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에서 영월

감자로그 2017. 8. 21. 18:38

 

 

 육지엘 올라가던 날이었다. 감자는 언제나, 아빠아 엄마아 지슬이이 우들이이 하고는 꼭 빼놓지 않고 상근이형아아, 하고 난 다음에야 우리 가족! 하면서 셈하기를 좋아해. 그 순서야 매번 바뀌니, 엄마아 다음에 상근이형아가 올 때도 있고, 지슬이 우들이 다음에 상근이 형아가 올 때도 있어. 그만큼이나 감자에게는 근이가 이미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우리 가족. 근이가 내려오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감자품자 두 녀석 모두 근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쫓아들어가. 언젠가부턴 근이도 일을 나가기 시작하면서, 아빠 출근할 때처럼이나 근이 형아가 일나가는 거에 통곡을 하며 울음을.

 

 

 그러던 근이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 모습에 달래는 왈칵 울음이 나올 것 같다던데, 녀석들은 모가 신이 나는지 형아가 가방을 싸는 곁에서도 좋다고 까불어. 그러고 난 다음에는 감자품자도 영월집이랑 외갓집에 다녀올 짐을 싸면서, 우리 다섯 식구, 비행기에 오를 준비를. 그래, 아직까지는 형아랑 안녕을 하는 건 아니니까.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고, 경북 영양 산골 형아네 엄마한테도, 강원도 영월 우리가 살던 집에도, 형아랑 같이 갔다가 거기에 가서야 인사를 할 거니까.

 

 

 비행기를 기다렸어. 형아 엄마네 집에 가는 길, 그리고 영월, 우리를 한 식구로 만들어준 집에 가는 길, 그리고 엄마의 고향, 감자가 태어나고서는 한 번도 가보질 못한 울진 외갓집엘 가는 길.

 

 

 아무래도 밥을 먹거나 그러진 못하겠다 싶었다. 대구에 비행기가 떨어지는 게 오후 한 시 너머, 거기에서 영양까지만 해도 두 시간 가까이는 걸릴 테니, 아가들과 함께 다니는 길에 밥때를 거를 수는 없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충 때우더라도 이미 끼니는 해결하고, 영양집에 들었다가도, 하룻밤을 자고 나올 게 아니라면 세 시간이 넘는 영양-영월 길에, 저녁을 먹고 나서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밥상이 차려졌다. 배는 불렀지만, 그래도 엄마가 해준 밥은 먹고 가야지. 마리아 샘은 너댓 해 전과 꼭같은 얼굴, 꼭같은 품새로 순식간에 한 상을 차려주었다. 맛이 있었고, 맛이 있었다. 엄마가 해준 밥.

 마리아 샘이 우리를 맞아 감자부터 번쩍 안아주자, 근이는 어른스럽게도 엄마 나도 안아보자, 하였다. 쭈뼛거릴 줄 알았고, 쑥맥인 줄 알았건만, 근이는 이미 철딱서니가 아니란 걸, 나도 잠깐 잊었는지. 물론 근이는 수다스럽지 않았고, 엄마 앞에선 여전히 엄마 앞에선 아이의 어린애 같은 말투였지만, 근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찌나 미더웁던지.

 

 

 도통 낯선 이에게는 쉽게 곁을 주지 않는 감자가, 마리아 샘을 만나고는 처음부터 품에 안기기를 싫어하질 않아, 그러더니 마치 한 달은 같이 산 할머니 앞인 것처럼 형아네 엄마 앞에서 웃고 노는 거라. 거참, 별 일이다 하는데, 근이가 모라더라. 엄마한테서 내 냄새가 나서 그런 거라나. 자기 냄새가 나니까 엄마도 좋아하는 거라고. 하긴, 영양으로 올라가기 전날부터, 감자에겐 형아네 엄마를 만나러 갈 거라고, 마리아 할머니 만나러 갈 거라고, 몇 번이고 얘기를 해주고 있었어.

