조 문제 '경회루 같은 대규모 팔작지붕의 합각부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주요부재와 결구방식을 쓰시오'라는 문제였다. 어우, 어우, 어우. 그게 어떻게 되는 거였더라. 이 문제는 그저께 문제를 다시 풀어보기는 했더랬는데, 아, 아, 아 그거. 아무래도 그거는 영조규범에 나온 구조 도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여우비 / 이선희

아무튼 얘네들 상에 줄지어 세워놓고 기념촬영을 하면서얘들 사남매하고도 화이팅을했다. 두비루비루 두비루비루 두비루비루랍바 ♪잘 해 보자, 얘들아!

'굴 속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합숙  (6) 2010.09.08
사람들  (6) 2010.09.06
오백 가지  (10) 2010.08.29
무궁화 1642  (4) 2010.08.22
공책  (0) 2010.08.09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