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울가는 날.

 

 감자야, 품자야, 서울에 갈 거야. 비행기 슈우웅 타고, 큰아빠 빼떼기 그림이랑 이모야 가자미 그림이랑 보러 서울에 가자 ^ ^

 

 

 벌써 달 반 전에 빼떼기 전시장 행사에 맞춰서 가겠다고, 두 주 전 올라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더랬는데, 그땐 갑지기 아빠가 병원에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가지를 못해. 아무래도 이번엔 못가보나 보다, 무리인가 보다 하고 포기하다시피. 그런데 종숙 언니의 전시 포스터랑 도록을 받으면서, 다시 궁리에 궁리. 길게는 말고 일박이일로라도 다녀올 수 있을까, 지금 형편에 그렇게까지 움직이는 게 오바는 아닌가, 거의 일주일 가까이를 망설이다가, 하루 전날에야 비행기표를 끊어. 빼떼기 전시는 이제 사흘밖에 남질 않았으니, 이번 주말을 넘기면 서울에 간다 해도 종숙 언니 전시밖에 보고 오지를 못해, 기왕에 가려면 피네 아저씨 그림이랑 종숙 언니 그림이랑 다 보고 올 수 있게 ㅎ

 

 

 

 

2. 빼떼기 큰아빠

 

 공항에 닿았더니 빼떼기 큰아빠가 마중을 나와 있어. 하하, 신기한 일이지 모야. 누굴 만나건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 전에는 그토록이나 곁을 주지 않고, 눈도 맞춰주지 않던 감자가, 피네 큰아빠를 보더니 다다다다다 뛰어가 품에 안기지 모야. 어, 이게 모지? 감자가 달라진 건가, 피네 큰아빠한텐 몬가 다른 건가 ㅎ

 그러곤 공항에 닿자마자 빼떼기 전시가 있는 망원동으로 부우웅!

 

 

 

 그림책으로 미리 보았던 검정 병아리 빼떼기와 꼬꼬닭 그림들. 요즘 들어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빵빵 터지는 품자는 한껏 기분이 좋아, 감자는 '아는 그림'들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는 게 신기한지 이거! 이거! 하면서 새까만 눈이 더 까맣게 동그래져.  

 

 

 

 

3. 가자미 이모

 

 빼떼기 전시장에서 나와선 바로 서촌으로 점프! 종숙 언니야의 그래도 속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 291. 마침 서울에 있는 소방관 형아도, 감자품자네가 서울에 올라와 있다 하니 시간을 맞춰 기다리고 있더 길.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그 공간의 주인공은 맥박이 뛰는 것 같은 언니의 그림들도, 그 그림들을 낳아 세상 한복판으로 나온 언니야도 아니, 갤러리 바닥을 기는 아가들이 되어버렸지 모야.

 

 

 물론 종숙이 이모야랑 소방관 형아처러 감자품자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 석교리 순녀, 병순 누이들처럼 활짝 반가운 이들도 있었지만, 그말고는 모두 처음 보는 이들이었는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이 아가들의 이모이자 삼촌들이었던 것처럼, 감자품자를 맞아. 나중에야 알고나니, 종숙이 언니의 고교동창들이었고, 얼마 전 신문에 인터뷰를 싫은 한겨레의 기자였고, 지난 번 <속초다>에 이어, 이 <그래도 속초다>까지 큐레이터를 보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그 많은 어른들에 둘러싸여 감자품자는 그저 어리둥절. 그러더니 갤러리를 신나게 누비며 기고 뛰어ㅎㅎ

 

 

 집에서 나설 때부터 감자는 가자미 그림을 보러 가는 거라 했다. 역시나 갤러리에 들자마자 감자는 가자미를 찾아. 그러더니 손닿는 높이에 있는 그림들에는 손으로 더듬기까지 해. "아, 아, 아, 아, 안 돼, 감자야! 그 그림들이 얼마짜린데, 그러다 클나!" ㅎㅎ 얼마짜리냔 말이 몬 소린지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순간 입에서 튀어나가는 말은 그거 밖에 없어.

 반들반들, 벽에 건 그림들이 마치 거울처럼, 또 하나의 전시를 이루는 그 바닥 위에서 감자와 품자는 마음껏 기었고, 마음껏 뛰어.

 

 

 

 

 

 얼마나 신이 나서 손뼉을 치던지. 감자의 이 박수에 판소리 명창 선생님이 소리를 한 마당 더.

 갤러리에서 문닫는 시간까지 있다가 어디론가 저녁을 먹으러 서촌의 골목길을 걸어. 먼저 나가 있던 이모야들이 가 있던 밥집으로 가 뒷풀이를 함께 하였는데, 그 자리엔 소리꾼 정유숙 선생님도 있는 거라.

 거기에 있던 이모야들 가운데, 감자 반응에 누구보다 신기해하던, 한겨레의 김경애 기자 이모야가, 밥상 건너편에 있다가 찍어 보내준 사진들.

 

 

 

 그 담날 아침. 이야아아아, 인사동 한 복판에 그런 숙소가 다 있다니. 그동안 감자품자네가 서울 올라갈 때마다 숙소 구하는 게 늘 골칫거리. 모텔도 호텔도 아가들이랑 집처럼 뒹굴며 씻기고 하기엔 늘 마땅치가 않아 ㅠㅠ 그런데 하하, 종숙이 이모야가 갤러리 선생님 도움을 받아 빌렸다는 어느 게스트하우스. 피네 큰아빠랑 종숙이 이모야랑 감자품자네 식구가 집에서처럼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푸하하, 아빠는 그야말로 오랜만에 피네 큰아빠랑 소방관 형아랑 인사불성이 되어버려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ㅠㅠ 달래한테 많이 혼났음 ㅋ)

 

 

 빼떼기 그림책에 선물로 주는 빼떼기 원화들로 만든 작은 엽서그림책을 가자미 이모야가 감자에게 한 장 한 장 넘겨주는, 아 다정도 해라 ^ ^

 

 

 

 

4. 집으로 비행기

 

 일박이일의 짧은 일정, 감자랑 품자는 그렇게 미술관 두 군데를 들러, 피네 큰아빠의 빼떼기 그림들과 바보 이모야의 가자미 그림들로 서울 여행을 꽉 채웠다.   

 

 

 서른 번째, 열네 번째가 되도록, 둘이는 비행기 창밖에 그닥 관심이 없더니만, 이번엔 처음으로 창문 쟁탈기가 있어. 품자는 모가 몬지도 모르면서 형아가 그러니까 따라하는 건지도 몰라. 요즘 들어 감자 형아 하는 거면 그대로 따라하려고만 하고 있으니, 형아가 창문에 매달리니 품자도 엄마 무릎으로 기어 올라 ㅎ

 

 

 하하하, 이제 막 자기 맘대로 문법을 구사하며, 자기 맘대로 몇 가지 낱말을 엮어 문장을 만들어 말하기를 시작하는, 감자가 서울에 다녀온 얘기를 하곤 한다. 집에 있는 빼떼기 그림책을 들고 쫓아오면서 "읽어주세요……서울 ……그림……큰아빠." 가자미 그림 보고 온 것도 생각나지? 그러면 무언가를 기억해내 떠올리는 눈빛을 하면서 아주 느릿느릿, "이모가……가자미……그림……보여주세요."

 

 감자품자랑 그림들을 보고 왔다. 큰아빠가, 이모야가, 몸을 다 던져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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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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