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야, 품자야, 서울에 갈 거야. 비행기 슈우웅 타고, 큰아빠 빼떼기 그림이랑 이모야 가자미 그림이랑 보러 서울에 가자 ^ ^
벌써 달 반 전에 빼떼기 전시장 행사에 맞춰서 가겠다고, 두 주 전 올라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더랬는데, 그땐 갑지기 아빠가 병원에 들어가게 되는 바람에 가지를 못해. 아무래도 이번엔 못가보나 보다, 무리인가 보다 하고 포기하다시피. 그런데 종숙 언니의 전시 포스터랑 도록을 받으면서, 다시 궁리에 궁리. 길게는 말고 일박이일로라도 다녀올 수 있을까, 지금 형편에 그렇게까지 움직이는 게 오바는 아닌가, 거의 일주일 가까이를 망설이다가, 하루 전날에야 비행기표를 끊어. 빼떼기 전시는 이제 사흘밖에 남질 않았으니, 이번 주말을 넘기면 서울에 간다 해도 종숙 언니 전시밖에 보고 오지를 못해, 기왕에 가려면 피네 아저씨 그림이랑 종숙 언니 그림이랑 다 보고 올 수 있게 ㅎ
서울가는 날 아침, 품자는 이랬다 ㅎ
모가 그리 좋은지, 강아지처럼 웃어. 요즘 들어 품자는 정말로 강아지 같아, 멍멍멍 강아지 ㅎ
감자는 미술관엘 간답시고 평소 잘 입어보지 못하던 남방에다 멜빵까지 어깨에 걸어 ㅋ
그러곤 비행기를 타고 슈우웅. 이젠 감자가 몇 번째 비행기에 올랐는지 헤아리는 게 헷갈릴 정도. 열네 번째 육지행, 그러니까 비행기에 오르기로는 스물아홉번 째.(아빠는 스물세 살 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더랬는데 ㅎ)
하여 감자랑 아빠랑 둘이서 쎌카라는 거를 한 방 ㅎ
품자가 요즘 웃기는 것 중 하나가, 이렇게 심각하게 무언가를 읽는 시늉을 한다는 거. 그리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아야어여오요오요오요요 하면서 저 나름대로 글씨를 읽어 ㅋ
자세가 안나온다 싶으니까 이번엔 앞자리 등받이에다 척하니 붙여놓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ㅎ
2. 빼떼기 큰아빠
공항에 닿았더니 빼떼기 큰아빠가 마중을 나와 있어. 하하, 신기한 일이지 모야. 누굴 만나건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 전에는 그토록이나 곁을 주지 않고, 눈도 맞춰주지 않던 감자가, 피네 큰아빠를 보더니 다다다다다 뛰어가 품에 안기지 모야. 어, 이게 모지? 감자가 달라진 건가, 피네 큰아빠한텐 몬가 다른 건가 ㅎ
그러곤 공항에 닿자마자 빼떼기 전시가 있는 망원동으로 부우웅!
그림책으로 미리 보았던 검정 병아리 빼떼기와 꼬꼬닭 그림들. 요즘 들어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빵빵 터지는 품자는 한껏 기분이 좋아, 감자는 '아는 그림'들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는 게 신기한지 이거! 이거! 하면서 새까만 눈이 더 까맣게 동그래져.
와하하하, 드디어 빼떼기 큰아빠랑 만나! (공항에서 전시장까지, 낮잠을 못자고 있던 감자는, 그 길에서 잠이 깊이 들어 ㅎ)
아무래도 무리겠다 싶었지만, 무리를 무릅쓰고서라도 다녀오길 잘했다. 감자와 품자가 좋아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 글쎄, 감자 품자가 좋았던 거가 무어였을까, 그림책에서 보던 그림들, 액자에 담겨 있는 그 그림들이 좋았는지, 아니면 그렇게 그림들이 한 가득 둘러있는 갤러리라는 공간이 좋았는지, 아님 그저 사랑스럽게만 보아주던 큰아빠의 눈길이 좋았던 건지.
이거는 큰아빠가 감자품자에게 주려고 싸인해놓은 거를, 사진찍어 텔레그램으로 보내주었던. 하지만 그날 챙겨올라오지는 않은 터라 아직 싸인본 책을 보지는 못해. 집에서는 그냥, 출판사에서 보내준 걸로만 미리 보고 있던 ㅎ
3. 가자미 이모
빼떼기 전시장에서 나와선 바로 서촌으로 점프! 종숙 언니야의 그래도 속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 291. 마침 서울에 있는 소방관 형아도, 감자품자네가 서울에 올라와 있다 하니 시간을 맞춰 기다리고 있더 길.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그 공간의 주인공은 맥박이 뛰는 것 같은 언니의 그림들도, 그 그림들을 낳아 세상 한복판으로 나온 언니야도 아니, 갤러리 바닥을 기는 아가들이 되어버렸지 모야.
