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이일, 근이가 왔다. 군에서 제대하고 삼월 학기에 복학할 때까지 지내다가 올라가, 여름방학을 맞았다고 제주엘 내려왔다. 감자는, 근이 형이 온다는 말에, 벌써 며칠 전부터 주먹을 꼭 쥐고는 신난다, 만세를 외쳤고, 상근이 형아는? 하면서 노래를 불러대었다. 그렇게나 기다리던 근이 형아가 감자품자네 집엘 내려와.
칠월 삼일, 은이가 왔다. 얼마만인가. 언제 보고 못 보았더라. 문경에서 샨티라는 대안학교를 다닐 적, 마침 당시 내 현장이 상주에 있어서 그 학교엘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몇 달 뒤, 가출인지 몬지, 아니 기숙사 생활이었으니 가출은 아니고 무단외박 쯤이 되려나. 그러고서는 영월 집으로 찾아와. 그게 다녔나 보다. 모 중간중간 어느 결혼식 자리거나, 어느 모임에서 아주 못 본 거는 아니지만, 그렇게 만난 거야 만난 걸로 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많으니. 그렇게나 오래 못 만나던, 못 만난 사이에 훌쩍 커버린 은이도 그 다음 날로 왔다. 감자품자하고는 처음인 만남.
어쩌다 보니 근이와 은이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그 발 아래로 감자, 품자가 있기에, 넷이서 사진 한 번 찍자! 했는데, 하하하, 이렇게 넷이 다 나오는 사진을 찍기가 얼마나 힘이 들던지 ㅎㅎ 감자는 이제 사진 찍는 거를 알아, 전화기를 들어 사진찍는 자세를 잡으면 어디론가 달아나면서 장난을 쳐. 엄마나 아빠가 한 번만 찍자고, 그래달라고 조르면, 그게 더 재미있는지, 달아나면서 약을 올려.
감자가 자꾸만 얼굴을 가리거나 달아나는 통에 제대로 찍을 수가 없어, 그럼 할 수 없이 품자하고만 ㅎ
사진 찍는 거 포기하고, 그만 품자를 내려놓았더니, 이번엔 감자가 다시 근이 형아 품안으로 뛰어들며 사진을 찍어달라해 ㅎ 그래서 할 수 없이 품자랑 형아들 컷 따로, 감자랑 형아들 컷을 이렇게 따로 ㅠ
한 번 더 다시 꼬셔서 넷이 다 나오는 사진을 ㅎㅎ
그것도 아주 순간이라, 그나마 이게 겨우 건진 사진들 ㅋ
근이는 오랫동안 머물 예정이지만, 은이는 이틀밤을 머물고 양양으로 올라가. 지금은 사잇골 농사를 도맡아 하면서, 농삿일로 사회적기업을 준비하는 원이 형을 도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던가. 게다가 당장은 이웃집 샘네 장작을 패주기로 약속한 일이 있다면서, 더 미룰 수가 없어 바로 올라가야 하던. 주말을 함께 보낸 것도 아니었으니, 고작 이틀밤은 너무도 짧아. 이젠 둘 다 스무살을 넘어, 아마 작정하고 먹자면 나보다 술이 더 셀 그 녀석들과 밤마다 막걸리를 받았다. 첫날밤은 오랜만에 만난 은이 얘기를.
아직 어리광투성이에 철부지일 줄만 알았더니, 그렇지가 않더라. 단단해졌구나. 그리고 어느 누구 앞에서도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할 줄 아는 당당함이 있어. 게다가 그 고민은 가볍지 않았고, 스스로에게도, 오랜만에 만난 삼촌 앞에서도, 최대한 정직하려 하는.
대안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었고, 거기마저 중간에 그만두었더란 얘기를 바람결에 듣고 있었다. 그러곤 검정고시를 쳤고, 음악을 하고 싶어 기타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던 시절도, 그러곤 끝내 기타로 대학엘 들어갔다더니, 대학마저 다시 휴학을 해 노가다를 하며 서울살이를 했더라는. 서울살이를 접고 집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돕고 있는 지금, 마음이 가장 자유롭다고 하였다. 음악을 하고 싶어 시작한 서울살이, 하지만 음악보단 다른 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음악을 명분으로만 삼을 때, 감옥같던 마음. 은이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싶어 했고, 힘겨워하면서도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나누던 은이의 이야기. 은이가 숨기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어 고마웠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이며 가고 싶은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좋았다. 그리고 은이와 나눈 아빠 이야기.