 

 

 하하하, 감자도 마리아 샘 앞에서는 피해갈 수 없는 식고문. 누구라도 손님이 오면 상을 물리지를 않고 배가 터지도록 먹인다고, 끝도 없이 음식을 내온다고 하여 붙인 별명이 바로 그거였다. 감자에게는, 감자를 위해 준비해둔 찐감자를 내었는데, 그걸 또 감자는 얼마나 잘도 받아먹던지. 싫을 땐 입을 꾹 다물어 아무리 어르고 꼬셔도 입을 열지 않는 녀석인데, 뽀로로에 팔려있다가도 돌아서서 입을 벌리고, 또 돌아서서 입을 벌려.

 

 

 옷을 한 판 갈아입고 나서도 식고문은 이어져 ㅎ

 

 근이는 자고 가라, 멍석을 건네보기도 했지만, "엄마, 다음엔 따로 올게!" 하면서, 이번엔 짧았지만 짧은 줄 모르게 좋았던 두어 시간으로 일어섰다. 충분하 순 없었지만, 마리아 샘이 영양으로 내려가 집을 지은 얘기, 짓고 사는 얘기, 그 사이에 겪었던 이런 저런 얘기. 그리고 근이가 군대에서 아팠던 얘기, 여전히 눈을 치료받으며 지낸다는 얘기, 제 일을 알아서 헤쳐가고 있는 얘기들.

 다녀오길 잘했다. 참 잘했다.

 

 

 아쉽게도 품자는 영양 산골에 들던 꼬부랑 길에서부터 이미 잠에 들어, 우리가 그 안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나올 때까지 잠이 깨질 않아. 요즘 한참 정점을 찍고 있는, 품자의 애교를 보여드리진 못했네. 자던 걸 고대로 들어 눕혔다가, 다시 고대로 안고 나와 다시 세 시간 길을 달려 영월 집에 닿아. 그제서야 품자는 근이 형아 엄마가 싸준 옥수수를 입에 물어.

 

 

 영월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뒤, 집 가까이에 있는 장릉엘 갔더랬다. 읍사무소에 신고할 거며, 은행에 가서 확인받을 거며, 이런저런 일들에, 형아가 타고 갈 강릉행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질 않았기에, 가까운 곳 밖에는 가 볼 수가 없었어.

 장릉으로 들어가면서, 매표소에서 표를 끊을 때, 달래와 내가, 아! 이제 우리는 지역민 할인을 받을 수가 없구나! 했더니, 근이는, 여기에선 내가 지역민 할인을 받네! 해서 하하하 웃었지 모야. 제주도에선 어딜 들어갈 때마다 근이만 도민 할인을 못받았는데, 영월에 올라가고 나니 여기에선 근이만 지역민 할인이었어 ㅎ 근이라도 할인을 받으니까, 왠지 우리 가족 모두 조금씩은 할인을 받은 기분 ㅋ

 

 

 저 멀리 정자각이랑 저 멀리 전사청이며 비각 같은 곳에서 근이 형아한테 이 건물은 어쩌구, 이런 구조는 어쩌구, 이런 양식은 어쩌구, 하고 있는 동안 감자랑 품자랑 달래가 기다려주어.

 

 영월 시외버스터미널. 버스 왔다! 하니까 감자도 품자도 기가막히게 알아차리네. 갑자기 두 녀석 다 근이에게 매달리더니 떨어지려 하지를 않아. 그러더니 형아가 버스에 올라타고, 그 버스가 터미널 승강장을 빠져나가니 감자는 통곡같은 울음을 터뜨려. 형아가 보고 싶어, 형아, 보고 싶어.

 근이 형아랑은 이제 겨울에 만나. 형아는 그때까지 열심히 공부할 거래. 그렇게 형아 엄마를 만나러 영양으로, 형아랑 한 식구가 되게 해준 영월로 함께 하며 함께 했던 이 여름의 인사를 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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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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