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굴 속의 시간 2010. 9. 6. 02:54

1. 최목수


 사진기에 있는 걸 옮기는 길에 이 사진도 함께. 상상마당에서 공부하던 일요일반 교실에서 만난 최목수. 무척이나 열심히 하는 아우다. 가끔은 전화를 걸어 내가 잠시 누워 눈 붙이고 있다 하면 "형님, 그러시면 안 돼요오." 하면서 나를 벌떡 일으키게 해주곤 하는. 이 아우는 나이가 서른인데 목수로는 벌써 오년 차, 나 같은 초보 목수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목수 생활을 했다. 그 전에는 무대디자인을 했다던가. 미대를 다녀 무대디자인을 전공하고 그 일을 하던 중, 덕수궁에서 연 행사의 무대를 맡아 디자인을 했다가 자기가 디자인한 무대가 그곳 고궁의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 행사를 마치고 몹시도 마음이 좋질 않았다지. 그래서 한참을 그 앞에 앉아 있다 보니 그곳에 있는 궁궐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 길로 덕수궁 관리사무실로 찾아갔다던가. 그리곤 바로 그 건물들을 맡아 공사하는 도편수 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그러곤 그 길로 바로 짐을 싸 소개받은 곳으로 가 목수 일을 시작했다던. 그렇게 다섯 해를 꼬박 일판에서만 살았다던, 막내 생활을 혹독히도 겪으면서 그 시간들을 견뎌마지막 현장에서는 직접 먹을 놓다 나왔다던.


 그러한 얘기들만으로도 무척이나 매력있고 정이 드는 친구였다. 또한 이 친구도 잘 따라주고 하여 우리 둘이는일요일 공부를 마치면 홍대 놀이터거나 주차장 벤치에서 깡통 맥주를 까 먹곤 했다. 꼭 합격하고 싶다고, 정말 올 해 꼬오오오옥 합격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 친구 덕에 나까지 덩달아 더 기운을 내곤 했다. "형님, 저는 이번 시험 꼭 합격하고, 진짜 제 또래 다른 아이들처럼 여자 친구도 사귀고 싶고 그래보고 싶어요. 정말 저는 다른 아이들 옷 사입고, 여자 친구도 만나고 그럴 때, 그런 거 한 번도 못해 보고……" 하는 말을 할 때면 그 모습이 좋아보여 웃음이 지어지곤 했다. 정말 이 친구, 처음 공부하러 나오면서 보니까 지하철 표 끊는 것도 제대로 할 줄 몰라, 다 쓰고 난 표 오백 원 거슬러 받는 것도 모르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 친구가 얼마 전 영월에 내려와 며칠을 함께 지냈다. 같이 도서관엘 가고, 같이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 같이 공부를 하고, 딱 한 잔만이라며 딱 한 잔을 하기도 하고. 얼마나 빡세게 하루 스케줄을 돌리던지, 그거 따라 하느라 내가 아주 고됐다. ^ ^ 그 덕에 감기 몸살을 된통 앓았는지 몰라. 암튼 그러다가 그만 올라가려고 다시 가방을 챙겨 나가는 길에, 인증샷 한 번 찍자고 해서 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포즈를 잡아본 것이다. 에이, 그 때 마지막 날 내가 몸이 안 좋아서 힘들어하던 게 못내 마음에 걸린네. 그 뒤로는 내가 전화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아직 통화 한 번 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무지 열심히 하고 있겠지. 그래, 꼭 해내길 바래. 나도 열심히 할게.


2. 합숙


날이 새면 그동안함께 공부해오던 분들 몇이 영월로 내려온다. 내가 아는 토요일반 전교일등 ^ ^길목수 형님, 그리고 한옥학교를 다닐 때그곳에서 부교수로 계시던 원선생님, 이미 문화재보수 단청기술자이면서 보수 부문 기술자 공부를 더 하고 있는 누님 한 분. 여기에 길목수 형님이 누구 한 사람 더 데리고 올지 모른다고 하는데 그 분 또한 현직 단청기술자라던가. 글쎄 나는 누군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데 그 분은 나를 좀 안다고 그랬다던데, 그거야 뭐 내일 와 보면 알겠지.


암튼 이렇게몇 사람. 여기에 최목수도 함께 하기로 했는데, 최목수는 지난 번 미리 영월에 다녀가기도 하면서 구월 모임에는 아무래도 어렵겠다고 했으니, 그렇게 네 분이이리 내려오기로 했다. 모르긴 몰라도 다들 나는 쨉도 되지 않는 고수들이다. 그리고 이 공부를 해가면서 내가 운 좋게 만난 사람들, 정말 큰 도움을 받고 있는 분들. 세상에 내가 한옥학교 다니면서 교수님으로 모신 분하고 같이 한 강의실 수험생으로 만날 줄이야 꿈에야 생각이나 했겠나. 원선생님을 만난 덕에 나는 큰 발품 없이 필요한 도면이며 논문, 그 밖에 접근이 어려운 자료들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공부를 해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의지가 되어주고 있는 길목수 형님.

 이제 내일, 아니 몇 시간 뒤면 이곳으로 모인다. 나야 뭐 아직도 박박 헤매고 있기만 하지만, 그 분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하고 있다. 생각하면 참 운이 좋다. 오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던 것부터 하여 원선생님을 한 교실에서 만나게 된 일, 길목수 형님, 그리고 최목수 아우를 만나 함께 공부를 해갈 수 있게 된 것까지. 생각할수록,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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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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