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속초다

냉이로그 2017. 6. 11. 22:04

 

 

  종숙이 언니 개인전이 다시 있을 거라더니, 그 개막이 벌써 이번 주다. 피네 아저씨가 블로그에 걸어주어  들어가 보게 된, <완벽한 날들>이라는 속초의 작은 책방 블로그에 올라 있는 글.

 

 

 아, 거기가 거기구나. 언제더라, 해원이가 전화를 걸어, 자기 친구가 속초에서 독립서점을 낼 거라고, 거기엔 여러가지 독립출판물들이나 조그맣지만 고집스러운 출판사들의 책들을 위주로 하는 그런 책방이라던가. 그러면서 그와 관련한 얘기들을 묻길래, 내가 아는 게 무어 있나. 여기 제주에도 소심한 책방이나 라이킷 같은 책방이 있더라, 하는 정도. 가보니까 일인출판으로 내는 책들이 정말 많더라, 는 정도. 기성 출판사들 중에서도 땡땡협동조합인가, 하는 데서 그런 작고 고집스러운 출판사들을 이어주는 것 같더라, 하는 정도. 

 암튼, 친구네가 준비하고 있다는 그 책방은, 책방 만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도 하고, 조그만 모임이나 문화행사 같은 걸 열어가는 살롱 같은 공간을 꿈꾸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삼촌은 언제 시간 돼?" 냐면서, 그 책방에서 조그만 북콘서트 같은 걸 해줄 수 있느냐던. 나야 갈 수가 없지만, 속초에서 하면은 당근 속초 작가를 불러야지! 하면서 종숙이 이모랑 하기만 해도 얼마나 좋겠냐며, 그런 얘길 하곤 하였는데, 그 책방 겸 살롱 <완벽한 날들>에서 종숙이 이모를 초대하는데 성공을 했나 보았다. 

 

 

 그건 그렇고, 두 해 전 <속초다>라는 제목으로 생애 첫 전시를 가졌던 언니는, 그 뒤로 꼭 두 해가 지나 또다시 개인전을 준비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그래도 속초다>. 금요일 저녁에야 언니가 보내온 도록과 포스터를 받아, 토요일 오후에야 아가들이랑 이모야의 그림들을 넘겨 보았다. 

 어마어마하구나. 얼마나 고통스러우며 또한 얼마나 행복했을까. 감자와 품자가 이모야의 그림을 보며 노는 모양을 사진찍어 카톡으로 보내주고 그러다가, 문자 주고받는 걸로는 얼마나 갈증이 나던지, 영상통화라는 거를 해 보았다. 하하하하, 바보 언니가 그런 것도 할 줄 아네! 지지난 겨울, 이었을 테니 언니를 못 본지도 한 해 반이 지났구나. 예정된 전시 준비로 너무너무 바쁘다고 했어, 게다가 할아버지 동화집에 그림 그리는 거까지 맡아 더 정신이 없다 했어. 그러니 그런 것들 다 지나고 나면 아가들 보러 오겠다고, 그렇게 말을 한 것도 벌써 일 년이 더 지나버린. 

 

 

 

 

 언제는 안 그랬냐만은, 전화기 화면 너머 언니의 모습은 전보다도 더 편안해 보였다. 이 바보 도사의 도력이 더 높아졌던가. 하긴 그토록 고통스러웠을 거며, 또한 그토록 행복하였을 테니. 

 궁리를 해보았다. 갔다 올 수는 없을까. 일박이일이라도, 그렇게라도 다녀올 수 있다면, 결국 전시 중 행사 때는 가지 못한 피네 아저씨의 빼떼기 전시도 볼 수 있고, 바보 언니의 전시장에도 가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환자복만 벗었을 뿐 여전히 병자로 지내는 주제에, 아가들을 주렁주렁 안고, 그 먼길을 다녀온다는 건 무리가 아닐 수 없어. 게다가 언젠가부터는 비행기값에 잘 곳이니 여차하면 자동차 렌트까지, 그 비용이 적잖이 부담이기도 한 지라 ㅠㅠ 나도 나였지만, 달래가 더 종숙 언니의 전시에 못가보는 걸 아쉬워하는 것 같았고, 둘이는 당장에라도 비행기표를 끊을 것처럼 달력 날짜를 꼽아보면서 궁리궁리를. 

 종숙 언니의 그림이 다시 한 번 세상 복판으로 나오게 된다.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기쁘다. 언니의 그림을 닮은 이들이, 자신을 닮은 그 그림들을 만나, 우리가 헛살지 않았음을,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것을.

 

 서울에 다녀오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까.

 

 

 

 엊그제 한겨레에 언니 기사가 실렸다던데. 반가운 마음에 기사를 찾아 읽는데, 내 마음이 울컥, 코끝이 시큰해지더라.

 

"너무 아름다워 슬픈 삶에 손 한번 얹어주고 싶다"던 그 말, "노가다처럼 그림으로 먹고 살아가는 게 내 업이니 열심히, 최선을 다해, 더 깊은 슬픔을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싶다는 그 말. 그리고 몇 번을 읽으면서 가장 시큰울컥해지던 말은 "지난 2년 몇개월, 아무 잡념 없이 맘껏 그렸어요. 지금이 제 인생의 정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는 그 말.

나는 무어가 그리 좋아 그런 건지. 아님, 슬퍼, 기뻐, 행복해 그런 걸까. 기사를 보면서 어쩜 그렇게 심장이 뛰었나 몰라. 전시장에 가서 언니를 보게 된다면, 그저 말없이 꼭 안아주고만 싶은.

   [한겨레] "너무 아름다워 슬픈 삶에 손 한번 얹어주고 싶어요"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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