물론 종숙이 이모야랑 소방관 형아처러 감자품자를 기다리고 있던 이들, 석교리 순녀, 병순 누이들처럼 활짝 반가운 이들도 있었지만, 그말고는 모두 처음 보는 이들이었는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이 아가들의 이모이자 삼촌들이었던 것처럼, 감자품자를 맞아. 나중에야 알고나니, 종숙이 언니의 고교동창들이었고, 얼마 전 신문에 인터뷰를 싫은 한겨레의 기자였고, 지난 번 <속초다>에 이어, 이 <그래도 속초다>까지 큐레이터를 보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그 많은 어른들에 둘러싸여 감자품자는 그저 어리둥절. 그러더니 갤러리를 신나게 누비며 기고 뛰어ㅎㅎ
집에서 나설 때부터 감자는 가자미 그림을 보러 가는 거라 했다. 역시나 갤러리에 들자마자 감자는 가자미를 찾아. 그러더니 손닿는 높이에 있는 그림들에는 손으로 더듬기까지 해. "아, 아, 아, 아, 안 돼, 감자야! 그 그림들이 얼마짜린데, 그러다 클나!" ㅎㅎ 얼마짜리냔 말이 몬 소린지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순간 입에서 튀어나가는 말은 그거 밖에 없어.
반들반들, 벽에 건 그림들이 마치 거울처럼, 또 하나의 전시를 이루는 그 바닥 위에서 감자와 품자는 마음껏 기었고, 마음껏 뛰어.
갤러리에 먼저 와서 기다리던 소방관 삼촌은 품자를 보더니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면서 푸하하하 푸하하하, 품자의 예전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이렇게나 살이 빠졌다고 푸하하하하.
하긴 품자의 모닝빵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누구라도 그런다 ㅎ 왜 이렇게 야위었냐고. 그래봐야 지금도 팔이 다섯 겹으로 겹치고, 옷을 입히려면 통이 맞질 않아서 한참 더 긴 옷을 입혀야 하건만, 한참이던 시절을 기억하던 이들은,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며 푸하하하하.
반들반들 갤러리 바닥 위에서, 품자는 맘껏 기어다녀.
이야아아, 저기에 있네! 감자가 젤로 좋아하는 가자미 그림 ㅋ
한 발 두 발 그림 앞으로 가더니 울룩불룩 두껍게 덧칠이 된 유화 물감에 손을 대어.
아빠가 깜짝 놀라, 안 돼, 감자야, 그게 얼마짜린데! ㅋ 그랬더니 화가 이모야가 와서는 만지는 게 어떠냐며 감자에게 점수를 따겠다고 그러지 모야 ^ ^
아하! 이거다. 이모야 전시 팜플렛에 있던 가자미랑 똑같은 가자미는 이 그림이야. 가자미가 하나 둘 셋, 그 가운데 감자가 냉장고에 붙여놓은 가자미는 바로 이거 ^ ^
그러고도 감자는 갤러리에 있는 그림들을 하나하나.
집에서 도록을 넘겨볼 때 엄마가 젤로 맘에 들어하던 나무 그림은, 감자도 마음에 드는지.
한참 그림을 둘러보더니, 힘차게 달리기를 시작해!
그러더니 이리 기고, 저리 기고.
통 기어다니질 않던 감자가 왠일인지, 그 뒤부터는 내내 기어다니지 모야.
바닥에 비춰진 그림들을 보고 다니느라 그러는 거니.
소방관 삼촌이랑 아빤 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삼촌네 집 형아는 벌써 대학생, 감자품자는 아직도 응앙응앙 째그만 아기.
작가님이랑 감자품자네랑 다같이 사진을 찍는 포토타임 ㅎ
종숙이 언니는 감자품자 앞에서 얼마나 할머니같이 굴던지.
기쁘고 행복한 자리였다. 무어라 말해주어야 할지 몰라 축하, 한다 그랬더니, 그 말은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는 거 같더라. 그러니 변명을. 아니, 이 전시를 축하한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 시간들, 이 그림들을 그려내느라 온전히 고통스러울 수 있고, 맘껏 외로울 수 있던, 기꺼이 그 싸움을 해오며 견뎌온 그 시간들을 축하한다는, 말이였노라고, 구차구차하게 다시 설명을 해.
좋았다. 내가 꼭 아부지라도 된 것처럼, 왜 그런 기분이 들던지. 몬가 뿌듯한, 그 풍경을 보는 것 자체로도 행복해지는 것 같은.
역시나 무리를 해서라도 서울에 올라간 건 백번 잘하고도 남음이었다. 종숙이 언니 그림이야, 속초 에계해애서부터 더덕더덕,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보아왔지만, 이렇게 한 데 모으고, 걸어놓고 그러니 또 달라. 도록으로만 보던 거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감자품자에게는 그 그림들이라는 게 어떤 거로 남을까. 왠지 어떤 이미지나 형상이라기보다는, 짙고 옅던, 밝고 어둡던, 덜 무겁고 더 무겁던, 색감의 이야기. 글쎄, 나 혼자 상상해보는 거긴 하지만, 에이 모, 꼭 그림들을 보면서 어떤 느낌 따위 없었다 해도 얼마나 좋았나. 그토록이나 반겨주는 이모야를 만나고, 삼촌을 만나고, 그 안을 자유롭게 기고 뛸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얼마나 신이 나서 손뼉을 치던지. 감자의 이 박수에 판소리 명창 선생님이 소리를 한 마당 더.
