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덜이

냉이로그 2017. 6. 14. 14:10

 

 

 1. 삼십만원 짜리 새 자동차.

 

 

 하하, 새 차를 한 대 더 사려니 돈이 얼마나 들려나, 쉽게 지를 줄을 몰라 망설이기만 하면서, 어떤 차를 사야 할까 미적미적 고민만 이어오던 끝에, 결국 옆집 아주머니의 자동차를 받아서 타기로 결정하였다. 그냥 주시겠다 하였지만, 그래도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오십만원이라도 받아달라, 아니다, 삼십만원만 받겠다, 하여 삼십만원짜리가 된 열여덟 살 오래된 자동차 ㅎ 어차피 이 차는 수동이라 달래가 운전할 수도 없고, 이 낡고 험한 차는 내가 일하러 다니면서 타기로, 지금 타고 있던 그나마 깨끗한 여섯 살 된 자동차는 달래가 집에서 타는 걸로 ㅎ

 

 

 그러곤 어제 처음, 새로 산 삼십만원 짜리 차를 타고 일을 하러 나갔다. 수동 기어를 한동안 운전하지 않았더니 감이 떨어졌는가, 신호에 걸려 멈췄다 다시 출발할 때마다 1단 출발을 해야 하는지, 2단 출발을 하는지. 2, 3, 4, 5단으로 기어변속을 하는 게 어느 속도에서 하는 게 적당한지, 오토 운전을 할 때야 왼발이 놀고 있었는데, 그 놀던 왼발이 쉴 새 없이 클러치를 밟아야 하느라 사뭇 당황스러워 얼떨떨. 급한 마음에 말랴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알피엠 얼마 쯤 올라가면 기어를 바꾸어주라는데, 전에는 그런 거 없이 엔진 소리를 들으며 감으로만 했던 거 같은데 ㅠㅠ 하지만 감을 되찾는 거는 그리 오래이지 않았다. 이 덜덜이를 몰고 첫 운행지가 한라산 산록도로를 타고 들어가 천백도로를 올라 어리목 현장에 가는 거였고, 그 다음에는 한라산 사면을 타고 돌아 관음사 현장으로 가는 길. 그 구불구불의 고바위를 오르다보니 이내 예전 감이 찾아오더라. 역시나 몸이 기억하는 건, 쉽제 잊혀지지가 않는 건지.  

 

 

2.  새로 산 덜덜 자동차.

 

 퇴근을 해 집 마당에 들어서면 감자랑 품자가 거실 창으로 내다보고 있어. 아빠다! 소리지르는 감자와 압빠압빠압빠 하며 물갯짓을 하는 품자.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 그런데 오늘은 맨날 보던 그 하얀색 자동차가 아닌 이상한 덜덜 자동차에서 아빠가 내리네 ㅎㅎ 순간 감자 눈이 동그랗게 커져 ^ ^ 

 

 

 "으응, 이것도 우리 차다,  아빠도 차 샀어!
  어서 감자랑 품자도 이 차 타고 붕붕 달려봐야 할 텐데."

   

 

 

 하하, 이렇게 아빠의 덜덜덜 새 자동차에 감자와 품자의 시승식을 대신하였다.

 

 

 

3. 열일곱 살 자동차.

 

 새로 산 낡은 차 얘기를 하려니 얼마 전 낮은산에서 보내온 새 그림책이 생각나. 언제였더라. 내가 낮에 잠깐 짬이 나서 장을 봐다가, 싣고 다니기에는 냉장고에 들어갈 것들이라 집에 잠깐 들렀을 때, 그날은 달래가 몇 달만의 조리원 모임으로 집을 비우고 있던 터. 그때 소파 위에 놓여져 있던 이 그림책 한 권.   

 

 

 글 양이 많지 않은 그림책이고 하여, 손에 잡은 채로 바로 다 볼 수가 있었는데, 그게 웬걸. 이상하게 마음이 저릿한 거라. 제목을 볼 때부터 왠지 어떤 이야기일 것 같다, 싶은 짐작이 있었고, 그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찌보면 뻔한 얘기였는데도, 어, 어, 어? 이상하다,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할까. 심지어는 눈물마저.

 

 

 그러고 보면 나도 매번 그런 식으로 덜덜이들과 헤어지곤 했다. 벌써 석 대였네. 운전하다 사고가 나서 휴지처럼 구겨진 폐차장으로 보내고 만 것들이.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지나가던지. 그런 얘기를 어느 자리에서 하다보니 차를 운전하는 이들은 다들 비슷한 마음의 경험을 하는 것 같아. 함께 다녔던 곳, 그 시간, 그 순간들이며 그 시절들.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억들. 그 보편의 감정이기에, 어찌보면 뻔할 테지만, 그럼에도 뻔하지 않게 그려내었을 땐, 누구라도 무장해제가 되어 공감이 되어버리고 마는. 달래가 한 말처럼, 어,  이게 뭐라고, 이게 뭔데, 이게 뭐라고 눈물이 다 나나, 싶은. 내 마음 속 무언가를 툭, 건드려주고 마는.

 

 

 

4. 감자네 집 새 식구 

 

 저 그림책에서는 열일곱 살 자동차가 주인공이었고, 열일곱이 되어 그만 목숨을 다하고 있는데, 우리가 새로 산 차는 이미 열여덟. 우리가 앞으로 제주도에 몇 년을 더 있게 될까, 적어도 이삼년이라면, 그 정도는 이 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겠지? 글쎄, 그때까지도 괜찮다 싶으면 어쩜 나는 영월까지 이 차를 싣고 올라가려 할 것도 같아. 와아아, 그럼 이 차는 아마도 거의 처음으로 섬 밖을 나가보는 게 되겠구나. 옆집 아주머니가 제주 토박이이시고, 차를 끌고까지 육지를 다니시진 않았을 테니, 정말로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네 ㅎ

 

 

 모쪼록 타는 동안 사고없이 잘 다닐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당장 날마다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길들이 산록도로에 천백도로, 오일육도로. 한라산을 종으로 횡으로 가로지르는 급경사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들인데, 혹여라도 내리막에서 브레이크라도 잘못되거나 하면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군데군데 녹이 나고 구멍이 뚫려있고, 여기저기 외관들에 부러지거나 잘 맞지 않아 삐걱이는 것들이야 하나도 이상할 거 없지만, 달리는 길에서 조작이 되지 않거나 하는 그런 일만은.

 이리하여 감자네 집에는 새 식구를 들이게 되었다. 열여덟 살 된 낡은 자동차, 덜덜이. 생각하면 참 운도 좋지. 제주에 와 살면서 집을 구할 때마다 소길리 집이며, 하가리 집이며 우리에게 꼭 맞춤한 집에 살 수 있던 거 하며. 지금은 또 이렇게 차가 필요하니 차가 생겨. 이 낡은 차 덜덜이하고도 분명 어떤 인연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렇게 우리에게 와 준 거겠지.  

 덜덜아, 앞으로 우리 힘껏 달려보자. 아마도 이 아저씨랑 같이 다니려면, 숨이 헉헉 차오를 정도로 한라산 중턱 길을 쉴 새 없이 오르내려야 할 텐데, 그래도 괜찮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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