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

냉이로그 2010. 11. 25. 01:53

가끔 혼자 들어가 술 먹는 집이 생겼다. 뭐 그렇다고 단골은 아니. 어떤 사람들은 단골집이 좋다고, 단골집 예찬을 늘어놓곤 하지만 나는 거꾸로 그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다가라도 그 집 아저씨가, 아님 아줌마가 날 단골 손님으로 여겨 반찬 하나, 안주 하나 더 놓아주면 이상하게 그 다음부턴 거기엘 가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밤 늦어 도서관에서 내려오다, 오늘은 좀 마셔줘도 되겠다, 열심히 했으니 나한테 상 좀 줘야지, 하고선 술집을 찾아 고르다가도 요사이 거푸 몇 번 들어갔던 집은 피하게 된다. 아, 주인 아저씨, 혹은 아줌마가 맨날처음 온손님인듯 맞아주기만 한다면 날마다 고민없이 그 집을 다닐 수 있으련만.

기껏 한다는 게 술드립이다. 북에서 도발이 있었고, 서해바다 섬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저 아랫녘에서는 자동차 바퀴 끼우는 일을 하던 노동자가 몸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또 그 얼마 전에는 지지지지베이베베이베스무 개 나라 자본대리인들이 일박이일 엠티를 한다고 난리를 쳤더랬다. 그런데도 기껏해야 술드립. 그러나 그거, 그거, 그거가뭐가 달라. 나의 술드립과 그들의 도발과 눈물겨운 절규와 지지지지베이베베이베 엠티는 결국 하나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을.미안하다. 그러나 슬픔도 분노도 잃었기 때문은 아니다. 문제는슬픔의 절대값이 아니라 그구체적 진실,굳이 나는 연평도를, 울산을, 그리고 이제와 어쩌지도 저쩌지도 못하는 저 엠비를 증거삼고 싶지않다. 엠비를놀려먹는 일이야 쎄스코가 충분히 잘 해주고있지를 않나.

저마다 손익계산서 두드리느라 얼마나들 바쁘겠나. 그리곤제세력들마다 각급대변인이나아이콘이 될만한 이들을입단속, 표정관리 시키느라 정신들이 없겠지. 이 정국에서 한 마디 잘 못했다가는 한 방에 훅 가버리고 말 테니. 부디 진보진영이라 일컫는 그 판에서만큼은 그 따위 계산에 몰입하지 않기를. 아, 그런데도 경계도시2에서 봤던 어느어느 장면들이 왜 이렇게 자꾸 떠오르는 것인지. 민노당 이정희 언니는 이번에도 자국의 자기결정권, 내정간섭 반대 드립 침묵으로 그냥저냥 넘어가려 할까. 아님, 엔엘엘이니 호국훈련이니 하는 그런. 미국이(그러길래 오바마 기대하지 말랬지.), 엠비가 입 싹 닦고서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거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 하여 저 미친 짓거리를 어디까지 옹호할 수 있겠나. 북이 진보고, 민족이 선이고, 미국과 남쪽의 괴뢰정부는 악이다 라는그 지긋지긋한프레임은 이제 그만~! 보라돌이도 알고, 뚜비도 알고, 뽀도 다 아는 거.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선과 악은, 진보와 보수는 누가 했는냐에 따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 말해져야 함은지당한 일이란 걸.

북녘의 새로운 지도자 동지로 낙점되었다는 당중앙 군사부위원장 김정은. 접대어디서 보니까 나하고 꼭 열 살 차이라 그러더라.빠리의 연인정은이 언니라면 내 안에 니가 있겠다만, 솔직히 니가 어떤 앤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언제 한 번 만나 소주나 한 잔 하면 어떨까 싶더라. 이러는 거 아니야, 이러는 건 정말 아니야. 아무리아무리 애를 써서 편을 들어주고 싶어 해도 편을 들어줄 수가 없는 거, 그거 모르겠니? 그래 뭐, 너 붙잡고 이런 소리해야 소용없다는 거 알지만내 한 잔 했다, 걍 니가 이해해라. 혹시라도 니가 지도자 교육 받으면서 전략이니 전술이니 어쩌구 하는 거 머릿속에 채워넣었다면 그런 건 일찌감치 분리수거해버리기 바래.전략이니 전술이니 하는 것들을 작개판 위에서만 바라볼수록 인간에 대한 연민은 잃기 마련이거든. 휴머니즘, 돋까라고? 부르조아적 감상 따위 치우라고? 니네 할아버지한테 물어봐봐. 주체사상은 애초 사회과학이 아니었잖니. 인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자 함이었지. 그런데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채 인류만을 사랑해서는, 백성의 목숨을 버린 채 민족만을 사랑해서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에 대한 숭고함을 저버린 채 역사발전의 서사만이 모든 답을 줄 거라 생각해서는, 그건 이 아랫동네 다 말아먹고 있는 엠비의 막돼먹은 사명감과 그리 다르지 않아.닮은꼴이라는 거,그거 모르겠니? 너랑 같이 한 잔 하고 싶구나, 정말.

어, 이게 아닌데. 아까 도서관에서 내려오다 들른 그 술집, 좋았다 자랑질이나 하려 그러던 거였는데좀 새버렸다.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니.하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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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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