갤러리에서 문닫는 시간까지 있다가 어디론가 저녁을 먹으러 서촌의 골목길을 걸어. 먼저 나가 있던 이모야들이 가 있던 밥집으로 가 뒷풀이를 함께 하였는데, 그 자리엔 소리꾼 정유숙 선생님도 있는 거라.
거기에 있던 이모야들 가운데, 감자 반응에 누구보다 신기해하던, 한겨레의 김경애 기자 이모야가, 밥상 건너편에 있다가 찍어 보내준 사진들.
정유숙 선생님이 소리를 시작하고,
감자에게는 분명 낯선 거였을 텐데, 뚫어지게, 아주 뚫어지게, 까만 눈동자를 더 까맣게, 눈동자를 떼지 못해.
소리가 다 끝나고 나니, 감자의 얼굴이 활짝 열리면서,
우레와 같은, 그야말로 우레같은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거라. 물론 그 모습이 재미있어, 이모야들이 부추기기도 했지만, 그러고는 감자의 "또 해주세요!" 한 마디에 선생님도 기분이 좋아 한 자락을 더 ㅎ
아, 이때 품자는 뒷풀이가 다 끝나도록 뒤척이지도 않고 코잠을 자. 밥집에 들어설 무렵부터 하여, 밥상을 다 거둘 때까지 ㅎ 엄마아빠 밥 먹을 수 있게 해준다며, 효자네 효자 ㅎ
그 담날 아침. 이야아아아, 인사동 한 복판에 그런 숙소가 다 있다니. 그동안 감자품자네가 서울 올라갈 때마다 숙소 구하는 게 늘 골칫거리. 모텔도 호텔도 아가들이랑 집처럼 뒹굴며 씻기고 하기엔 늘 마땅치가 않아 ㅠㅠ 그런데 하하, 종숙이 이모야가 갤러리 선생님 도움을 받아 빌렸다는 어느 게스트하우스. 피네 큰아빠랑 종숙이 이모야랑 감자품자네 식구가 집에서처럼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푸하하, 아빠는 그야말로 오랜만에 피네 큰아빠랑 소방관 형아랑 인사불성이 되어버려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ㅠㅠ 달래한테 많이 혼났음 ㅋ)
빼떼기 그림책에 선물로 주는 빼떼기 원화들로 만든 작은 엽서그림책을 가자미 이모야가 감자에게 한 장 한 장 넘겨주는, 아 다정도 해라 ^ ^
4. 집으로 비행기
일박이일의 짧은 일정, 감자랑 품자는 그렇게 미술관 두 군데를 들러, 피네 큰아빠의 빼떼기 그림들과 바보 이모야의 가자미 그림들로 서울 여행을 꽉 채웠다.
서른 번째, 열네 번째가 되도록, 둘이는 비행기 창밖에 그닥 관심이 없더니만, 이번엔 처음으로 창문 쟁탈기가 있어. 품자는 모가 몬지도 모르면서 형아가 그러니까 따라하는 건지도 몰라. 요즘 들어 감자 형아 하는 거면 그대로 따라하려고만 하고 있으니, 형아가 창문에 매달리니 품자도 엄마 무릎으로 기어 올라 ㅎ
돌아오는 길, 비행기 창가에 매달리는, 엄마 품에 차지하려 기어오르는 감자와 품자를 보고 있자니, 어이구 이 제주 촌놈들, 하는 말이 절로 나오지 모야. 아닌게 아니라 가자도 품자도 섬엣 태어난, 기차보다 비행기가 더 익숙한 촌 녀석들이지 모야 ㅎㅎ
간밤에 인사불성, 새벽에 깨어난 두 아가를 혼자 감당하느라 애를 먹었을 달래에겐 많이도 미안해 얼굴을 들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서울행이었다. 아가들과 함께할 일정으로봐서도, 몸상태로 봐서도, 현장 일로 봐서도, 주머니 사정으로 봐서도, 아무래도 무리겠다 싶던 서울행이었지만, 이러저러한 모든 걸 무릅쓰고도 좋았던, 그런 일박이일.
하하하, 이제 막 자기 맘대로 문법을 구사하며, 자기 맘대로 몇 가지 낱말을 엮어 문장을 만들어 말하기를 시작하는, 감자가 서울에 다녀온 얘기를 하곤 한다. 집에 있는 빼떼기 그림책을 들고 쫓아오면서 "읽어주세요……서울 ……그림……큰아빠." 가자미 그림 보고 온 것도 생각나지? 그러면 무언가를 기억해내 떠올리는 눈빛을 하면서 아주 느릿느릿, "이모가……가자미……그림……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