얼마만에 삼촌을 찾아온 건데, 맛있는 걸 실커 해주지 못한 아쉬움에, 바깥에 나가 저녁을 먹고 들어오던 길, 집에서 가까운 바다에 내리니, 속초 바다하고는 또다르다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좋아해. 근이와 은이는 둘이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ㅎ
저렇게 해서 찍은 거 ^ ^
감자는 처음엔 은이를 낯설어할 수밖에. 게다가 그토록 기다리던 근이 형아가 왔으니, 상근이 형아, 상근이 형아만을 부르며 상근이 가랑이 속을 파고들어. 하지만 어느 순간 은이가 화장실엘 갔는지 자리에서 보이지를 않자, 하은이 형아는? 하며 은이를 찾아. 그러고는 근이 형아를, 은이 형아를 번갈아. 하지만 아쉽게도 은이 형아는 이틀밤을 지내고, "장작패고 다시 올게!" 하는 약속을 두고 강원도로 올라가.
우리도 요즘 들어서는 아주 오랜만에 나간 밤바다였다. 감자가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일찍 재워야 한다는 게 늘 크게 부담이 되어서,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잠자는 분위기가 되게 하느라, 나서면 몇 발짝 안 되는 바닷가도 나가보질 못하고 그랬지 모야. 지난 여름만 해도 바람을 쏘이며, 툭하면 쫓아나가, 옷이 흠뻑 젖도록 뛰어다닏 들어오곤 했건만.
근이는, 달래가 놀라워할 정도로, 아기들을 잘 돌봐. 글쎄, 특별히 몰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감자와 품자는병아리가 어미닭을 쫓아다니듯, 근이만 쫓아다녀. 그래서 내가 퇴근하고 들어가면 달래가 얼굴이 활짝 피어 있곤 했다. 정말로 신기하다고, 얘네들이 근이 곁을 떠나질 않는다고. 어쩜 그렇게 형을 좋아하는지, 근이 곁에만 바짝 붙어 있다고.
아닌 게 아니라 이른 아침 내가 운동을 하고 들어오면, 감자가 깰 때가 있어. 그러면 땀을 씻지도 못한 채 감자와 놀아주어야 하는데, 근이가 온 뒤로는, 감자는 근이가 자는 방으로 뛰어들어. 그러고는 "상근이 형, 일어나!"를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근이가 일어날 때까지 그 앞에서 노래를 해. "상근이 형, 밖에" 이 소리는 마루로 나오라는 얘기인데, "상근이 형, 일어나!" 와 "상근이 형, 밖에!" 를 무한반복으로. 그래도 근이가 잠에서 깨질 못하면, 그 앞에 선 채로 아아아아아아앙 울음을 터뜨리는.
심지어는 밖에서 일을 하다가 달래에게 카톡이 들어왔는데, 감자 품자 둘 다 잠 들었는데, 감자는 근이가 재웠더라나 ㅎㅎ 이야아아, 재우는 것까지 하면은 이젠 다 한다는 소리네. 하긴, 오늘 아침에만 해도 감자는 "감자야, 누가 최고야?" 하고 물으니 "상근이 형!"이라고 대답을. "아빠는 이제 최고 아니야?" 하니까 "아빠 최고 아니야!". "엄마는?" 하고 물어봐도 "엄마 최고 아니야, 상근이 형이야." ㅠㅠ
어쩌면 나도 이미 그렇고그런 기성세대가 되어버렸을까. 근이에게 해줄 얘기가 그것밖에 없었을까. 어쩌면 잔소리에 지나지 않을, 벌써 한 학기가 지나고, 이제 대학생으로 남아있는 학기는 나머지 세 학기. 육개월 금방 지나버렸듯이 나머지 육개월도, 또 그렇게 두 번도. 그러고나면 슬프고 고단한 취준생이자 백수. 공부방 이모삼촌들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을까.
지금도 달래랑 얘기를 하면, 나는 감자품자가 근이를 닮았으면 좋겠다, 할 정도로 너무나도 예쁜 아이인데. 그런데 고작.
저 조그만 아이스크림 케잌을 벌써 몇 개나 사들였는지 몰라. 촛불 켜는 거를 좋아하더니, 생일축하 노래에 촛불끄기를 좋아하더니, 감자는 툭하면 아이스크림케잌에 촛불을 하자고 해 ㅠㅠ 만원 넘어가는 거가 아니라 오천원짜리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감자품자는 숱하게도 저 빵에 초를 꽂았고, 후후 촛불을 껐다. 이날도 저기에 초를 꽂고, 형아들 만난 걸 축하합니다! 하자면서, 초에 불을 붙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