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장 꽃

냉이로그 2010. 9. 20. 17:20

깜장 꽃

백석을 안 뒤로 아마 추석이거나 설 같은 날이 돌아올 때면 나는 그의 시집을 뒤적이는 것으로 명절치레를해왔을 것이다. 엄매아배라는 말이 정겨워, 그 손을 잡고 따라나서는 진할머니 진할아버가 있는 큰집 풍경이라는 것이, 나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으면서도 어쩐지 낯설지 않아, 그러다간 그러다간 장지문틈으로새어 올라오는 무이징겟국이 지금 막 내 코끝에도 와 닿는 것 같아, 그 뜨뜻한 국물 생각에 침을 넘기면서.그런 명절을.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먼저 찾아들게 되는 시가 있었으니.

추석 / 김환영

어미 고양이 어디 가서

북어대가리도 물어 오고

날고기도 물어 오고

부침개도 털레털레 물어 오고,

양지녘 새끼 고양이들

고깃점 하나씩 입에 붙이고

씹었다 뱉었다 쥐잡이 시늉하며

빈집 마당에서 와릉와릉 논다.

재작년이었나, 그 때 한참 달마다 피네 아저씨가 발표하는 동시들을 <<글과그림>>책으로 보고 있을 때,이 시에서 나는 최고를 외쳤더랬다. 그리고는아저씨에게도 말을 했을 거야. "우아아, 이게 제일 좋아.요 몇 줄에 정말 추석 풍경이 다 담겨 있잖아, 진짜로 나는이거 보면서 백석의 그거 있잖아 무이징겟국 나오는 그거,여기에도 그만큼이나 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시에서여우난골족이라면동시에선이거야!"

바야흐로 추석, 도서관 나가는 길 이 조고만 영월 읍내의 시장통 길이며 하나로마트 앞 작은 길마다 차들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터미널 주변에 오르고 내리는 분주한 사람들.지난 설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엄마가 내려온다 한다.나이 마흔이 다되어수험생이 된 어설픈 아들 때문에 칠순이 다 된 엄마는 아직도 그 뒷바라지를 놓지 못한다. 말이야 국이라도 끓여주겠다며 내려오는 거겠지만, 아마도 엄마는 집에 들어서게 되면이불 호청부터 새로 뜯어 빨려 할 것이고, 냉장고며 찬장이며 한바탕 뒤집고 시작하겠지. 그리곤내 무딘 걸레질이 닿지 못하던구석구석 찌든 먼지들을닦고 치우고. 그렇게 며칠을나이든자식 식모살이나해주다 올라가게 될 것이다.그에 생각이 미쳐 벗어놓은 옷들을 주섬주섬 모았다. 세탁기를 돌리고, 걸레를 비벼 빨고. 그럴 걸 뻔히 알면서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엄마가 올 때까지 가만 있자니 너무너무 찔리잖아.아, 그래도 엄마가 온다니까 좋구나. 엄마가 오면은 나도 쟤들 야옹이네처럼 맛난 것 먹을 수 있겠다. 어젯새벽에는 글쎄, 하도 출출하여 뭐라도 먹을까 하고 냉장고를 뒤지는데 암 것도 없고 양배추 반통 덩그라니 있기에,동영상 강의틀어놓은 것 앞에 앉아그걸 통째로 들고마요네즈 발라가며 어적어적 다 잡숴버렸단 말이지.하필이면 바로고 전에 이 시를 찾아 읽기도 했는데 말이지.

* 제목에 쓴 <<깜장 꽃>> 곧 출간될 피네 아저씨의 동시집인데, 거 참 디게디게 뜸을 들이고 있더라요. 구월엔 나온댔으니이게 곧 나오시겠지.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님  (0) 2010.09.24
어떤 생  (2) 2010.09.23
사자  (0) 2010.09.18
빨강  (6) 2010.09.15
소식  (2) 2010.09.09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